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쓸신잡'이라는 TV 프로그램이 최근 인기리에 종영되었지요. 마지막회에서 대중음악 작곡가 유희열 선생이 윤이상 음악을 자세히 설명했다고 해서, 저도 그 부분만큼은 보게 되었습니다. 윤이상의 걸작 《예악》이 2015 통영국제음악제 폐막공연 실황으로 방송에 나갔더군요. 이론적인 내용을 시청각 효과를 동원해 쉽게 설명한 것도 인상적이었는데요, 어떤 부분은 엄밀히 따지자면 시청자의 오해를 부를 수 있는 설명이라는 생각을 하다가, 제가 최근에 어떤 문헌을 읽고 혼란에 빠졌던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서양음악에서는 음과 음이 모여 이루는 관계가 중요하고, 음을 하나씩 따지면 그냥 고정되어 있지요. 그러나 한국 전통음악에서 음은 살아서 움직입니다. 방송에서는 살아 움직이는 음을 설명하면서 두 음이 부드러운 곡선으로 연결되는 모습을 설명했는데, 이 대목은 음과 음이 관계 맺는 방식에서 동서양이 다르다는 뜻으로 오해받을 수 있을 듯합니다. 그러나 동양에서는 음 하나만 있어도 그것이 살아 움직이면서 음악적인 의미가 생겨납니다. 윤이상은 동양에서 음 하나가 그 자체로 완전한 우주라 설명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도교의 관점에서 이해해야만 합니다. […] 동양에서는 사람이 혼자서 음악을 만들지 않으며, 음향이 이미 그곳에 먼저 존재합니다. […] 그러므로 동양 사람들이 말해오기를, 음악이란 작곡하는 것이 아니고 낳는 것과 같다고 했습니다. 우주에 작은 부분이 탄생하는 것입니다. […] 그러나 대우주와 소우주는 도대체 어떤 차이가 있겠습니까? 대우주는 또 다른 더 큰 대우주에 비하면 결국 하나의 소우주가 아니겠습니까? […] 하나의 음은 하나의 우주를 형성하는 무수히 작은 움직임들을 갖게 됩니다."
여기서 더 복잡한 설명을 하려면 모노포니, 폴리포니, 헤테로포니 등을 먼저 설명해야 합니다. '포니'(phony)는 그리스어 'phonos'에서 유래한 말이며 '소리'라는 뜻입니다. 모노포니(monophony)는 소리가 하나이니 단성음악, 즉 하나의 성부(聲部; voice)로만 된 음악을 말합니다. 서양음악에서 모노포니는 대부분 그레고리안 성가를 말하는데, 대략 10세기 즈음부터 성부가 두 개 이상인 음악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성부가 여럿이라는 뜻으로 이것을 '폴리포니'(polyphony)라고 하지요. 그리고 18세기 중반 이후 고전주의 음악 양식이 확립되는 과정에서, 성부가 여럿이되 각 성부가 동질적인 음악이 나타났으니 이것을 '호모포니'(homophony)라고 합니다.
호모포니는 그러니까 본디 폴리포니의 일종이었지만, 호모포니가 서양음악의 대세가 되면서 폴리포니의 의미가 변화합니다. 즉 호모포니의 바탕에 화성체계가 있다면, 폴리포니의 바탕에는 대위법이 있습니다. 각 성부가 대략 같거나 비슷한 리듬을 쓰느냐 독립적인 리듬을 쓰느냐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죠. 이를테면 바흐 음악은 폴리포니이고, 하이든 이후 서양음악은 대부분 호모포니예요. 물론 바흐 작품의 화성을 분석할 수도 있지만, 바흐 작품은 결과적으로 화성체계와 잘 맞아떨어질 뿐 대위법에 기초한 음악이고, 그래서 성부마다 리듬이 독립적이지요. 20세기 이후 서양음악은 얘기가 또 복잡해지는데, 여기서는 설명을 생략하겠습니다.
그런데 동아시아 전통음악처럼 음 하나가 살아 움직이며 소우주를 만들어 낸다면, 그리고 그런 음이 모여서 동시에 울린다면 어떨까요? 성부가 동질적인 호모포니와 반대라는 뜻에서 이것을 헤테로포니(heterophony)라고 합니다. 여기서 까다로운 질문이 생겨납니다. 윤이상 음악은 폴리포니일까요, 아니면 헤테로포니일까요?
대학원생 시절, 저는 20세기 음악사 수업에서 1960년대 아방가르드 음악을 발표하게 되었습니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리게티 · 펜데레츠키 · 윤이상을 엮었고, 윤이상 곡 중에서는 《예악》을 분석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윤이상 음악은 헤테로포니의 아이디어를 담고 있지만, 서양 아방가르드 음악의 테두리 안에 있으므로 결국 폴리포니라고요.
그런데 알고 봤더니 윤이상 선생이 강연 중에 이런 말씀을 하셨더군요. "그렇다면 이 음악은 무엇이겠습니까? 폴리포니이겠습니까 아니겠습니까? […] 원칙적으로 이 음악은 일원적으로, 즉 한줄기로 흐르지만, 여러 성부가 만나고, 부딪히고, 다른 악기군과 역할을 바꿔 가면서 다채롭게 들리고 폴리포니라는 착각을 일으킵니다."
윤이상은 자신의 음악이 '헤테로포니 같은 폴리포니'가 아니라 '폴리포니 같은 헤테로포니'임을 시사했습니다. 그러나 이 주장에 음악학자들이 동의할까요? 학자들끼리도 의견이 갈릴 듯하니 저는 일단 결론을 유보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