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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12월 10일 일요일

[스포주의] 영화 '콘트리트 유토피아' - 명화를 옹호하는 이유

예전에 다른 곳에 썼던 글을 이곳에 옮겨 둡니다.

이 글은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에서 명화라는 인물이 이른바 '고구마' 캐릭터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그런 분들 보시라고 써보는 반론입니다.

영화 '콘트리트 유토피아'에 대한 최초 감상은 본진에 올린 일이 있는데요:


☞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파시즘의 전복된 색깔

https://wagnerianwk.blogspot.com/2023/08/blog-post_11.html


링크한 글은 애초에 제가 페이스북에 올리려고 쓴 것이었고, 제 페친이라면 한나 아렌트에 관해 알 거라 생각해서 불필요한 내용을 생략했었습니다. 이 글에서는 굳이 그런 얘기까지 해볼게요.

그리고 링크한 글에서는 글 중간중간에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이라는 문구와 함께 핵심 문구들이 생략되어 있는데, 이 글에서는 그런 거 없습니다. 스포일러는 알아서 주의하세요.


1. 명화는 하는 일도 없이 말로만 떠든다?

간단한 비유를 해드릴게요. 게임에서 몬스터를 잡으러 가야 하는데, 파티가 100개쯤 되는데 힐러가 5명밖에 없습니다. 그 다섯명뿐인 힐러의 콧대와 몸값이 얼마나 높겠습니까? 심지어 반쪽짜리 힐러라도 별로 다르지 않겠죠. 콘유에서 명화가 바로 그 위치입니다. '하는 일 있는' 사람들이 식량 구하느라 부상의 위험을 달고 사는데, 실제로 부상을 입었을 때 치료를 해줄 수 있는 전문 의료지식을 가진 사람은 주민 중에 명화 한 사람뿐이잖아요.

영화 중간에 민성이 영탁 앞에 무릎을 꿇고 비는 장면이 나오죠. 제 생각에는 사실 민성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됐었습니다. 다름 아닌 명화의 존재 때문에, 뭘 좀 잘못한(?) 것이 있더라도 '어쩌라고' 식으로 뻔뻔하게 나갈 수 있었다는 말이죠. 만약 민성이 실제로 그렇게 행동했을 때 유일한 위험 요인은 영탁이 (또는 주민들의 여론에 의해) 주민이 아닌 외부인을 배제한다는 원칙에 예외를 두고 다른 의료전문인을 주민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입니다.


2. 외부인을 배제하는 것은 과연 현실적인가

주민회의 때 외부인을 그냥 받아들이자는 의견은 현실성 없는 이상주의 취급을 받습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외부인을 배제한다는 선택지는 과연 현실적인가요? 그렇지 않다는 사실이 영화에서 증명되기도 하지만 굳이 조금 더 따져 봅시다.

외부인 나가라는데 사람들이 곱게 나가주지 않을 거라는 건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는 일이죠. 당연히 외부인과의 전투를 가정하고 군사학적인 분석을 해봐야 합니다.

주민들에게는 대량살상무기가 없습니다. 나중에 가서 소총인지 엽총인지, 아무튼 총 한 자루가 생기는 정도이죠. 정말로 효과적으로 적을 살상할 수 있는 무기, 이를테면 미사일, 클레이모어, 화학무기, 하다 못해 수류탄 하나도 없습니다. 탁월한 작전을 세울 '제갈량'은커녕 기본적인 전투력 분석을 할 만한 사람도 주민들 중에 아무도 없습니다. 결국 전투에서 승패를 가르는 절대적인 요인은 단 하나, '쪽수'입니다. 그런데 주민들의 쪽수는 어떤가요?

만약 제가 영화 속 아파트 주민이었다면, 외부인을 배제한다는 것이 얼마나 멍청한 선택인지를 차분히 설명한 다음 대충 이런 대안을 제시하겠습니다.

- 노약자 위주로 외부인을 받아들인다

- 아이는 받아주지만 부모는 받아주지 않는다

- 생존에 도움이 되는 능력자(의사, 기술자 등)는 받아준다

- 식량을 가져오는 사람은 그 식량의 양과 질을 따져서 합당한 기간만큼만 '임시주민' 자격을 부여한다

여기서 마지막 아이디어는 영화의 주제의식을 제외하고 '생존'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면 가장 핵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사악한 생각이고, 비슷한 사악함을 현실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기도 합니다. 즉 재난 상황에서 생산능력이 없는 이상 영화에서 그랬던 것처럼 약탈을 통해 생존해야 하는데, 이때 힘을 가진 집단은 '약탈'을 '착취'로 바꿀 수 있습니다. 그리고 '착취'야말로 재난 상황과 무관하게 현실에서 권력이 작동하는 방식이죠. (그러나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착취는 나쁜 것입니다. 명화가 '하는 일도 없이' 어쩌고 하는 생각도 결국 명화가 다른 사람을 착취하는 사람이라고 오해했기 때문에 할 법한 생각 아닌가요.)


3. 멜서스와 타노스, 그리고 한나 아렌트

잠깐 '어벤저스' 얘기를 해봅시다. 어벤저스 최강의 빌런인 '타노스'는 우주에 생명이 너무 많아서 그 가운데 절반을 죽이는 일이 자신의 사명이라고 믿었죠.

현실에서 타노스와 비슷한 문제의식을 가졌던 사람이 18세기 말 영국에 있었습니다. '인구론'으로 유명한 경제학자 토머스 로버트 멜서스입니다. 식량의 생산성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하지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기 때문에 머지 않아 전세계적인 식량 위기가 발생할 거라고요.

멜서스의 가설은 훗날 질소비료의 발명에 따른 생산성 혁신으로 기각됩니다. 그러나 그에 앞서 유럽의 지배계급은 '그렇다면 사람들이 좀 죽어 없어져야겠다'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의 사상적 배경에는 멜서스의 인구론이 있었습니다. (물론 다른 여러 이유도 있었죠.)

그리고 히틀러 같은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죠. 이왕 그럴 거라면 좀 죽어도 될 것 같은 사람, 이를테면 유대인, 장애인, 백인이 아닌 유색인종 등을 죽이고 '유전적으로 우수한'(?) 아리아 인종은 죽지 않게 해야겠다...

그 모든 끔찍한 일이 일어난 뒤, 독일인이었다가 미국으로 망명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나치 정권에 관해 연구한 끝에 이렇게 결론내립니다. 그 사람들 그냥 평범한 사람들이었어요. 콘유 마지막에 명화가 했던 바로 그 말입니다. 이를테면 나치 돌격대 장교이자 홀로코스트 실무책임자였던 아돌프 아이히만은 개인적으로는 매우 친절하고 선량한 사람이었다고 합니다.


4. 영탁의 냉장고를 가지고 내려온 사람들

영화를 자세히 봐야 알 수 있는 사실인데, 명화가 영탁을 고발하기 위해 냉장고를 가지고 왔을 때, 실제로 그 냉장고를 들고 온 사람들은 '잘못했습니다'를 200번 외쳤던 그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세요. 영탁은 9층에 삽니다. 엘리베이터가 정상 작동할 리가 없지요. 9층에서 지상까지 사람의 힘으로 냉장고를 운반해야 합니다. 얼마나 무거웠고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그런 일을 하려면 사람이 얼마나 악에 받쳐야 했을까요? 이 사람들이 악에 받쳤던 까닭은 민주주의가 아닌 다수결주의에 의해, 그리고 나중에는 폭력에 의해 배제되었기 때문입니다.

토론과 설득을 통한 의사결정 과정, 그리고 약자에 대한 배려 등을 일일이 다 챙기는 일은 재난상황에서 비효율적일 수 있지요. 민주주의는 원래 비효율적입니다. 그리고 민주주의의 비효율을 비판하면서 폭력이라는 효율을 선택하겠다는 생각을 쉬운 말로 '파시즘'이라고 합니다. 즉 파시즘은 혁신의 이름으로, 그리고 정의의 이름으로 현실에 나타납니다. 영화에서는 주민이 아닌 외부인을 배제한다는 선택지를 상징하는것이 바둑알의 '하얀색'입니다. 검은색이 아니라 하얀색.


5. '검은색'을 선택할 용기

나치 시대 독일 사람들, 사실은 그냥 평범했던 그 사람들이 집단적으로 끔찍한 일을 저질렀던 이유는 간단합니다. '하얀색'이 옳다는 믿음에 의문을 가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나 아렌트가 결국 하고자 했던 말이 그것이었습니다.

콘유에서 명화는 '하얀색'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입니다. 모두가 하얀색이 옳다고 말할 때 검은색이 옳지 않냐고 말할 수 있으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즉 파시즘을 이겨내려면 용기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용기를 가진 사람은 많지 않지요.

영화평론가 '듀나' 님은 명화라는 인물이 오해받는 이유의 상당 부분이 연출의 잘못이라고 평하셨죠. 맞는 말 같기도 합니다. 예전에 제가 다른 글에서 링크하기도 했던 글 다시 링크합니다:

http://www.djuna.kr/xe/review/14247542

참고로 듀나님의 영화 평점은 별 넷이 만점입니다. 콘유는 셋 반이고, '기생충'이나 '헤어질 결심' 같은 걸작들도 셋 반입니다. 본문에서 듀나 님은 엄태화 감독님이 '포스트 봉준호' '포스트 박찬욱'이라는 투로 극찬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술술 읽히는 글은 아니지만 이런 분석도 참고하세요:

http://www.djuna.kr/xe/board/14249061


2023년 8월 11일 금요일

영화 ‘콘크리트 유토피아’와 파시즘의 전복된 색깔

1. ’홈 스위트 홈’의 헤테로포니

영화 시작 부분에 나오는 ‘홈 스위트 홈’은 노래의 텍스처가 묘하게 서늘하고 섬뜩하게 편곡되어 있다. 무엇보다 합창과 기악의 템포가 미묘하게 엇갈려 있어 감상자에게 위화감을 주고 ‘음악으로 표현된 복선’ 역할을 한다. 영화를 보면서 나는 ‘폴리템포’라는 음악 용어를 떠올렸다가, ‘헤테로템포’라는 말을 만들어 봤다가, 지금에 와서는 ‘템포’ 개념에 매몰될 일이 아니라 그냥 헤테로포니적 효과 정도라고 생각하고 았다.

’홈 스위트 홈’은 나중에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 장면에서 한 번 더 나온다. 이때는 (사실상) 피아노 독주이며, 그냥 평범하게 아련한 음악이되 영화 장면과 충돌하며 떡밥을 회수하는 역할을 한다.

2. 새하얀 파시즘

민성(박서준 분)이 영탁(이병헌 분)에게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하는 장면에서, 햇빛이 두 사람의 얼굴을 절반씩만 비춤으로써 어딘가 익숙한 클리셰를 만든다. 그러나 이때 나는 두 사람의 얼굴에서 빛을 받은 부분이 오히려 섬뜩해 보이는 전복적인 명암 대비를 느꼈는데, GV에서 엄태화 감독님이 바둑알 색깔의 의미에 관해 설명하신 말을 듣고 속으로 무릎을 쳤다. 흰색은 파시즘의 색깔이며,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포장되어 있다.

“파시즘에 대한 문화주의적 태도라 함은 파시즘을 후진적이고 전근대적인 퇴행성으로 간주하는 것. 그러나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무기력을 폭력적인 배제의 논리로 뛰어넘으려는 시도라는 점에서 혁신적이고 탈근대적인 특징도 보여준다. 사실상 ‘나쁜’ 파시즘은 없다. […] 파시즘이 마음씨 좋은 이웃의 모습으로 온다는 건 나만 그렇게 말하는 게 아니다. 아렌트가 말한”악의 평범성”도 이 문제에 대한 지적.“ (이택광)

3. 그녀의 ○○○한 눈깔 연기

배우 박보영의 팬으로서, 나는 그녀의 전작들에서 보지 못했던 표정과 연기와 캐릭터를 볼 수 있어서 좋았다. 영화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 중 하나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 장면에서 그녀의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한 눈깔(…) 연기였는데, 엄태화 감독님은 이때 명화의 행동이 가족(민성)을 지키기 위한 것이자 ’명화’라는 캐릭터가 평면적으로만 느껴지지 않도록 하는 장면이라 설명했다. 다시 말해, 명화를 선한 인물로만 이해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이를테면, 파시즘으로 근대화를 이룩한 우리 사회에서 극우 반공우의의 반대편 자리를 차지한 것은 자유주의나 리버럴리즘이 아니라 극우 민족주의다.)

4. 진실을 폭로하는 초록빛깔

스테인드 글래스에 관한 GV 관객의 질문에 대해, 엄태화 감독님은 영화의 흐름에 따른 색채 설계와 관련지어 답변했다. 그러나 그보다 앞서 선명한 채도로서 무채색 세상의 진실을 폭로하는 장면이 있었다. 명화와 민성이 폭력으로부터 도망쳐서 숨었을 때, 폭력의 일부로서 민성의 눈앞을 스쳐 간 손전등의 불빛이 우연히 드러낸 그림이었다. 그것을 본 민성의 사고는 일시적으로 멈춰버리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에서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의 필요성이 분명해진다.

이어지는 장면에서는 박보영의 연기가 생각보다 담백해서 처음에 의아했는데, 박보영의 팬으로서 그녀가 작정하고 감정을 터트리면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를 내가 알기 때문이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감정을 어느 정도 절제하는 쪽이 영화의 흐름을 위해서나 ’명화’라는 캐릭터의 입체성을 위해서나 더 나았겠다는 생각이 든다.

5. 영화의 마지막 대사

영화의 마지막 대사는 (스포일러 방지를 위한 자체검열)이다. 박보영은 이 짧은 말과 함께 표정으로 아주 많은 말을 한다. 영화를 통틀어 가장 깊은 울림을 준 장면이자 박보영의 명연기가 돋보인 장면.

2018년 8월 14일 화요일

영화 ‹너의 결혼식›, 그리고 나의 이야기

잘 만든 첫사랑 영화를 보고 나면 자신의 첫사랑 얘기를 하고 싶어진다지요. 제가 지금 그렇습니다. 막 설레요. 그래서 영화 얘기를 하면서 제 얘기를 함께 해볼까 합니다. 옛날얘기를 하려니까 제가 나이 든 것 같아서, 나이 든 게 맞지만, 조금 슬프기도 하네요.

이 글에는 영화의 일부 내용과 설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스포일러까지는 아닙니다. 영화 예고편 영상보다 약해요.

그 시절, 그놈이 좋아했던 소녀

환승희는 예쁘고 공부 잘하는 여학생입니다. 황우연은 공부에는 관심 없고 말썽이나 피우는 남학생입니다. 이런 남녀 캐릭터 설정은 커징텅(구파도) 감독 영화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와 닮은꼴입니다. 사실은 어디서 많이 보던 캐릭터 구도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쁘고 공부 잘하는 여학생이라는 점을 빼고 나면, 환승희는 션자이와 전혀 다른 캐릭터예요. 무엇보다 마음에 상처가 있는 아이죠. 승희는 션자이와 달리 거리낌 없이 '땡땡이'를 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승희가 두 번째로 학교 담을 넘는 장면에서는 짜릿한 해방감이 느껴집니다. 승희의 환한 표정이 압권.

커징텅은 여교사를 끔찍한 방식으로 성희롱하고, 션자이는 그 꼴을 보고도 결국 커징텅과 사랑에 빠집니다. 참아 주기 짜증 나는 설정이에요. 션자이 역을 맡은 배우 천옌시의 아름다움이 이걸 대충 넘겨 버리죠. 황우연은 그런 점에서 커징텅과 달라요. 오히려 환승희가 황우연을 색드립으로 놀리지요. 이때 배우 김영광 님의 연기가 압권입니다.

배우 박보영에 관해

저는 이 영화의 주연 배우 박보영 님의 팬입니다. 2년쯤 전에 우연히 박보영이라는 배우를 알게 되었고, 그래서 이 나이 먹고 난생처음으로 연예인 팬질을 하고 있어요. 그리고 그녀가 출연한 모든 작품을 감상하고 났더니 ‹늑대소년› 이후 작품부터 연기했던 다양한 배역에서 한 가지 공통점이 보였습니다.

배우 박보영은 정신적인 성장을 보여주는 캐릭터, 처음에는 자존감이 낮았다가 이런저런 일을 겪으면서 자존감을 회복해 나가는 캐릭터를 선호하는 듯하더군요. 이런 맥락에서 가장 이질적인 캐릭터는 ‹열정같은소리하고있네›의 도라희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처음부터 자존감이 그다지 낮지 않아 보이는 도라희는, 그러나 세대 전체의 낮아진 자존감을 대변하는 캐릭터라는 점에서 완전히 이질적이지도 않아요.

‹너의 결혼식›의 환승희도 그런 점에서 배우 박보영에게 매력 있는 캐릭터였을 겁니다. 그리고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그러나 스포일러가 되지 않으려면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바로 그 장면에서 승희가 내리는 결단은 자존감이 낮은 사람에게는 가능하지 않은 것이라 생각합니다. 이것이야말로 그 시점의 승희가 정신적으로 성숙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 아닐까 해요. (남자인 저는 환승희보다는 황우연에게 감정을 이입하게 되지만, 이 얘기를 하려면 정말로 스포일러가 되어버리니까 참을게요.)

박보영 님은 자신이 연기하는 캐릭터의 감정의 흐름에 관객의 감정을 동화시키는 능력이 탁월한 배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관객은 그녀가 연기하는 캐릭터가 정신적으로 성장해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위안을 받는 것 같습니다. 참 멋진 배우예요. 다만, ‹너의 결혼식›은 기본적으로 황우연의 시선을 따라가는 영화인 까닭에 환승희의 정신적 성장이 겉으로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는 아쉬움이 있어요.

개인적으로 박보영 님에게 한 가지 바라는 게 있습니다. 언젠가는 처음부터 자존감이 높은 사람, 그래서 힘든 일을 겪고 잠시 흔들릴지라도 결국은 꿋꿋하게 현실을 이겨 나가는 캐릭터도 연기하셨으면 좋겠어요. '도라희'가 비슷한 인물이지만, 제가 이런 맥락에서 가장 멋지다고 생각하는 캐릭터는 ‹품위 있는 그녀›에서 김희선 님이 분하신 '우아진'입니다. 중요한 순간마다 우아진이 내리는 선택이 얼마나 멋지던지요!

나의 이야기

‹너의 결혼식›은 장면 장면에 깨알 같은 재미가 대단한 작품입니다. 깨알 재미에 관해서라면 ‹너의 결혼식› 이전에 흥행했던 첫사랑 영화 ‹건축학 개론›보다 훨씬 잘 만든 영화라고 생각해요. 이석근 감독님은 ‹너의 결혼식›을 만들면서 관객이 많이들 겪었을 법한 현실적인 이야기를 담으려 했다네요.

그런데 저는 사실 연애를 해본 일이 없어요. 직접 경험해 본 게 있다면 이 영화를 보면서 더 많이 공감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죠. 제 선택이었지만, 이럴 때는 좀 아쉽기도 합니다.

그 여자가 좋아했던 그 남자

A는 제 첫 번째 여자친구가 됐을 뻔했던 사람입니다. 어쩌다 친해졌고, 서로 조금씩 호감을 느끼게 됐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다고 A가 생각할 때쯤 그녀가 저에게 전화를 걸어서 사귀자고 말했습니다. 저는 말뜻을 곧바로 알아듣지 못했어요. 그녀는 말을 조금 돌려서 했고, 그때의 저는 그런 말을 바로 알아들을 만큼 눈치가 빠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주 솔직하게 말해버리고 말았어요. 제 인생에 1순위는 (음악) 덕질이라고, 다른 모든 것은 그다음 순위라고요. 전화를 끊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가만, 내가 지금 고백받은 건가? 헉, 어떡하지? 지금이라도 전화 걸어서 미안하다고 말해야 하나? …에라 모르겠다, 나는 솔직하게 말했을 뿐이라고.

그때는 사람들이 핸드폰 대신 '삐삐'라는 걸 썼어요. 삐삐 번호로 전화를 걸어 음성 메시지를 남기고 단말기에는 숫자를 남기는 식이었죠. 어느 날 제 삐삐에 음성 메시지 없는 숫자 8개가 전해졌습니다. '1818'과 '4444'였지요. 누가 보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A에게 미안했지만, 이번에도 사과는 하지 않았습니다. 나란 남자, 나쁜 남자. 그녀는 그렇게 떠나갔습니다.

누군가와 연애를 한다는 건 그 사람과 함께 보내는 시간 만큼 내 인생의 시간을, 그 시간만큼의 '기회비용'을 투자한다는 얘기와 같습니다. 그 사람을 세상 무엇보다 사랑한다면 그 시간이 아깝지 않겠지만, 저는 그 기회비용을 기꺼이 포기할 만큼 누군가를 좋아해 본 일이 없어요. 그래서 저는 이 나이를 먹도록 연애 경험이 없습니다. 제가 노력하지 않는데 연인이 저절로 생기지는 않더라고요.

기억하나요? 당신에게 고백한 사람

‹너의 결혼식›에는 의사소통이 꼬이면서 황당한 일로 이어지는 에피소드가 나옵니다. 자세한 얘기를 하거나 특정 '키워드'를 말해버리는 순간 스포일러가 되어버리니까, 이번에도 역시 제 얘기를 할게요.

저는 그때나 지금이나 평소에 TV를 거의 보지 않습니다. 요즘 어떤 노래가 인기 있는지, 연예인 누가 누구인지도 잘 모릅니다. 그때는 특히 유행어 같은 것에 둔감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눈에 밟힌다'라는 표현이 사랑을 고백하는 맥락에서 쓰일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그리고 누가 저한테 그 말을 했던 적이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습니다. 그런데, 언제 어디서 누구한테 그 말을 들었는지 도무지 모르겠더라고요. 그저 '밟힌다'라는 말의 어감 때문에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조금 나빴던 기억이 흐릿하게 날 뿐이었죠.

제 인생 두 번째로 고백받았을지도 모르는 상황인데도 자세한 내용을 도무지 기억하지 못하니 좀 억울하더라고요. 누구였는지 아직도 몰라요. 그날 이후로 모르는 유행어를 알게 되면 무슨 뜻인지 인터넷으로 검색해 보곤 합니다. 때로는 일상에서 그 표현을 써먹기도 해요.

그때 이미 결혼을 해서 아이를 둘이나 낳았던 첫째 누나가 해준 얘기. 큰 조카 놈이 유치원에 갔더니, 여자아이들이 조카 앞에서 예쁜 척을 하면서 혀 짧은 소리로 '슈가'라는 걸그룹 흉내를 내더래요.

"안녕하세요? '쉬가' 아유미에요!"

그 말을 들은 조카도 평소에 TV를 볼 기회가 없었는지라 그게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했다고 합니다. 다만, '쉬'라는 음소에 반응했다네요.

"엄마, 쟤들이 나한테 욕했쪄!"

사랑은 언제나 타이밍

B는 제 첫사랑이자 짝사랑이었던 여자입니다. 첫눈에 반하거나 하지는 않았어요. 그냥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났을 때, 꿈과 현실의 경계에서 느닷없이 제 마음을 깨닫게 됐죠. 아, 내가 B를 좋아하는구나.

그때쯤 제가 B를 쳐다볼 때와 비슷했을 듯한 눈빛을 또 다른 여자 C가 저에게 보내기 시작했습니다. C가 저를 좋아한다는 사실은 저를 포함해 주위 사람 누구나 알았을 겁니다. 제가 B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다들 알면서 모른 척했을 거예요. 저는 C에게 조금은 호감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B가 저를 좋아했는지는 잘 모르겠어요.

B와 C는 절친이었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B가 저를 좋아하면서도 친구를 배신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정말 그랬는지는 알 수 없어요. 누군가를 진심으로 좋아하면 자신의 마음에 가려서 상대방의 마음이 보이지 않는대요. 박보영 님이 출연했던 ‹힘쎈여자 도봉순›에서 인국두가 그러던데요.

앞서 말했던, 연인과 함께 보내는 시간 만큼의 '기회비용'을 처음으로 기꺼이 포기할 뻔했던 때가 이때였습니다. 그러나 하지 않았어요. B는 나중에 제 친구와 사귀는 듯한 눈치를 보이더군요. 혼자 조금 슬퍼하고 말았어요.

만약 시간을 되돌려 그 시절로 돌아가게 된다면, 어쩌면 저는 C와 연인이 될지도 모릅니다. B는 혼자서라도 좋아할 만큼 좋아해 봤으니까 괜찮아요. 그러나 C가 저를 쳐다보던 눈빛을 외면하기는 쉽지 않을 듯해요. 제 앞에서 비슷한 눈빛을 했던 여자는 그 뒤로도 몇 명 있었지만, 아직도 미안한 마음이 남을 만큼 애절한 눈빛을 했던 사람은 C뿐입니다.

C를 승희라고 부를게요. 승희야, 그때 내가 네 마음 받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https://steemitimages.com/0x0/

그 시절 추억을 소환하는 방법

‹너의 결혼식›에는 주연 배우 또래 관객이 공감할 법한 추억의 소품들이 나옵니다. 그런데 가장 중요한 것이 빠진(또는 약한) 듯해요. 영화 ‹건축학 개론›의 중요한 성공 요인이라 할 수 있을 '추억의 그 노래'입니다. 음악이 추억을 소환하는 힘은 물성을 가진 소품과는 차원이 다르죠.

굳이 추억을 소환하지 않더라도, 이를테면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소녀›에서 허무맹랑한 장면을 얼렁뚱땅 넘어가게 만들고 관객의 마음을 결정적으로 움직이는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것이 바로 음악입니다. 영상과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음악 앞에서 현실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려요.

‹너의 결혼식›에서도 음악이 나름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승희가 짧게 흥얼거리는 노래, 승희를 위해 우연이 부르는 노래, 그리고 결정적인 장면에서 승희가 듣는 노래. 그러나 음악을 활용하는 방식이 여러모로 아쉬워요. 현실성을 잘 살렸을지는 몰라도 음악 자체의 강력한 힘을 연출에 충분히 활용하지는 못했죠. 제가 생각하는 이 영화의 가장 큰 단점입니다.

제가 생각하기에 ‹너의 결혼식›에서 가장 임팩트 있는 음악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 나오는 음악입니다. 배우 박보영 님이 부른 노래예요. 이 음악이 영화 중간에 효과적으로 활용되었으면 어땠을까 생각해 봅니다. 박보영 님이 자신의 노래 실력을 부끄러워하는 까닭에 OST 부르기를 여러 번 고사했었다고 하니 감독님으로서는 하고 싶어도 가능하지 않은 선택이었겠죠.

박보영 님의 노래에서 드러나는 발성의 기술적 한계는 뚜렷합니다. 본인이 그걸 잘 아는 모양이에요. 그러나 영화 OST 녹음 정도는 괜찮으니까 조금 더 용기를 가지셔도 됩니다. 사실 괜찮은 정도가 아닙니다. 목소리 자체의 매력이 기술적 한계를 메우고도 남아요.

스포일러 아닌 스포일러: 그녀가 부른 엔딩 OST

시사회를 보고 집에 와서 마음이 설레서, 뭐라도 써야지 싶어서 OST 얘기를 써서 그녀의 팬카페에 올렸습니다. 그리고 밤늦게까지 뒤척였습니다. 그때 썼던 내용을 재활용할게요.

영화관에서 듣고 집에 와서는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첫 가사는 아마 '있잖아'였지 싶어요. 여기에 붙은 세 음이 곡 전체의 씨앗이 됩니다. 아마도 음이 '솔라시'였을 거예요. 제가 절대음감이 없어서 틀렸을 수도 있는데, 확실한 건 온음씩 상행하는 음형이었다는 것. 화음은 으뜸화음입니다. '솔라시'가 맞다면 곡의 조성이 G장조가 되는 셈이죠. 그러나 여기서는 그냥 C장조로 옮겨서 쉽게 생각해 보죠. 그러면 '도레미'가 됩니다.

으뜸음 '도'로 시작해 온음씩 상행하는 '있잖아' 음형은 영화 내용과 자연스럽게 공명합니다. 이 음형은 아우프탁트(못갖춘마디)에 위치하고, 그다음 박부터가 정박이 되죠. 노래가 정박으로 시작하면 안정적이고 계획적이라는 느낌을 줍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시작되는 게 아니겠죠.

또 만약 '도레미'가 아니라 '미파솔'이었다면, 그러니까 반음 올라갔다 다시 온음 올라가는 음형이었다면, 화음은 도미넌트(딸림화음)가 됐거나 도미넌트 화음을 향하는 강한 방향성을 가졌을 겁니다. 이건 사랑이 제법 진행됐을 때에 어울릴 법한 음형이에요. 그러나 '있잖아' 음형은 첫사랑을 시작하는 연인을 위한, 설레는 시작 느낌을 담은 음형입니다. '있잖아, 내 말 잘 들어봐. 너의 여자친구로서 내가 너에게 바라는 건 이런 거야.'

노래가 흐르면 '있잖아' 음형의 음정 관계에 온음이 아닌 반음이 섞이기도 하고, 으뜸화음이 아닌 다른 화음이 따르기도 합니다. 그러다 결국은 스포일러인 듯 스포일러 아닌 방향으로 흘러갑니다.

‹너의 결혼식› 참 재미있습니다. 꼭 보세요. 8월 22일 정식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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