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모차르트: 교향곡 35번 '하프너'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는 잘츠부르크의 부유한 상인이었다가 작위를 얻어 귀족이 된 하프너 가문을 위해 '하프너 세레나데'를 작곡합니다. 이 곡으로 재미를 본 아버지 레오폴트 모차르트는 볼프강에게 세레나데를 한 곡 더 쓰라고 독촉했는데, 오페라 《후궁탈출》 등을 작곡하느라 바빴던 모차르트는 그야말로 급한 불 끄듯이 작곡해서 아버지에게 보냈지요. 그런데 날림으로 쓴 곡이라기엔 완성도가 너무 뛰어나서, 모차르트는 이 곡을 나중에 살짝 고쳐 교향곡으로 발표합니다.
교향곡 35번 '하프너'는 모차르트가 빈으로 이사한 뒤에 처음 작곡한 교향곡입니다. 잘츠부르크 대주교와 갈등 끝에 대주교 비서에게 엉덩이를 걷어차이는 수모를 겪고 난 뒤에 있었던 일이지요. 그래서 '하프너 교향곡'은 잘츠부르크 가문을 제목에 달고 있으면서도 빈에서 초연되었습니다. 모차르트는 자신을 하인 취급하고 외부 활동을 막은 대주교를 참지 못했다고 하는데요, 모차르트의 대표적인 걸작 중 하나인 '하프너 교향곡'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심장합니다.
작품 짜임새 또한 이런 맥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2악장에서는 잘츠부르크가 아닌 빈 음악 양식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4악장에서는 오페라 《후궁 탈출》 중 오스민의 아리아 "O, wie will ich triumphieren"(어떻게 이 승리를 자축할까)에서 따온 선율을 주요 주제로 합니다. 무엇보다 4악장은 빠르고 화려한 음형으로 '브라보'를 부르는 악장이지요.
어쩌면 모차르트는 콜로레도 대주교와 비서인 아르코 백작을 이 작품으로 마음껏 비웃어주려고 하지 않았을까요? 잘츠부르크가 모차르트를 잃은 사건과 관련해 동아일보 유윤종 기자의 논평이 흥미롭습니다. "절대주의 시대였기에 망정이지 당시 잘츠부르크에 원로원이나 의회라도 있었으면 시민들 전체가 훗날까지 험담을 들을 뻔했습니다."
이베르: 플루트 협주곡
이베르 플루트 협주곡은 플루트 전공자에게 필수곡으로 통합니다. 그만큼 독주자가 기량을 뽐낼 수 있는 곡이기도 하고요. 자크 이베르는 20세기 사람이면서 낭만주의 음악 어법을 고집했던 '보수적인' 작곡가인데요, 그러나 이베르도 시대를 완전히 거스르지는 못해서 20세기 느낌이 음악에 조금은 묻어납니다. 현대음악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참신하다고 느낄 만큼만요.
이 작품의 형식적 특징은 세 악장 모두 A-B-A' 꼴 세도막 형식이고, 1 · 2 · 3악장의 관계 또한 A-B-A' 꼴이라는 점입니다. 1악장과 3악장이 빠르고 화려한 주제선율 사이에 비교적 차분한 가운데 부분이 있는 짜임새라면, 2악장에서는 거꾸로 아늑한 선율 중간에 잠깐 긴장감이 높아지는 짜임새입니다.
이 작품은 반음계적 선율과 화성, 불규칙하게 변하는 리듬, 때로는 인상주의적인 요소와 심지어 복조성까지 사용된 '현대적인'(?) 작품이면서도 귀로 듣고 이해하기에 그다지 어렵지 않은 단순명료함 또한 갖춘 독특한 곡입니다. 무엇보다 플루트 독주자의 화려한 테크닉이 돋보이는 이 곡을 플루티스트 최나경 씨가 어떻게 연주할지 기대하세요!
보른: 플루트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카르멘 판타지
비제 오페라 《카르멘》에서 선율을 따와서 만든 기악곡은 여럿 있지요. 그 가운데 바이올린 곡으로는 사라사테가 작곡한 《카르멘 판타지》가 유명하고, 요즘에는 왁스만의 《카르멘 판타지》가 더 자주 연주되는 추세입니다. 왁스만 곡은 바이올린 콩쿠르 과제곡으로도 자주 쓰이지요. 프랑수아 보른(François Borne)의 《카르멘 판타지》는 플루트를 위한 '카르멘' 가운데 가장 유명합니다.
이 곡을 여는 선율은 카르멘의 비극적 죽음을 암시하는 음형으로 '운명의 주제'라고도 부릅니다. 이 주제를 중심으로 음악이 이어지다가 중간에 저 유명한 '아바네라'(Habanera) 선율이 나오지요. 그리고 변주가 이어지면서 '아바네라'가 이 곡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마지막에는 만만치 않게 유명한 '집시의 노래'와 '투우사의 노래' 선율과 함께 화려하게 끝납니다.
《카르멘 판타지》는 오페라 《카르멘》을 잘 모르시는 분도 '아바네라'부터는 익숙한 선율과 더불어 재미있게 즐길 수 있는 곡입니다. 단악장으로 된 짤막한 곡이지만, 듣고 나면 원곡인 오페라 《카르멘》을 듣고 싶어질지도 몰라요.
프로코피예프: 고전 교향곡
20세기 작곡가 프로코피예프는 하이든 양식으로 교향곡을 쓰겠다는 생각을 반쯤 재미로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해서 탄생한 '고전 교향곡'은, 사실 제대로 된 하이든 양식이 아니라 '얼렁뚱땅 복고풍' 고전주의 양식으로 쓴 곡입니다. 작곡가는 이 곡에서 이를테면 하이든 시대 화성 진행 규칙을 모조리 다 어겼고, 하이든 시대 사람이 놀라 자빠질 만한 '과감한' 조바꿈을 사용했는가 하면, 빨라야 19세기 후반에나 나타나는 복잡한 리듬과 박절 변화를 사용했습니다.
무엇보다 작품에 전체적으로 나타나는 분위기는 18세기 오스트리아와 20세기 러시아가 반씩 섞인, 마치 시베리아 칼바람이 하이든 시대 오스트리아에 불어닥친 듯한 느낌입니다. 3악장에 쓰인 가보트(gavotte)만 해도 사실은 '어딘가 이상한 18세기 양식'을 잘 보여주는 예입니다. 가보트는 프랑스에서 유래한 춤곡 양식이고, 18세기 교향곡에는 가보트가 아닌 미뉴에트가 흔히 쓰였거든요. 무엇보다 음악이 오스트리아풍도 프랑스풍도 아니고, 차라리 러시아풍입니다.
2악장은 그야말로 '프로코피예프스러운' 저음이 매력적인 음악입니다. 마치 눈 내리는 겨울밤에 난롯가에 앉아 있는 듯한, 어디선가 크리스마스 캐럴과 종소리가 들려올 법한 설렘이 느껴지는 음악이지요. 4악장은 빠른 음형으로 달리면서 신나는 선율과 리듬을 마구 쏟아내는 '놀자 판 한 마당'입니다. 그런 만큼 악단의 총체적인 합주력이 낱낱이 드러나는 악장이기도 한데요, 야마다 가즈키가 지휘하는 요코하마 신포니에타의 연주는 어떨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