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1월 16일 목요일

크로노스 콰르텟, 검은 천사, 그리고 칼 세이건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세상이 뒤집혀 있었다. 허공에 끔찍한 것들이… 검은 천사들을 향했다."

미국 작곡가 조지 크럼이 베트남 전쟁의 참상을 두고 한 말입니다. 조지 크럼은 '검은 천사'(블랙 엔젤스)라는 곡을 쓰기도 했지요. 작곡가가 처음부터 베트남 전쟁을 생각하면서 이 곡을 쓴 것은 아니라지만, 적어도 작곡 중에 베트남 전쟁을 의식한 것은 분명합니다.

검은 천사는 보통 죽은 천사 또는 타락한 천사를 뜻합니다. 작곡가는 "혼탁한 오늘날 세계에 관한 우화"로 ‹블랙 엔젤스›를 작곡했다고 하며, 그 분위기는 묵시론적이고, 때로는 악마가 현신한 듯 무시무시합니다. 작곡가는 악보에 "전쟁의 시대에"(in tempore belli), "13일의 금요일, 1970년 3월에 완성."이라고 썼습니다.

‹블랙 엔젤스›는 타락한 영혼이 구원에 이르는 여정을 그리는 짜임새로 되어 있고, '검은 땅에서 온 13가지 이미지'라는 부제가 붙어 있습니다. 전기곤충들의 밤, 뼈 소리와 피리 소리, 악마-음악, 흑사병의 사라방드 등 13가지 장면들의 제목이 심상치 않습니다. 이 가운데 첫째 장면인 '애가(哀歌) I: 전기곤충들의 밤'은 영화 ‹엑소시스트›에 삽입되기도 했지요.

미국을 대표하는 세계 최정상의 현대음악 전문 현악사중주단인 '크로노스 콰르텟'이 11월 19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블랙 엔젤스›를 연주합니다. 크로노스 콰르텟의 창단 계기가 바로 이 작품이라고도 하더군요. 이번 공연에서는 ‹블랙 엔젤스›뿐만 아니라 록 밴드 '더 후'의 곡으로 유명한 ‹바바 오라일리›(피트 타운센드 작곡)를 현악사중주곡으로 편곡한 작품과 윤이상 현악사중주 5번 등 흥미로운 작품들이 연주됩니다.

크로노스 콰르텟은 2007 통영국제음악제에서 테리 라일리 ‹선 링스›를 아시아 초연했던 악단이기도 하지요. 이번 공연에서는 ‹선 링스› 중 마지막 악장 ‘한 지구, 한 인류, 한 사랑’을 다시 한번 연주할 예정이기도 합니다. 그 공연을 기억하시는 분이 많을 텐데, 안타깝게도 저는 그 공연을 보지 못했습니다.

‹선 링스›는 '우주의 소리'를 바탕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미국 아이오와 대학 물리학과 도널드 거넷 교수가 여러 가지 천문 현상을 소리로 변환했고, 미국을 대표하는 현대음악 작곡가 테리 라일리가 이것을 바탕으로 작곡했으며, 멀티미디어 아티스트 윌리 윌리엄스가 미국항공우주국(NASA)이 제공한 우주 사진 및 지구의 삶을 담아 보이저호로 우주에 실어 보낸 자료 등을 활용해 제작에 참여했다네요.

작곡가 테리 라일리가 ‹선 링스›를 구상하던 중 9.11 테러가 일어났습니다. 아프가니스탄에 전쟁이 임박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주와 미래를 말하는 작품을 써야 하는지 고민하던 작곡가는, 작가 앨리스 워커가 라디오에 출연해 주문처럼 하던 말을 듣고 영감을 받았다고 합니다. "한 지구, 한 인류, 한 사랑."

‹선 링스›라는 작품을 알아가면서, 저는 이 작품을 설명할 때 칼 세이건을 말하지 않는 건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외계 지적생명체를 찾는 일에 평생 매달린 과학자이며, 보이저호에 인류의 수백 가지 언어로 된 인사말, 지구의 위치, 사람들의 모습, 바흐 · 모차르트 · 베토벤 · 스트라빈스키 · 비틀스 · 루이 암스트롱 등의 음악을 실어 보내는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사람이지요. 칼 세이건은 우주로 쏘아 보낸 보이저 1호가 61억 킬로미터 거리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에 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사진을 찍는 데 성공했습니다. 잘 보세요. 점이 하나 보입니다. 저것이 이곳, 우리 고향, 우리 자신입니다. […] 수천 가지 종교, 이데올로기와 경제정책, 모든 사냥꾼과 약탈꾼, 모든 영웅과 겁쟁이, 문명을 일으킨 사람과 파괴한 사람, 왕과 농부, 사랑에 빠진 젊은이, 꿈 많은 아이, 어머니와 아버지, 발명가와 탐험가, 정신적 스승과 부패한 정치인, 슈퍼스타와 위대한 지도자, 성인과 죄인, 인류 역사 속의 이 모든 이들이 이곳에서 살았습니다. 햇빛에 걸려 있는 티끌 위에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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