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4일 금요일

암스테르담 콘세르트헤바우 vs. 베를린 필하모니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해마다 휴가철이면, 저는 유럽에서 열리는 공연 일정을 살펴보곤 합니다. 마음에 드는 공연 일정에 맞추어 그리로 휴가를 가려고요. 문제는 거기도 휴가철이라는 겁니다. 그 전에 시즌이 끝나고 가을에 새 시즌이 시작되는 식이지요. 그리고 공연이 없는 동안 놀러 다닐 음악가들을 휴양지에서 열리는 각종 음악제에서 초청합니다. 음악제에 출연하면 놀러 간 김에 돈도 벌 수 있거든요. (통영은 여름마다 관광객으로 미어터지는지라, 통영국제음악제는 오히려 여름을 피해 봄에 열립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루체른 페스티벌, 바이로이트 페스티벌 등이 이렇게 흥하니 요즘은 대도시에서도 페스티벌을 개최하곤 하지요. 도심형 음악제는 야외 공연이 많고, 베를린 발트뷔네 콘서트가 대표적입니다. 제가 올여름 휴가를 보냈던 암스테르담의 '로베코 서머나이트'(Robeco SummerNights)도 그런 도심형 음악제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음악제는 그렇게 유명한 행사는 아니지만, 콘세르트헤바우(Concertgebouw)에서 열린다는 점이 매력적입니다. 베를린필, 빈필과 함께 특급 오케스트라로 유명한 '콘세르트헤바우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그 공연장이지요.

콘세르트헤바우는 빈에 있는 무지크페라인잘(Musikvereinssaal)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음향을 자랑하는 공연장이기도 합니다. 저는 그동안 통영국제음악당 콘서트홀 음향이 세계 주요 공연장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하다고 주장하곤 했는데요, 이번에 콘세르트헤바우에 가보니 두 곳의 음향 수준 차이가 생각보다 크지 않아서 새삼 놀랐습니다. '수준' 차이는 크지 않았지만, 음향 특성은 많이 달랐습니다. 2014년 개관한 통영국제음악당이 명료하고 현대적인 소리를 낸다면, 1888년 개관한 콘세르트헤바우는 부드럽고 고풍스러운 소리를 내더군요.

공연장의 음향 특성을 결정짓는 변수는 매우 많고, 이것을 설명하려면 저도 잘 모르는 물리학(음향학) 지식을 동원해야 합니다. 그래도 간단하게 잔향 시간(Reverberation time)만 비교해 볼까 싶어서, 이참에 콘세르트헤바우, 무지크페라인잘, 통영국제음악당과 예술의전당 음향 관련 자료를 찾아봤습니다. 그러나 귀로 듣고 느끼는 음향 특성과 많이 다르구나 하는 허무한 결론만 내리고 말았습니다. 역시 세상은 단순하지 않네요. 잔향 시간 짧기로 유명한 라이프치히 게반트하우스도 어쩌면 생각보다 귀로 느껴지는 차이가 크지 않겠다 싶었습니다.

콘세르트헤바우는 잔향 시간이 유난히 길기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울림이 길게 이어진다고 느껴지지는 않더라고요. 통영국제음악당보다 훨씬 높은 천장을 반사판 없이 거의 그대로 살렸는데도 소리가 벙벙거리지 않고 아주 작은 소리까지 공연장 구석구석을 포근하게 감싸는, 좋게 말하면 부드럽고 따듯한 소리인데, 나쁘게 말하면 조금은 흐릿하게 들리는 것만큼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소리가 또렷하기로는 차라리 통영국제음악당이 낫다고 느껴졌습니다. 오디오에 비유하자면, 콘세르트헤바우가 탄노이 스피커라면 통영국제음악당은 아발론 스피커라 할 수 있겠습니다.

마지막 날에는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상주하는 베를린 필하모니로 갔습니다. 이곳 또한 음향이 좋기로 유명한 곳이지요. 콘세르트헤바우와 견주면 음향이 한 수 아래라고 평가받는 곳이지만, 통영국제음악당과 비슷한 현대적인 소리 탓인지 저한테는 오히려 콘세르트헤바우보다 베를린 필하모니가 낫다고 느껴졌습니다. 제가 본 공연은 아마도 베를린필 2015/2016 시즌 첫 공연이었을 텐데, 마침 프로그램도 20세기 작곡가인 브리튼과 쇼스타코비치 작품으로 되어 있어서 현대적인 음향을 제대로 즐길 수 있었습니다.

저는 콘세르트헤바우에서 마르쿠스 슈텐츠가 지휘하고 피아니스트 라르스 포크트가 협연한 네덜란드 방송교향악단(RFO), 노르웨이를 대표할 만한 오케스트라이자 110여 년 역사를 자랑하는 베르겐(Bergen)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앤드루 리튼 지휘), 거장 헤르베르트 블롬슈테트가 지휘하는 구스타프 말러 유겐트 오케스트라, 그리고 체임버홀에서 열린 셰리든 앙상블(Sheridan Ensemble)의 공연을 보았는데요, 쓰다 보니 지면이 거의 다 차서 이 얘기는 다음에 할게요. 아 참, 제가 휴가 떠나기 전에 칼럼 원고를 미리 써놓는 일을 깜빡하는 바람에 한 주 쉬어버렸네요. 독자 여러분께 사과 올립니다.

※ 나중에 고침: 베르헌 → 베르겐. 네덜란드 오케스트라가 아니고 노르웨이 오케스트라인데 헷갈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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