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6월 5일 수요일

윤이상 ‹화염 속의 천사› 외 (최수열·부산시향 2019.5.17.)

부산문화회관 월간지 『예술에의 초대』에 실린 글입니다.


"악보에서 불타는 사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소음처럼, 극적으로, 거의 있는 그대로 묘사한 그것은 빌딩 꼭대기에서 떨어지는 모습과 그것을 목격하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분명히 깨달은 이들이 경악하고 당황하는 모습입니다. 남은 것은 말을 잃은 무력감입니다."

윤이상이 말한 "불타는 사람"이 부산문화회관에 나타나 무시무시한 온도로 타올랐다. 고음이 격렬하게 부딪치며 "소음처럼, 극적으로" 불탔다. 화염의 뜨거운 온도가 마치 내 몸을 태우는 듯 고통스럽게 느껴졌다. 무려 20여 명이 윤리적·사회적 쇄신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여 건물에서 뛰어내렸다는 이야기는 1991년의 한국을 살지 않았던 사람에게 역사적 기록으로만 존재한다. 윤이상은 그것을 현재적 기억으로 만들었고, 독일어 작품 제목에 '메멘토'(기억)라는 말을 썼다. 그리고 최수열이 지휘한 부산시향이 그 '메멘토'를 강렬한 음향으로 소환했다.

"이들의 이타적인 행동을 음악으로 기억하고자 했고, 무고한 사람이 사회의 희생자가 됨을 고발하고자 했습니다." 윤이상은 1994년 음악학자 발터-볼프강 슈파러와 나눈 대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정치적 목표를 좇거나 선동적 의도로 이 곡을 쓴 것이 아닙니다. 다만 나는 작곡가로서 제 양심에 거리낌이 없게끔 행동했습니다."

오해와 달리 윤이상 작품 가운데 사회참여적 성격이 짙은 작품은 그리 많지 않으며, 대부분의 작품은 도교적·불교적 깨달음을 추구하거나 순음악적 어법을 탐구하는 것들이다. '화염 속의 천사'와 '광주여 영원히'는 그런 점에서 예외적인 작품으로, 구성상으로도 여러모로 닮은꼴이다. 그리고 내가 특히 주목하는 것은 윤이상이 곡 중간에 '비브라폰'이라는 악기를 활용한 방식이다.

'광주여 영원히'에서 윤이상은 '발포' 장면 직후 믿을 수 없는 사건을 목격한 정신적 충격으로 현실감을 잃은 가운데 환상이 의식으로 침투해 오는 심리상태를 연출했다. 영화에 비유하자면, 이 대목에서 마치 화면이 극단적으로 느려지고 소리는 사라지거나 초자연적인 음향이 들려오는 듯하다. 그런가 하면 '화염 속의 천사'에서 윤이상은 '천사'가 탄생하기에 앞서 화염 속에 자신을 내던지겠다는 결단을 내리기까지의 고뇌와 두려움이 환상으로 이어지는 심리상태를 연출했다.

이처럼 현실의 영역에서 환상의 영역으로, 다시 현실의 영역으로 돌아오는 짜임새와 음악적 연출 방식에서 두 작품은 닮은꼴이다. 그리고 '비브라폰'의 몽환적인 음색이 두 작품에서 효과적으로 사용되었으며, 이것이 '현실의 영역'에서 사용된 글로켄슈필 및 실로폰의 음색과 대비된다.

몇 년 전 최수열이 광주시립교향악단을 지휘해 '광주여 영원히'를 연주했을 때, 비브라폰은 악보에 지시한 것보다 좀 더 큰 음량으로 환상의 영역이 음향적으로 두드러지게끔 했다. 광주시민문화회관이 공간 특성상 작은 소리를 섬세하게 전달하지 못했던 까닭으로 짐작되는데, '화염 속의 천사'가 연주된 부산시민문화회관의 음향은 작은 소리를 온전히 전달하지 못한다는 점에서 비슷하지만 광주보다는 조금 낫다고 느껴졌다. 그래서인지 부산에서 최수열이 연출한 비브라폰 소리는 상대적으로 적당한 음량과 분명한 비브라토로 몽환적인 느낌을 알맞게 살렸다.

'에필로그'에서는 서양음악 전문 소프라노 대신에 국악 전문 가수를 기용한 아이디어에 감탄했다. 음악학자 이경분은 '에필로그'를 두고 "죽은 영혼을 위로하는 곡소리의 '윤이상적 버전'"이라 평한 바 있는데, 이번 공연에서 겉소리와 속소리를 오가는 박민희의 창법이 '곡소리'를 더욱 뚜렷이 살리는 결과를 낳았다. 생각해 보면 윤이상은 한국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작곡한 초기 가곡에 관해 "내가 바라는 것은 비록 서양 발성법을 구사하는 성악가라 할지라도 약간의 우리 전통음악이나 민요의 선적, 율동적, 색채적인 묘미를 연구해서 불러주었으면 하는 것이다."라 한 일도 있다.

올해 3월 말 통영국제음악제에서는 미하엘 잔덜링이 지휘한 루체른 심포니 오케스트라가 '화염 속의 천사'와 '에필로그'를 연주했었고, 소프라노 서예리가 탁월한 목소리로 감동을 더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이 곡을 서예리보다 잘할 수 있는 가수가 있을 것이라 믿지 않았다. 그러나 부산에서 박민희의 노래를 듣고 나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 곡에서만큼은 국악 전문 가수를 기용하는 것이 관습으로 굳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반면 성인 여성 합창단 대신 어린이 합창단을 기용한 아이디어에는 반대한다. 어린이 합창단으로는 "우주적 음향세계"가 제대로 살아나지 않았으며, 앳된 목소리는 망망우주(茫茫宇宙)에서 부유하는 대신 지상으로 내려와 박민희의 '곡소리'를 보조하는 역할을 했다. "'에필로그'는 완전히 다른 음향세계로, 감정으로 가득했던 앞선 관현악곡과 달리 완전히 무기질적입니다. 죽은 이의 넋이 다른 세계에 간다면 아마도 '에필로그'에서와 같은 우주적 음향세계의 소리를 들을 것입니다."

어쩌면 최수열은 부산문화회관의 음향 특성을 고려해 그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박민희는 마이크를 사용하는 듯했는데 음량이 너무 크다고 느꼈다. 지상의 슬픔을 강조하는 의도를 헤아리면 해석의 일관성은 있다 하겠으나 지상 세계에 너무 초점이 맞춰진 것은 아무래도 불만스러웠다. 음향이 좋기로 유명한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성인 여성 합창단의 우주적 음향 세계와 박민희의 지상의 곡소리를 대등하게 하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오케스트라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지휘는 최수열이었으면 좋겠다.

오케스트라 편성이 작을수록 부산문화회관의 음향적 단점이 두드려졌던 것은 아쉬웠고, 윤이상 곡에서 부산시향이 자칫 현대음악의 섬세한 음향이 살아나지 못할 위험을 강력한 음량으로 극복한 것과 달리 모차르트 곡에서는 내가 머리로 이해한 아티큘레이션과 몸으로 느낀 소리 사이에 심각한 괴리가 느껴졌다. 부산에도 클래식 음악 전용홀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많은 예산이 필요한 일인 만큼 쉽지 않을 것이다. 다만 통영국제음악당이나 대구콘서트하우스처럼 음향이 뛰어난 공연장이 언젠가는 부산에도 있어야 한다는 필요성은 꾸준히 인식되길 바란다.

차이콥스키 '로코코 주제에 의한 변주곡'은 첼로가 아닌 비올라가 협연한 것이 색다른 느낌을 주었고, 비올리스트 김상진은 비올라의 색다름과 원곡의 익숙함 사이를 줄타기하듯 훌륭하게 연주했다. 김상진과 함께 모차르트 '신포니아 콘체르탄테'를 협연한 바이올리니스트 임홍균은 탱글탱글한 리듬과 윤기 있는 음색으로 모차르트 음악의 맛깔스러움을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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