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 안톤 발터가 제작한 1810년산 포르테피아노. 베를린 악기박물관 소장.
CCL by Gérard Janot
"○○○는 […] 이성과 감성을 죽인다 […] 사람을 멍청한 바보로 만든다."
컴퓨터 게임 얘기가 아닙니다. 스마트폰이나 인터넷 미디어 얘기도 아닙니다. TV, 만화, 멀리는 구텐베르크 시대 대량생산 소설책까지('인쇄 매체가 구술 문화를 말살하고 인류 문명을 위기에 빠트리고 있다!'), 새로운 발명품이 사회에 큰 영향을 끼칠 때마다 비슷한 말이 나오기는 했지요. 그러나 제가 인용한 말은 좀 더 특이합니다. ○○○는 피아노거든요. 1843년 시인 하이네가 남긴 말입니다.
피아노가 발명되기 전에 가장 일반적인 건반악기는 하프시코드였지요.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바로크 음악을 공연할 때 작고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는 이 악기를 보신 분도 제법 있으실 듯합니다. 쳄발로, 클라브생 등으로도 불리는 이 악기는 건반을 누르면 기계장치가 현을 뜯어서 소리 내는 식이고, 그래서 셈여림을 표현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단순한 지렛대 원리로 현을 때려서 소리 내는 '클라비코드'라는 건반악기도 있었지만, 소리가 작고 표현할 수 있는 셈여림의 폭이 그리 넓지도 않아요. 그러다 음색과 작동방식이 클라비코드와는 사뭇 다르면서 셈여림을 획기적으로 잘 표현할 수 있는 건반악기가 나왔습니다. 셈(Forte)-여림(Piano)을 나란히 써서 포르테피아노 또는 피아노포르테라 불렀지요.
초기 피아노는 현대인에게 익숙한 피아노와는 여러모로 달랐습니다. 소리를 들어 보면 하프시코드와 요즘 피아노의 중간이라 할 법하지요. 시대와 지역에 따라 핵심 구조가 표준화되어 있지도 않았습니다. 이 악기를 부르는 명칭도 중구난방이었는데, 오늘날에는 '포르테피아노'라고 하면 보통 옛날 피아노를 뜻해요. 셈-여림 순서를 거꾸로 한 '피아노포르테'는 맥락에 따라 다를 수 있지만 요즘 쓰이는 피아노를 뜻할 때가 잦지요.
포르테피아노가 처음 발명된 때는 1700년경이라 하고, 본격적으로 쓰이기 시작한 때는 대략 모차르트 시대부터였습니다. 하이네는 포르테피아노가 울림이 자연스럽지 못해 시끄럽다, 무감정하게 윙윙거리고 무뚝뚝하게 뚱땅거리는 소리, 우리는 기계가 영혼을 무찌르는 시대를 목도하고 있다, 등으로 비난했지요. 포르테피아노가 하프시코드를 몰아내고 건반악기의 대세가 되어 가던 상황이 못마땅했나 봅니다.
"옛날 피아노 소리는 훨씬 부드럽고 다채로웠다. 우리는 현대 피아노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현대 피아노의 큰 음량에 맞추어 그만큼 큰 소리로 노래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잊곤 한다. 한편, 요즘 공연장에는 다들 스타인웨이 피아노가 있으므로 조율이나 관리 등이 표준화되어 있는 점은 장점이다. 그러나 현대 피아노로 페달을 너무 많이 쓰게 되니까 문제다. 그러면 밸런스 문제가 생긴다."
지난해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가 전화 인터뷰 때 했던 말입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잡지 『Grand Wing』에 실린 인터뷰이지요. 하이네가 영혼 없는 기계 소리라 했던 악기를 보스트리지가 부드럽고 다채로운 소리라며 반대로 말한 까닭은 현대 피아노가 훨씬 더 산업화한 악기, 보스트리지가 농담으로 쓴 표현을 빌자면 '쇠로 된 괴물'이기 때문일 겁니다.
하프시코드, 포르테피아노, 현대 피아노 가운데 어떤 게 더 낫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악기마다 고유한 특색과 장단점이 있기 마련이고, 다양성은 예술을 풍요롭게 만들지요. 마르틴 슈타트펠트처럼 현대 피아노를 개조에 가깝게 조율해서 현대 피아노 특성 일부를 희생시키는 대신 포르테피아노의 장점을 살리는 피아니스트도 있습니다.
6월 3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열리는 샹젤리제 오케스트라 연주회에서 에리크 르 사주가 모차르트 피아노 협주곡 9번 K. 271을 협연합니다. 샹젤리제 오케스트라는 시대악기를 연주하는 악단인 만큼 협연자 또한 포르테피아노를 사용할 예정이지요. 협연자가 원하는 악기 구하기가 참 어려워서 아직은 자신 있게 말씀드리지 못하지만, 대략 베토벤 시대 포르테피아노가 사용될 가능성이 큽니다.
포르테피아노가 현대 피아노와 어떻게 다른 소리를 내는지 통영국제음악당에서 확인해 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