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4월 11일 토요일

통영국제음악제 막전막후

한산신문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

http://www.hansan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45056


잔치가 끝나고 추억이 남았습니다. 2015 통영국제음악제를 성공적으로 치러낸 직원들이 피곤한 모습으로 뒤처리를 하고 있네요. 몇 사람은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일본 · 홍콩 공연을 떠났습니다.

음악제 동안 화려한 무대 밖에서 참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여러분께는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고 싶어서 별별 사건이 일어나던 순간의 긴박한 상황을 다 전하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흥미로운 뒷얘기를 조금만 할까 합니다.

바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한 개막공연 날 아침에는 '스쿨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통영의 초중고 학생에게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자 세계 정상급 연주자일수록 저희가 통영에 초청할 때 스쿨 콘서트 일정을 추가하려고 힘쓰고 있는데요, 이날에는 통영여고 학생이 객석을 가득 메웠습니다.

스위스 바젤에서 온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라와 있는 모습을 본 여고생들이 공연 시작 전 사진을 찍기 시작했고, 그 모습을 본 몇몇 연주자가 객석 쪽으로 카메라를 들었습니다. 그 순간 객석의 열광적인 반응. "예에에에에―!"

객석 쪽으로 카메라를 들 때마다 여고생들이 자지러졌습니다. 그 모습에 신난 한 연주자는 즉석에서 학생들을 '지휘'해서 '함성의 음악'을 만들어 내기도 하더군요. "예에에에에―!" 아 참, 공연 때에는 객석에서 사진 찍으면 안 되는 것 아시죠?

폐막 공연 전후로는 비가 너무 많이 와서 연주자들이 타야 할 비행기가 줄줄이 결항하는 바람에, 다른 교통편을 알아보느라 사무실에서 난리가 났습니다. 마산에서 인천으로 가는 버스가 ○○○김밥집 앞을 지나느냐 아니냐를 확인하려고 버스 터미널과 심지어 그 김밥집에까지 전화를 걸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가 타야 할 비행기가 결항이라는 소식을 들은 공연기획팀장님 한탄이 특별히 기억에 남네요. "어쩐지, 이제 다 끝났나 했더니!"

한 연주자는 프랑크푸르트에서 파리로 가는 비행기 이륙이 한 시간도 넘게 지연되는 바람에, 파리에서 인천으로 오는 비행기를 제시간에 탈 수 없게 되어 급하게 다른 항공편으로 바꾸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인천에 도착해 보니 가방이 아직 파리에 있었다는 모양이네요. 항공 일정 지연으로 약 72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했다는 연주자는 통영에 도착하자마자 약 24시간 동안 잠만 잤고, 그동안 가방을 최단 시간에 통영으로 가져오려는 '작전'이 있었습니다.

제가 가방을 가지고 가는 동안에 잠에서 깨어난 연주자가 호텔 방 앞에서 저를 꼭 껴안았습니다. 금발에 늘씬한 아가씨였습니다. (부끄럽다아…) 그리고 비빔밥 한 그릇을 맛있게 먹고 난 연주자가 요청했습니다. "시간이 모자라게 되었으니까, 내일은 아침 7시부터 리허설할게요!"

음악제가 끝난 직후 한 기자를 만나서 잡담을 나누다가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이 뭐였다는 질문에, 저는 고민 끝에 소프라노 카롤리나 울리히 & 피아니스트 율리안 리임의 공연이라고 답했습니다. 그날 마지막 곡이자 폐막공연 앙코르 곡이기도 했던 리하르트 슈트라우스 《내일!》(Morgen!)이 제가 힘들 때 큰 위안이 되어주었네요.

R. Strauss: Morgen!

Und morgen wird die Sonne wieder scheinen
und auf dem Wege, den ich gehen werde,
wird uns, die Glücklichen, sie wieder einen
inmitten dieser sonnenatmenden Erde…
und zu dem Strand, dem weiten, wogenblauen,
werden wir still und langsam niedersteigen,
stumm werden wir uns in die Augen schauen,
und auf uns sinkt des Glückes stummes Schweigen…

R. 슈트라우스: 내일!

내일도 다시 태양이 빛나리
그리고 내가 걸어갈 길에서
태양이 복된 우리 다시 만나게 하리
햇살이 숨 쉬는 이 땅에서…
푸른 파도 치는 넓은 해변으로
우리 말없이 천천히 내려가리
우리 서로 가만히 두 눈 바라보리
행복한 고요함이 우리에게 내려앉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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