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필 번역하다가 허덜덜해서. 윤이상 콩쿠르 심사위원입니다.
피에르 아모얄은 무려 12살 나이로 파리 콘서바토리를 최우수 졸업한 신동이었다. 이후 로스앤젤레스에서 전설적인 바이올리니스트 야샤 하이페츠를 사사했고, 5년 동안 집중적인 지도를 받은 이후 첼리스트 그레고르 피아티고르스키와 함께 실내악 공연과 음반 녹음을 하기에 이르렀다.
피에르 아모얄은 22살 나이로 게오르그 숄티가 지휘한 파리 오케스트라와 협연하며 유럽 무대에 데뷔했다. 이후 유럽, 아메리카, 아시아의 주요 공연장에서 연주 활동을 이어갔으며, 카라얀, 오자와, 불레즈, 마젤, 숄티, 프레트르, 잔덜링, 래틀, 정명훈 등 거장 지휘자들과 협연했다.
아모얄은 카라얀 지휘로 데뷔한 이래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자주 협연했고, 로린 마젤 지휘로 뒤티외 바이올린 협주곡을 독일 초연했다. 1985년에는 카네기 홀에서 리사이틀 데뷔해 격찬을 받았다. 피에르 아모얄은 파리 콘서바토리 역사상 최연소 교수를 역임했다.
스위스로 이주한 이후 로잔 콘서바토리 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음악원 교수이다.
표기법 멘붕: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론스타트 출신 가수가 있습니다. 검색해 보니까 그 동네 대세 언어는 '소토어'인 듯한데…
남아프리카공화국 크론스타트 출신 가수가 있습니다. 검색해 보니까 그 동네 대세 언어는 '소토어'인 듯한데…
Levy Sekgapane
발음도 잘 모르겠는 이 이름 한글 표기 어쩔… OTL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차이콥스키 교향곡 5번 프로그램 노트를 전에 써놓은 게 있는 줄 았았는데 이제보니 없어서, 악보 더미 속에서 탐사 발굴 작업을 한참 벌인 끝에 예전에 분석해 놓은 악보를 찾았습니다. 제가 이래서 종이책을 싫어합니다. 키워드 넣고 검색하면 짠 하고 나와 줘야지 말이야… ㅡ,.ㅡㅋ
아웃사이드 인-
- 2000년 서울공연이 있기 전까지 조선국립교향악단(조선국향)은 남한에 신비주의 모드로 인식되어 왔습니다. 4관편성이라는 소문도 돌았고, 말러 교향곡을 단원들이 앞에 보면대 없이 암보로 연주하는 필름이 돌아다녀 대체 실력이 어느 정도냐는 기대치가 대단했죠. 해빙모드가 예감되던 시절 남쪽의 국공립, 민간 단체들이 이 악단을 남쪽으로 불러들이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1995년 1월 객석 기사를 보면 예술의전당은 아직 접촉도 안 된 조선국향의 공연을 대비해 콘서트홀을 4월 중 일주일정도 아예 비워놓고 대관을 하지 않았다고 적혀 있습니다.
- 그만큼 핫했던 2000년 조선국향 공연은 정말 우여곡절끝에 성사됐습니다. 본래 8월 15일 광복절 즈음으로 성사되었다고 공식적으로 알려진 것이 불과 공연 두 달 전. 그리고 북한 측의 사정으로 일주일 뒤로 연기된 것이 공연 불과 한 달 전이었습니다. 국내 공연단체였다면 이처럼 촉박하게 스케줄을 조정했을 때 질타만 엄청나게 들었을 터인데 예술의전당과 정부와 KBS향은 그간의 고지식한 공무원 모드에서 탈피하고 정말 유연하게 움직여줬습니다. 힘들어진건 언론들이었죠. 결국 저는 공연을 보지 못했습니다. 마지막 확정된 날짜가 월간지 기사 최종 마감일과 맞물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모든 원고를 마감하고 조선국향-KBS합동공연을 위한 지면만 백지로 남겨놓은 채, 다들 사무실에서 대기타고 있는 동안 수석 기자 선배 한 명이 전당에 취재를 다녀와서 그날 밤새워 기사를 써서 최종 마감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 피곤에 쩔어 영혼 없이 취재를 떠났던 선배 기자가 돌아올 때는 붉게 상기된 얼굴을 하고 있었던 것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습니다. 서로 탐색전을 펼치던 남한과 북한의 단원들이 곡을 한 곡 한 곡 연주해가면서 서로 교감하고 동화되어 마지막에는 정서적으로 극도로 고양된 채 콘서트가 끝났다고 합니다. 객석은 눈물바다가 되었고요. 그 와중에 핸드폰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리던 건 그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기사 사진속 리향숙이 '사향가'를 부를 때도 터졌는데, 그게 하필이면 북한 노래 '반갑습니다' 멜로디여서 다들 웃지도 울지도 못하는 해프닝이 연출되었다죠.
- 이 공연이 성사되면서 뒤에서 울고 있던 또 다른 공연 기획사(CNA 코리아)가 있었습니다. 북한에 거액의 개런티를 지불하고 평양에서 남북 합동 공연을 추진중이었고 거의 성사단계에 이르렀는데 북한에서 돌연 취소하는 바람에 막대한 손해를 입었습니다. 그러고나서 KBS-조선국향 합동 공연 소식을 뒤늦게 들은 CNA는 북한을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청구했는데, 물론 기각됐습니다.
- CNA는 수많은 사례중 하나였을 뿐, 김대중 정부들어 다양한 민간단체들이 북한과의 문화예술교류를 시도했습니다. 성사된 것보다 실패한 것이 더 많았죠. 이 실패사례들의 원인을 한예종 민경찬 교수는 다음과 같이 정리했습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남북음악교류의 대표적 문제점을 살펴보면 첫째, 아직 상호불신의 벽을 허물지 못했다는 점, 둘째,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보다는 자기 것을 이해시키거나 선전하려는 문화대결구도의 양상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점, 셋째 상호 충분히 논의를 거치지 않은 음악회가 많았다는 점, 넷째, 출연진과 레퍼토리 구성면에서 상호 평등의 원칙에서 벗어나 불균형하게 이루어진 음악회가 많았다는 점, 다섯째 대표성이 없는 교류가 많았다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 최근 샤를르 뒤투아/린덴바움 오케스트라가 시도했다 실패한 남북합동 공연은 위의 사례 중 대표성 부재에 해당하겠죠. 그래서 사실 추진한다 할 때도 제 개인적으로는 성사여부에 매우 회의적이었습니다. 혹자는 이 프로젝트를 2011년 정명훈이 프랑스 문부성을 등에 업고 끼어들어 훼방을 놓았다 하는데, 2000년대 초부터 정명훈에게 지속적인 러브콜을 먼저 보내온 쪽이 북한이었습니다. 북한은 남북합동악단을 이끌 한민족의 대표적인 지휘자로 정명훈을 처음부터 인정하고 있었죠. 이런 화합을 위한 이벤트성 공연은 지휘자의 역량이 문제가 아니라 그가 지닌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정체성이 더 중요한 문제입니다.
- 그래도 뒤투아는 평양까지 찾아가서 본인이 남북분단 문제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는지, 이 공연이 얼마나 국제 평화의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열심히 피력하는 노력이라도 보였습니다. 게르기예프는 그동안 내한 공연을 숱하게 해왔던 인물이지만 한국 문화에 대한 적극적인 관심이나 이해을 보여온 인물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북한을 다녀온 적도 물론 없고요. 그런 그에게 서울 글로벌 대사를 맡긴다든가, 그가 관심을 보이기도 전에 남북합동공연을 제안한 서울시장의 속깊은(?) 의중을 이해 못하는 건 저뿐일까요? 그동안 기사를 보면 아시겠지만, 이 제안에 게르기예프는 심드렁했다는 후문입니다.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1번」
통영국제음악당 공연 프로그램북에 실릴 글입니다.
프로그램 노트 쓰려고 음악 들으면서 악보 분석하려니,
에어콘 틀면 소음 때문에 방해되고,
에어콘 끄면 더워서 집중이 안 되고,
곡 짜임새는 또 왜 이렇게 특이한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1번.
에어콘 틀면 소음 때문에 방해되고,
에어콘 끄면 더워서 집중이 안 되고,
곡 짜임새는 또 왜 이렇게 특이한지.
프로코피예프 피아노 협주곡 1번.
어딘가 많이 익숙한 목소리의 주인공이 김순남 작곡가의 딸이었군요. 신기합니다. 김순남 선생은 윤이상 선생과 같은 해에 태어난 국내 최초 현대음악 작곡가이지요.
-2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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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ekyung Lee was live — with Sun-Ae Kang and 2 others.
2017 One Month Festival
* 토크: 이희경 (음악학자), 김세원 (방송인, 작곡가 김순남의 딸) - 목소리만 출연하십시다^^
* 장소: 딜라이트 카페
* 일시: 2017.7.11.11:00
...See More* 장소: 딜라이트 카페
* 일시: 2017.7.11.11:00
라이너 퀴흘 후임으로 빈필 및 빈 슈타츠오퍼 악장이 됐던 호세 마리아 블루멘샤인이 수습(프로베) 기간 끝나면 사임한다네요. 2018년 8월까지가 임기. 사유는 밝히지 않았지만 빈필이 최근 단원 투표로 퇴행을 선택한 일과 무관하지 않을 듯.
맥락을 모르시면:
「팟캐스트, 인터넷으로 듣는 음악 방송」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대한민국 청와대 added 4 new photos.
“고 윤이상 선생이 살아 생전 배를 타고 통영 앞바다까지만 와보시고 정작 고향 땅을 못 밟으셨다는 이야기에 저도 울었습니다. 이번에 고향 통영에서 동백나무를 가져왔는데, 선생의 마음이 풀리기를 바랍니다.”
대통령 부인 김정숙 여사는 4박6일의 독일 순방 일정 첫날인 5일, 베를린 가토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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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레리 게르기예프, 마에스트로 아드 리비툼」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풍월당에서 출판사를 차리고 오페라 대본집을 출판한다네요. 첫 작품은 아이다. 풍월당에서 만든 오페라 대본집이라면 믿을 만할 것으로 기대합니다. 대박 뉴스!
헐, 바이올리니스트 유치엔 쳉이 앙상블 디토에 합류했군요. 2011년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우승자 출신. 이름을 국립국어원 표준 외래어표기법에 맞게 쓰면 '위첸 쩡'이 됩니다만.
아웃사이드 인 -
+ 지난 주 선우예권의 콩쿠르 우승 기사가 여럿 떴습니다. 다양한 바리에이션이 있어서 솔직히 좀 놀랐습니다. 보통 단순히 우승 소식만을 전하거나 우승하기까지의 감동적인 휴먼 스토리가 천편일률적으로 복사되기 마련인데 본인의 인터뷰 기사, 현지 스케치, 매니저 인터뷰, 콩쿠르 시스템의 문제점, 심지어 탈락한 김다솔씨의 연주까지 다루더군요. 그만큼 국제 음악 콩쿠르에 대중과 언론의 관심이 증폭되었다는 것이고 그 뒤에는 조성진 신드롬이 있습니다.
+ 애써 현지에 가지 않더라도 이제는 인터넷 스트리밍으로 대회를 실시간 지켜볼 수 있게된 것도 하나의 메리트로 작용했다고 봅니다. 결과만 전달받거나 라디오로 연주만 듣는 게 아니라 참가자들의 긴장한 얼굴, 장내 분위기, 관객들의 반응을 전세계가 모두 볼 수 있게 되면서 올림픽 중계와 다름 없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게 된 거죠. 모 기자님은 자기 나라 연주자만 응원하는 촌스런 민족주의 인식이 문제라고 지적했지만 (저도 절반쯤은 동의합니다만) 콩쿠르 태생이 올림픽 카피였습니다. 처음에는 올림픽이 그렇듯 세계 평화에 음악이 기여할 수 있을 거란 기대에서 시작했다가 냉전시대에는 체제끼리 문화적 우위를 겨루는 결투의 장이 되고, 소비에트 붕괴 뒤에는 자국의 문화적 자존심을 등에 진 제3세계 음악가들이 세계 무대에 진출할 수 있는 플랫폼 역할을 해왔습니다. 이 점에서 한국은 분명 수혜국입니다.
+ 콩쿠르 이전 음악가들의 배틀도 순수하지만은 않았습니다. 바흐, 모차르트, 베토벤, 리스트, 클레멘티, 스카를라티 그들 모두는 정치적, 계급적, 사회적 대표성을 지닌 음악가들로 인식되었으니까요. 오늘날 콩쿠르 우승 효과가 예전같지 않은 것은 (물론 수요에 비해 공급 과잉도 있겠지만) 음악가들의 사회적 정체성이 거세당한 이유가 더 크다고 봅니다. 정치에 교회가 개입하는 것을 극도로 꺼리는 미국 기독교의 도움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한국 클래식 음악계는 특히 그렇습니다. 예술을 신앙적 소명으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술이 태생부터 온전히 비정치적이던 시절은 단 한 순간도 없었습니다. 그 예술을 행하는 음악가가 교회에, 궁정에, 기득권에, 국가에 어떤 방식으로든 속해 있는 사회적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이 칼럼은 하위징하의 '호모 루덴스'로 시작했지만 실상 이론은 스튜어트 홀에 기반하고 있습니다. 홀은 예술가들의 음악적 행위와 성취가 특정 계급을 비판하거나 옹호하는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 논리적 과정을 거쳐 상대에게 영향을 끼치는 언어보다도 음악은 훨씬 직관적으로 사람들의 감성을 움직입니다. 그것은 말로 먹고 사는 정치인보다도 더욱 강력한 능력입니다. 조성진처럼 아이돌의 상징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여러 사회적 활동을 하면서 자신의 추종자를 만들 수 있습니다. 그 힘은 콘서트 홀 안에서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 음악을 마치고 난 뒤 바깥에서도 아우라로 작용합니다.
+ 21세기 한국의 젊은 콩쿠르 우승자들은 사회적, 정치적 변혁을 위한 주체가 될 수 있는 잠재력이 지난 세기 선배 음악가들보다도 한층 월등하다고 봅니다. 과거 한국인에게 해외 콩쿠르 입상은 해외 유학이 자유로웠던 기득권층의 전유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한국예술종합학교(이 학교는 정말 신의 한 수였죠), 금호/대원 문화재단과 같은 여러 시스템 덕분에 중산층 이하의 가정에서도 재능있는 음악가들이 발굴될 수 있게 되었고, 해외 콩쿠르 우승은 이들의 사회적 위치이동이 가능한 아직은 유효하고 유일한 사다리입니다. 이런 보통의 존재들은 우승만으로도 자신들의 사회적 아우라의 강도가 달라집니다. 자신의 아우라를 공연장에 스스로 가둬놓지 말고 세상 밖에 마음껏 펼쳐놓기를 바랍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긍정하는 음악가는 사회적 존재일 수밖에 없습니다. '콩쿠르 이후의 콩쿠르'는 어쩌면 공연장 바깥에서 펼쳐지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는 모두가 피투성이로 끝나버린 서울시향 사태의 재도약도 여기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선우예권과 김다솔은 물론, 지금까지 콩쿠르에서 이름을 빛낸 여러 젊은 연주가들의 앞날을 기원합니다.
함부르크 NDR 엘프필하모니 오케스트라, 차기 음악감독 공식 발표. 이미 소문으로 다 알려졌듯이, 앨런 길버트.
-34:11
39,063 Views
NDR Elbphilharmonie Orchester was live.
Live from the elphilharmonie: we reveal the secret to the future chief conductor of the ndr elbphilharmonie orchestra. More on NDR.de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CEO 올해 말에 사임 발표. 얼마전 내한 때 보여준 모습과 달리 아직 속으로는 문제가 많은 것인지…
맥락을 모르시면:
박전대표 성추행:무혐의
서울시향 직원들 무고: 무혐의
전서울시향(여)직원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른 행위:폭행성립약식기소(벌금형)
서울시향 직원들 무고: 무혐의
전서울시향(여)직원 가슴을 손가락으로 찌른 행위:폭행성립약식기소(벌금형)
정황상 추행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판단되나 입증할 물증이 없어 양쪽 모두 무혐의 처리된 케이스입니다. 세번째 약식폭력기소 내용을 보면 있고도 남을 이야기입니다. 완벽한 조작으로 판단되었으면 직원들은 무고죄가 성립되어 기소되었겠죠.
뒷부분 싹 빼고 앞문장만 달랑 언급한 <채널 모시기> & <모시기BS> 이하 기레기 여러분들. 끝까지 생각이 없는 건지 뭘 받아(쳐)먹은 건지 알 수 없지만 정말 전직 기자로서 심히 댁들이 부끄럽습니다. 댁들의 무지함 또는 야비함 덕분에 한국 교향악계와 인권문제는 족히 30년은 퇴보했습니다.
독일 베를린에 윤이상선생님께서 생전에 사시던 자택을 윤이상 하우스로 리모델링 하기 위한 모금사업을 시작했습니다. 다음카카오 스토리 펀딩이 첫 이벤트인데 8월까지 주2회 인터뷰 기사가 연재됩니다. 첫 인터뷰는 서울대 작곡과 출신 유희열 씨가 해 주었습니다. 많은 관심 부탁드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