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마에스트로 샤이, 당신이 클라우디오 아바도를 되살려냈어요!"
지난 8월 12일, 루체른 페스티벌 개막공연 커튼콜 때 한 관객이 이탈리아어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이날 출연했던 베이스바리톤 사무엘 윤 선생이 무대에서 똑똑히 들었다고 해요. 밀라노에서 공연할 때 봤던 사람이라는데 스위스 루체른까지 왔던 모양입니다. 1938년 지휘자 아르투로 토스카니니가 루체른 페스티벌을 만들었고, 지휘자 클라우디오 아바도가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를 오늘날과 같은 '올스타' 오케스트라로 만들었지요.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가 바로 이 사례를 참고해 만든 악단입니다.
리카르도 샤이는 아바도가 밀라노 라스칼라 오페라 극장 음악감독으로 있을 때 20살 나이로 보조지휘자가 되었고, 지금은 그곳 음악감독입니다. 아바도와 샤이는 모두 밀라노 출생이기도 하지요. 그리고 클라우디오 아바도 타계 이후 루체른 페스티벌이 예전 같지 않다는 목소리가 크던 차에 샤이가 루체른 페스티벌 음악감독이 되었습니다. 올해가 그 첫 번째 페스티벌이고, 개막공연은 샤이가 지휘한 루체른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의 말러 교향곡 8번이었습니다.
저는 지난해부터 이 공연에 꼭 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샤이는 살아있는 지휘자 가운데 제가 가장 좋아하는 사람인데다 샤이 음반 가운데 가장 좋아하는 것이 말러 교향곡 8번이거든요. 마침내 도착한 루체른 시내 곳곳에 "환영합니다, 리카르도 샤이!"라는 광고가 걸린 모습이 얼마나 멋지던지요!
말러 교향곡 8번은 규모 면에서나 기술적으로나 연주하기 까다롭기로 악명 높습니다. 연주 기법이 어려운 곳도 많지만, 상설 악단이 아닌 페스티벌 오케스트라와 대규모 합창단, 솔리스트 8명 등이 함께 연습하기에 시간이 충분하지 않았을 겁니다. 사무엘 윤 선생 말로는 개막 공연이 총연습(게네랄프로베) 같은 느낌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래서인지 실수가 제법 있었지만, 그래도 이날 연주는 대단했습니다. 이렇게까지 탁월한 말러 교향곡 8번 연주를 공연장에서 다시 들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였지요.
『LA 타임스』 소속 음악평론가 마크 스웨드는 이날 공연을 극찬하는 동시에 '어째서 미국은 리카르도 샤이를 뉴욕, 시카고, 또는 보스턴으로 데려오지 못했을까'라며 한탄했습니다. 음악평론가 페터 하그만은 샤이를 아바도의 "참된 후계자"(eigentlicher Nachfolger), "마땅한 후계자"(Der logische Nachfolger)라 평했습니다. 루체른 페스티벌 예술감독 미하엘 헤플리거는 개막 축하연에서 샤이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Veni, vidi, vici!(왔노라, 보았노라, 이겼노라!) 미스터 샤이, 당신이 이겼어요!"
샤이는 예술적인 문제를 적당히 넘어가는 법이 없는 지휘자라고 하지요. 그래서 샤이를 싫어하는 음악가도 많고, 몇몇 연주자는 그 때문에 루체른을 떠났다고도 합니다. 그런 점에서 말러도 성격이 비슷한 작곡가이자 지휘자였지요. 소프라노 리카르다 메르베스는 이른바 '하이 C'를 '매우 여리게' 부르기가 너무 힘들어서 리허설 중에 울음을 터트렸다고도 합니다. 강력한 성량이 돋보이던 이 가수가 이 대목을 끝내 그럴싸하게 해내는 것을 보고 저는 깜짝 놀랐지요.
명상하는 신부(Pater Profundus) 역을 맡은 사무엘 윤은 제가 어떤 음반으로도 들어보지 못한 기적적인 명연을 들려주었습니다. 지휘자가 까다로운 요구를 해서 힘들었다고 웃으며 불평하면서도 샤이가 강경한 태도를 보일 때는 악보에 분명한 지시가 있을 때라고도 하더군요.
페터 마테이, 율리아네 반제, 후지무라 미호코, 사라 민가르도, 안나 루치아 리히터 등 다른 가수들도 모두 훌륭했지만, 저는 테너 안드레아스 샤거를 보고 혀를 내둘렀습니다. 엄청난 성량과 강력한 고음을 자랑하면서도 카랑카랑한 소리가 아닌 맑고 고운 목소리를 가진 테너였지요. 리듬감에 문제가 있는 것만 빼면 전설적인 바그너 테너로 성장할 만한 가수였습니다. 말러 《대지의 노래》를 부르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쓰다 보니 하고 싶은 말을 다 담기에는 지면이 모자라는군요. 하이팅크, 바렌보임, 아르헤리치, 폴리니, 그라지니테틸라 등의 공연에 관해서도 할 말이 많지만, 나중에 다른 기회가 있을 때 말씀드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