2023년 8월 11일 금요일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파시즘의 전복된 색깔

1. ’홈 스위트 홈’의 헤테로포니

영화 시작 부분에 나오는 ‘홈 스위트 홈’은 노래의 텍스처가 묘하게 서늘하고 섬뜩하게 편곡되어 있다. 무엇보다 합창과 기악의 템포가 미묘하게 엇갈려 있어 감상자에게 위화감을 주고 ‘음악으로 표현된 복선’ 역할을 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폴리템포’라는 음악 용어를 떠올렸다가, ‘헤테로템포’라는 말을 만들어 봤다가, 지금에 와서는 ‘템포’ 개념에 매몰될 일이 아니라 그냥 헤테로포니적 효과 정도라고 생각하고 았다.

’홈 스위트 홈’은 나중에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 장면에서 한 번 더 나온다. 이때는 (사실상) 피아노 독주이며, 그냥 평범하게 아련한 음악이되 영화 장면과 충돌하며 떡밥을 회수하는 역할을 한다.

2. 새하얀 파시즘

민성(박서준 분)이 영탁(이병헌 분)에게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하는 장면에서, 햇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절반씩만 비춤으로써 어딘가 익숙한 클리셰를 만든다. 그러나 이때 나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빛을 받은 부분이 오히려 섬뜩해 보이는 전복적인 명암 대비를 느꼈는데, GV에서 엄태화 감독님이 바둑알 색깔의 의미에 관해 설명하신 말을 듣고 속으로 무릎을 쳤다. 흰색은 파시즘의 색깔이며,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파시즘에 대한 문화주의적 태도라 함은 파시즘을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퇴행성으로 간주하는 것. 그러나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무기력을 폭력적인 배제의 논리로 뛰어넘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혁신적이고 탈근대적인 특징도 보여준다. 사실상 ‘나쁜’ 파시즘은 없다. […] 파시즘이 마음씨 좋은 이웃의 모습으로 온다는 건 나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아렌트가 말한”악의 평범성”도 이 문제에 대한 지적.“ (이택광)

3. 그녀의 ○○○한 눈깔 연기

배우 박보영의 팬으로서, 나는 그녀의 전작들에서 보지 못했던 표정과 연기와 캐릭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 장면에서 그녀의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한 눈깔(…) 연기였는데, 엄태화 감독님은 이때 명화의 행동이 가족(민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자 ’명화’라는 캐릭터가 평면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장면이라 설명했다. 다시 말해, 명화를 선한 인물로만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를테면, 파시즘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우리 사회에서 극우 반공우의의 반대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자유주의나 리버럴리즘이 아니라 극우 민족주의다.)

4. 진실을 폭로하는 초록빛깔

스테인드 글래스에 관한 GV 관객의 질문에 대해, 엄태화 감독님은 영화의 흐름에 따른 색채 설계와 관련지어 답변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선명한 채도로서 무채색 세상의 진실을 폭로하는 장면이 있었다. 명화와 민성이 폭력으로부터 도망쳐서 숨었을 때, 폭력의 일부로서 민성의 눈앞을 스쳐 간 손전등의 불빛이 우연히 드러낸 그림이었다. 그것을 본 민성의 사고는 일시적으로 멈춰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의 필요성이 분명해진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박보영의 연기가 생각보다 담백해서 처음에 의아했는데, 박보영의 팬으로서 그녀가 작정하고 감정을 터트리면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내가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감정을 어느 정도 절제하는 쪽이 영화의 흐름을 위해서나 ’명화’라는 캐릭터의 입체성을 위해서나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5. 영화의 마지막 대사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이다. 박보영은 이 짧은 말과 함께 표정으로 아주 많은 말을 한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깊은 울림을 준 장면이자 박보영의 명연기가 돋보인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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