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3월 20일 금요일

영어 잘하시는 분께 감수 부탁합니다: 한 걸음 다가서야 들리는 양식

음악을 잘 아는 영어 번역자를 구하다가 못 구해서 결국 제가 직접 하게 되었네요. 이상한 곳이 있는지 봐주세요. 엉엉엉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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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걸음 다가서야 들리는 양식
A musical style that is heard when you get one step closer to it



글: 홍은미 (음악학자)

윤이상의 음악양식에 대한 글을 의뢰받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은 ‘누가 관심이나 있을까?’ 였다. 왜냐하면 우리의 시대는 그의 예술을 품지 못하는 방향으로 변해가고 있기 때문이다. 윤이상은 아무 데도 없는 세상을 꿈꾸던 음악가였을 뿐 아니라 그저 혼자 꿈을 꾸는데 그치지 않고 그런 세상을 함께 꿈꾸고 이루어 가자고 외치던 음악가였는데 우리는 과연 무엇 하나라도 이웃과 나누고 싶은 사람들로 살아가고 있는지 먼저 묻게 된다.

'Who cares for that?' This was on my mind when I was asked to write an article about Isang Yun, because it's getting harder for our society to embrace his music in this day and age. Isang Yun was a musician who dreamed of a world that is nowhere and who cried for making such a world together. So I'd like to ask myself if we are truly living as human who wish to share any single thing with neighbors.

생각과 양식은 함께 간다. 서구 고전주의 시대의 소위 단순하고 우아한(galant) 양식을 예로 들면, 오래도록 예술의 주요 후원체였던 교회와 귀족들의 권력이 쇠퇴하고 계몽주의에 힘입어 새롭게 권익의 주체로 떠오른 제3계층에 대한 배려가 반영된 변화를 읽을 수 있다. 많은 지식인들은 그동안 기보되지도 장려되지도 않았으나 무한세월 버텨온 민요에 대해 찬사를 보내며 18세기 당대의 음악은 그 저력의 비결을 재현해야한다고 요구했다. 그 결과 성악음악은 물론이요 기악음악에 있어서까지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를 수 있는 선율의 부각과 함께 악구의 규칙성과 주기성이 강조되었다.

Thoughts and styles go with each other. The simple and galant style in the Western Classical period, for instance, reflects consideration for emerging class that rose to power on the strength of the Enlightenment, while clerics and aristocrats who were long-time primary supporters of arts fell into a decline. Many intellectuals praised folk songs that maintained their existence for an infinitely long time without notation nor promotion, and insisted that the 18th century music must recreate the secret of such strength. As a result, melodies that could be easily sung along became popular, and regularity and periodicity of musical phrases were regarded as important.

그런데 성악음악의 경우 시 내용의 언어적 전달에 목표를 두면 음률은 단순하고 반복적이어야 그 효과를 볼 수 있겠지만 시를 배제하고 나면 음률의 단순반복만이 오롯이 부각되기 때문에 예술적으로는 미숙한 것으로 여겨지는 진부함만이 남게 된다. 다시 말해서 대중성을 추구하면 예술성은 후퇴하기 마련인지라 얼마지 않아 음악가들은 다시 예술성을 추구하기 시작하였고 자신들의 새로운 지위를 위해 학습할 준비가 되어 있던 계몽사회의 시민들은 이러한 흐름을 어느 정도 함께 만들어 갔다.

Simple and repeating melodies of vocal music are effective in verbal presentation of poetry. But if poetry is excluded out of music, what remains is banality and artistic immaturity caused by simple repetition of melody. In other words, by seeking popularity the artistic value decreases. So the musicians soon pursued artistic value again, and the citizens of the age of Enlightenment who were willing to learn for their new echelon kept pace with the trend.

그러나 19세기까지 지속되었던 그들의 공생관계는 20세기에 와서 무너지고 만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음악가들로 하여금 인간관계의 참상을 그리는 데 주력하게 만들었고 실상에서와 마찬가지로 예술에서조차 위로를 기대할 수 없었던 청중들은 자신들의 길을 따로 걷게 된 것이다.

But the symbiotic relationship which continued until the 19th century was broken down in 20th century. The two World Wars made musicians to exert themselves to express the miseries in human relations, and audiences who could not expect consolation from arts as in reality took their own way.

윤이상의 음악은 바로 이 시점에서 출발한다. 서구사회에서조차 낯설게 느껴지는 현대음악, 게다가 소위 민족주의 음악의 비서구적요소들 보다도 더 먼 한국적 요소가 가미된 음악인 것이다. 애초에 대중성과는 거리가 먼 것인데 우리는 그의 음악에서 무엇을 기대하는 것일까? 다가오기만을 기대하기보다 다가서기도 해야 들리는 음악임을 분명히 해두자. 한 걸음 다가서면 낯설 것도 없다. 왜냐하면 동시대 음악가들도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면서 같은 세상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The music of Isang Yun starts from this point of time. It is modern music which is not familiar even in Western society, and which is flavored with Korean elements that are far apart from even the non-Western elements of so called nationalistic music. What do we expect from his music when it's out of common favor from the start? Let me make it clear that the music can be heard when we try to come closer to it rather than just expect it to come closer. It's not so unfamiliar when you get one step closer to it, because the musicians of our time tell the story of the same world of ours in which they live as we do.

윤이상의 음악에는 항상 스토리가 있다. 주인공은 언제나 미약해 보이는 인간으로 때로는 자기성찰을 통해, 때로는 사회적인 갈등을 극복함으로써 성장하는 성장 스토리가 대부분이다. 나아가 규모가 큰 작품일수록 각 인간들이 존엄을 잃지 않으면서도 평화롭게 살아가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리고 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이 그린 세계와 다르지 않다. 다만 18세기 고전주의 시대의 음악처럼 선율성이 강조되거나 주기성을 띠는 악구의 점철로 이루어진 음악이 아닐 뿐이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음악언어가 변해온 과정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가 있어야 일단 편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는데 전형적인 음악적 특징을 고전적 용어를 빌어 설명해 보고자 한다.

There are always stories in Isang Yun's music. The protagonist, in most cases, is a mere weak human and grows up by introspection or sometimes by overcoming social complications. And large scale pieces express an ideal world in which people live together peacefully without losing their dignity. It's not different from the world that Mozart or Beethoven presented in their music. It just does not bring melodies to the fore and is not full of repetitive musical phrases. You can listen or at least try to listen without serious difficulties, when you understand a little bit about the history of changes of musical languages as I mentioned earlier. So I would like to explain with some terminologies about the typical characteristics of Isang Yun's music.

우선 윤이상 음악의 ‘주요음기법’을 설명하자면 서구 음악에 있어서 딸림음[Dominant; 우리말 용어 '딸림음'은 이 맥락에서는 오해를 부른다. – 편집자]의 개념에 비유할 수 있다. 다만 20세기는 장단조의 조성체계가 무너진 시대이므로 으뜸음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으니 으뜸음을 으뜸음으로 인식하게 하는 딸림음의 조성적인 기능은 빠지고 조성시대보다 더 이전인 선법시대에서의 기능, 즉 지배적으로 등장함으로써 음악의 흐름을 주도하는 기능을 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현대음악의 특성상 많은 음들이 난무하므로 그 가운데서도 고집스럽게 반복되는 음을 듣는 이가 인지할 수 있으려면 그것을 연주하는 사람이 그렇게 들리도록 전달해주는 것이 필수적이다.

The concept of Hauptton – 'central tone' – technique which is the keyword to explain Isang Yun's music can be compared to Dominant in Western music. However, there is no Tonic since the tonality of major and minor keys had collapsed in 20th century, and thus the Dominant in this context can be understood as a tone without any tonal function, a tone which leads the flow of music by dominant appearances, which is similar to that in the era of modes before the era of tonality. But because there are so many tones in his music as in many modern music, it is essential for a performer to present the persistently repeating tones to be recognized as dominant by listener.

윤이상은 유럽에서의 첫 작품인 《피아노를 위한 다섯 개의 소품(1958)》으로부터 시작해서 수십 년을 지나며 그 비중이 서서히 잦아든다 할지라도 대부분의 작품에서 12음기법을 활용하고 있다. 제2 비엔나 악파가 1920년대에 창출한 이 기법은 1960년대에는 이미 고전적 수법으로 정착할 만큼 추종자들이 많았으나 그 논리의 우수성과 상관없이 정서적 차원의 인지효과가 적었기 때문에 1970년대 이후에는 사양길로 접어들지만, 윤이상은 다른 작곡가들처럼 그 기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인지적 측면을 보완하는 방향으로 ‘주요음기법’을 개발해내었다.

Isang Yun utilized the 12–tone technique in most of his pieces, although the importance of it has diminished over decades since the 5 Stücke für Klaver (1958) which is the first piece written in Europe. The technique, which was invented by the Second Viennese School in 1920s, attracted so many followers and took root as a classical method. But it decayed after 1970s, regardless of its logical excellency, due to it's lack of cognitive effect in emotional dimensions. Isang Yun did not abandoned the technique and invented the Hauptton technique by improving its cognitive aspects.

다음으로 각 성부의 선율적 움직임의 집합체인 다성부음악을 구축하는 방법도 20세기의 음악인만큼 조성음악에서처럼 횡적인 통일성에 근거할 수 없다. 다시 말해 으뜸화음-버금딸림화음-딸림화음-으뜸화음 식의 진행관련 도식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듣는 사람이 조성음악을 통해 얻어진 익숙함을 20세기 음악에서까지 얻으려고 한다면 예술적 새로움을 받아들일 수 없는 그저 하나의 편견을 가진 사람으로 전락하고 만다. 그렇다고 해서 20세기음악은 새로워야 마땅하니 듣는 사람에게만 책임이 있다는 뜻은 아니다. 음악도 또 하나의 언어인 만큼 청중의 언어를 반드시 염두에 두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그러니 듣자고 들면 알아들을 사인을 발견할 수 있다.

Isang Yun's method of building polyphony, i.e. the collective movements of melodies, does not have basis, like other 20th century music, in horizontal unity as in tonal music. In other words, there is no pattern of harmonic progression such as tonic chord – subdominant chord – dominant chord – tonic chord. In this reason, if you expect the familiarity of tonal music in the 20th century music, you would not be able to accept the artistic novelty and end up with prejudice. But I do not mean to assign all the responsibilities to listeners and say the 20th century music must be new. Music is a kind of language and thus the language of audience must be taken into consideration. And we can find some recognizable signs in his music if we are willing to find them.

윤이상 음악에 있어서 선적인 측면은 애초에 단성부의 경험에 국한된 한국음악의 원리에 전적으로 부합되기도 하거니와 다성부적인 측면에서도 조성음악의 시대로 접어들기 전의 서구음악의 진행방식과도 닮아있다. 즉 개별성부의 독자성을 인정하면서도 동시적 울림에서 조화를 이루도록 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그렇다고 해서 서구의 대위법적 원리를 따르는 것은 아니고 각 성부의 유기성이 일사불란한 조성음악과는 차별되게 개별성부의 독자성이 두드러진다는 정도로 이해하면 된다. 따라서 전체적인 소리 속에서도 때로는 개별성부의 미세한 제스쳐가 드러나야 하는데 이것 역시 연주자들의 사전 이해와 다성부음악인 만큼 문자 그대로 부단한 앙상블의 노력 없이는 전달되기 힘든 음악이다. 윤이상도 그 점을 알기에 1970년대 중반부터 시작해서 꾸준히 복잡한 요소를 덜어내는 방향으로 그의 양식을 진화시켜왔다.

The characteristics of melodic line in Isang Yun's music not only corresponds with the principles of Korean traditional music which is confined in its experience to monophonic voices, but also shares certain similarities of polyphonic aspects with that of Western music of pre-tonal era. That is the way of harmonizing the synchronistical sonority while maintaining the independency of each voices. But it does not follow the principles of counterpoint in Western music: it is different from tonal music in which there is an organic unity among each voices; rather there is the noticeable independency of each voices in his music. In this reason, the delicate gestures of each voices must be revealed in the whole sound, and this requires prior understanding and constant efforts by performers. Isang Yun was well aware of this and continued to evolve his musical style since the mid-1970s into a direction where the complexity is decreased.

마지막으로 언급할 윤이상 음악의 고전적 측면은 건축적 구조인데 실험적인 음악에 비해 마무리가 뚜렷한 닫힌 구조와 대체로 세 부분으로 나누어 파트간의 균형을 유지하려는 성향이 그것이다. 전통적 의미의 선율성의 부재로 인한 불안정성을 주요음기법으로 보완했듯이 조화와 균형으로 완결성을 지향했던 고전적 형식미에 새로운 음향을 가둠으로써 듣는 이에게 조금이나마 낯설음을 덜어주려 하였다.

Last thing to mention about the classical aspect of Isang Yun’s music is the architectural structure which means the closed structure with clearer ending compared to that of experimental music and the tendency to divide music into three parts and balance those between each. As he complemented the insecurity of music caused due to the lack of traditional melodies by the Hauptton technique, he tried to reduce the degree of unfamiliarity by confining the new sound onto the beauty of classical esthetics of structure which pursued the completion of music by harmony and balance.

늘 강조하지만 듣는 이가 모든 것을 감지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연주자의 능력과 정성에 달려 있다. 윤이상이 연주자의 편의를 도모하고자 보편적으로 통용되고 있는 오선의 사용이나 마디를 고수하는 등 전통적인 기보법을 활용하고 있기는 하지만 우리가 누군가의 글에서 행간을 읽어야 비로소 진정한 소통을 할 수 있듯이 연주자들 역시 악보에 표현된 바를 왜곡되지는 않게 전달하고자 하는 의사가 있어야 할 것이고 그 위에 자신의 음악적 색깔을 얹는다면 더할 나위 없는 아름다운 공감의 순간이 존재할 것이다.

As I always emphasize, whether an audience can perceive things or not depends on the ability and sincerity of performers. Though Isang Yun utilizes conventional notation by adhering to the widely used staff, measures, and more to contribute to musicians’ convenience, as we can truly understand contents only when we read between the lines from one’s writing, performers also should have a will not to distort, but to clearly deliver what is expressed on the score; if the performers add their own color to it on the basis of the undistorted delivery, there will be an extremely beautiful moment of sympathy with each other.

윤이상이 서거하고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생의 후반 40년 동안 고향 땅 한번 밟아보지 못하고 세계적인 작곡가라는 명성과는 상관없이 고향의 청중에게 음악 한 번 제대로 들려주지 못했는데 늘 대가들이 역사에 그렇게 자리매김하듯이 사후에 평가가 난무한다. 그나마 음악적인 시각보다 음악외적인 시각에서 그를 평가하는 저널리즘적인 이야기만 무성할 뿐 정작 그에 대한 오해를 불식시키고도 남을 그의 음악 속으로 세간의 관심은 정녕 진입하지 못하는 것인지 안타깝다. 그의 작품에는 그가 그린 아무 데도 없는 이상적인 나라에 대한 꿈이 담겨있다. 그곳은 한반도 이북이 아니라 그야말로 아∙무∙데∙도∙없∙는∙나∙라인데…

It has been 20 years since Isang Yun passed away. While having no chance to land on his hometown for the last 40 years of his life, regardless of the world-renowned reputation as a composer Isang Yun never had a change to allow his own audiences to listen to his music. He is rather now being evaluated after his death as all other masters in history got settled in that way. However, even those evaluations are full of journalism judging him from the perspective of non-music rather than music. I am truly wondering if the interest of people cannot get into his music which would get rid of more than misunderstandings on him. Isang Yun put the dream of ideal country where there’s no such in his music. That is not the northern part of Korean peninsula, but that is indeed a country from NOWHE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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