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창 졸릴 시간에 낮잠과 음악감상을 겸하는 괴상한 짓을 했습니다. ㅡ,.ㅡa
전부터 들어야지 하면서 못 들었던 음악을 침대에 누워 비몽사몽 감상했거든요.
말러 교향곡 10번 요엘 감주(Yoel Gamzou) 판본입니다. ('감주'라는 표기는 독일 아나운서의 발음을 참고했습니다. 이스라엘계 미국인이라는데…)
예전에 독일에서 오보에 전공하시는 분이 고클래식에서 이 판본을 극찬한 일이 있어서 참 궁금했었는데, 이제 궁금증이 대략 풀렸습니다. 참고:
http://to.goclassic.co.kr/symphony/17747
일단 오케스트레이션까지 말러가 완성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1~2악장에서 드러나는 지휘자의 해석은, 대략 '말러스럽게' 번스타인스럽네요. 저는 리카르도 샤이의 균형 잘 잡힌 해석을 좋아하는지라, 이런 건 별로입니다.
문제는 5악장인데요, 데릭 쿡 판본은 5악장이 너무 지루해서 저는 이걸 듣다가 중간에 졸다 깨기도 하는데, 오히려 이 녹음을 들으면서는 5악장에서 졸음이 완전히 깼습니다. 장식음을 매우 적극적으로, 때로는 공격적으로 써서 음악을 '말러 판 108번뇌'로 만들어 놨고, 이게 대단히 설득력 있습니다.
예전에 서울시향 연주회 리뷰에서 썼던 말이 생각 나서 다시 읽어보니 이런 말이 있네요:
5악장 마지막에 현이 부풀어 오르는 이른바 '알므슈!'(Almsh!) 대목은 말러답지 않게 너무 단순하고 뜬금없다고 느껴진다. 이것은 말러가 남긴 스케치에 그리 쓰여 있다고 하지만, 만약 오케스트레이션까지 말러가 완성했다면 이 대목을 조금 더 매끄럽게 이어지도록 어떻게든 손을 보지 않았을까."
요엘 감주 판본은 바로 이 대목이 아주 그럴싸합니다. 자세한 설명은 '스포일러'가 될 듯해서 하지 않을게요.
그리고 제가 인용하고 싶었던 대목:
말러 교향곡 10번은 4단짜리 약식 총보로는 말러가 끝까지 완성했으며, 데릭 쿡 등이 완성한 판본에서 오케스트레이션과 대위구 첨가 수준을 넘어 완전히 새로 쓰여진 곳은 없다. 이런 까닭에 글쓴이는 이 작품을 사실상 완성된 악곡으로 보는 관점에 동의해 왔다. 그러나 말러를 '음악적 모더니즘'의 아버지로 본다면 이 작품에 '음색'이라는 핵심 요소가 미완성이라는 사실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완성판 녹음을 남긴 지휘자가 대부분 '흰 건반 베베른' 계열 지휘자인 까닭 또한 음색에 빈 곳을 메울 아이디어를 그들이 나름대로 갖고 있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1악장만 연주해야 옳다는 뜻은 아니다. 데릭 쿡 판본을 가장 정통성 있는 '원전판'(Urtext) 악보처럼 여기되 그것을 바탕으로 하는 새로운 판본이 꾸준히 시도되고 소개되어야 한다. 악보를 파기하라는 유언을 남긴 말러가 이것을 어찌 생각할지는 또 다른 문제이겠으나, 그리 따지자면 죽은 작곡가가 쓴 일기와 편지 따위를 연구하는 일 또한 죄스러운 일일 터이다. 어차피 관음증적 욕망을 떨치지 못한 동반자 의식을 지닌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열린 텍스트와 열린 마음이다. 카펜터, 마제티, 바르샤이, 또 다른 판본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