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월 27일 화요일

마틴 그루빙어 인터뷰

통영국제음악재단 매거진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입니다. 잊어버리고 있다가 생각나서 올립니다.


Q. 옛날 얘기를 해보죠. 스스로 곧잘 쓰는 표현으로 '오스트리아 촌놈'이 어쩌다가 타악기 연주자가 됐나요?

A. 집안 내력이죠. 아버지가 타악기 연주자셨어요.

Q. 타악기 연주자가 되겠다고 결심한 때는 언제인가요?

A. 어려운 질문이네요. 처음에는 밴드 드러머가 멋져 보여서 그게 되고 싶었어요. 그러다가 청소년 오케스트라 타악기 연주자가 됐는데, 10살에서 14살이 되었을 즈음에 이 길로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듯해요. 오케스트라 타악기 연주자가 되어야겠다고요. 독주자가 되려는 생각은 안 했거든요. 그런데 우리가 지금 이러고 있죠.

Q. 우리라고요?

A. 음, 타악기를 연주하는 일은 혼자서 하는 게 아니에요. 악기를 산다거나, 옮긴다거나 하는 물류 관련 지원이 있어야 하지요. 아버지가 많이 도와주셨어요. 이런 일을 절차에 맞게 추진하는 일은 12살이나 13살짜리 애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그러니까 부모님의 도움이 없었으면 이 모든 일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았겠죠.

Q. 부모님께서 격려해 주셨더라도 회의가 들었을 듯한데요?

A. 예. 많이 들었죠. 열다섯 살 때 콩쿠르에 나갔는데, 그때 제가 독주자가 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무대에 설 기회가 없더라고요. 공연기획자들 하는 말이 이래요. 타악기? 관객도 없고, 레퍼토리도 없고, 타악기 곡을 쓴 유명 작곡가도 없어요. 제가 몇 달 동안 미친 듯이 연습만 했는데, 공연을 할 수가 없었어요. 그때부터 타악기 독주자가 가능하기나 한지 심각하게 고민했지요.

Q. 시골에서 자랐다는 얘기를 전에 했었는데요. 아직도 시골에서 사는 게 좋나요?

A. 많이요. 한때는 활기찬 도시에 사는 것도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골이 아니면 살 수가 없더라고요. 일단 일에 집중할 수 있어야 하죠. 자연 속에서 운동도 해야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산을 바라보고, 신선한 공기를 마시고, 목장의 소들을 보고. 그래요, 저는 천생 촌놈이에요.

Q. 그런데 직업 때문에 계속 대도시에 가야 하잖아요. 그때는 어떻게 하나요?

A. 그게 쉽지 않은 문제죠. 저는 타악기 연주자라 안 그래도 큰 소리를 듣고 사는데, 도시의 소음까지 들으면 참 괴롭지요. 저는 항상 6시에 일등석 비행기를 타고 가서 다음날 일찍 돌아와요. 느지막이 일어나서 돌아오는 연주자도 있지만, 저는 되도록 빨리 집으로 돌아오고 싶어 해요.

Q. 모든 걸 이루셨는데, 그 때문에 안 좋은 면도 있나요?

A. 당연하죠. 제 아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요. 아들이 처음으로 걸었을 때와 처음으로 말을 했을 때 제가 그 자리에 없었단 말이에요. 인맥 관리나 친구들 만나는 일에도 남들만큼 시간을 내지 못해요. 제가 하는 일을 이해해 주는 친구가 많지 않지요.

Q. 그래도 확실히 좋은 점이 더 많지요.

A. 그럼요. 꿈을 이루면서 사니까요! 저는 자신에 대해 때때로 놀라곤 해요. 이 모든 게 얼마나 행운인가 말이죠.

Q. 남은 꿈을 이루려고 어떤 일을 하나요?

A. 공연 때 어린 친구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모든 걸 다 해줍니다. 마스터클래스 같은 것도 하고요. 어쨌거나 기차는 멈추지 않을 겁니다. 타악기는 공연장에서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 (웃음)

글: 프리데리케 홀름 / 김원철 · 이혜련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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