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5월 5일 화요일

모차르트 괴담

『한산신문』에 실릴 칼럼 원고입니다.


모차르트는 괴팍한 천재 이미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사람이지요. 그래서인지 모차르트와 관련한 근거 없는 괴담도 많은데요, 영화 《아마데우스》 때문에 더 그런 듯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영화일 뿐 다큐멘터리가 아니지요. 가장 흔한 괴담인 '살리에리 독살설'부터 얘기해 볼까요?

살리에리가 천재 모차르트를 시기해서 독살했다는 괴담은, 아마도 살리에리가 늙어서 정신이 오락가락할 때 '내가 모차르트를 죽였다!'라는 헛소리를 하는 바람에 생겨난 듯합니다. 그러나 여러 학술적인 증거를 종합해 보면 신빙성이 없는 가설입니다. 이와 관련해서는 많은 반박 자료가 있기도 하거니와 자칫 글이 재미없어질 수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생략할게요.

어떤 면에서 그보다 더 심각한 오해는, 모차르트가 워낙 대단한 천재여서 별다른 노력을 하지 않았는데도 걸작을 줄줄이 쏟아냈다는 것입니다. 그냥 상식에 비추어 생각해 보세요. 모차르트 전집 음반을 찾아보니 CD 170장이네요. 이걸 쉬지 않고 다 들으려면 200시간이 넘게 걸릴 듯합니다. 이걸 악보로 옮기는 데에는, 아니, 그냥 베껴 쓰기만 하는 데에는 얼마나 걸릴까요? 유실된 작품이나 미완성 작품, 스케치 등을 더하면요? 게으름뱅이가 이 어마어마한 분량의 작품을 남겼다고요?

모차르트는 사실 엄청난 노력가였습니다. 어려서는 끔찍한 아동학대라 해야 할 교육 과정과 연주 여행을 감당해냈고, 커서는 살인적인 업무량을 소화했지요. 과로와 불규칙한 생활에 따른 면역력 약화가 모차르트를 죽음으로 몰고 갔다는 것이 정설이기도 합니다. (직접적인 사망 원인이 알려지지 않아서 각종 음모론이 떠돌았지만요.)

가난에 시달리면서 처절한 고독 속에서 불멸의 명작을 남겼다는 생각도 사실과 다릅니다. 죽기 전에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경제가 위축되었는데도 헤픈 씀씀이를 줄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터키가 유럽을 침공하면서 오스트리아도 참전하게 되었고, 그에 따라 모차르트의 돈줄이 되었던 귀족들이 전쟁터에 나가거나 또는 전쟁터에 나가지 않으려고 지방으로 내려가 버렸거든요.

모차르트의 무덤을 찾을 수 없게 된 까닭 또한 세상이 천재를 버렸기 때문이 아닙니다. 당시 전염병이 의심되는 환자의 사체는 반드시 공동묘지에 묻히게 되어 있었고, 가족이라도 매장지까지 따라가도록 허락되지 않았다고 하거든요. 베토벤의 장례식에 시민들이 몰려들었던 일과 견주면 모차르트의 장례가 초라하기는 하지만, 서양 역사상 최초의 '프리랜서' 음악가라 할 수 있는 모차르트와 그 뒷세대인 베토벤은 여건이 다를 수밖에 없었겠지요.

베토벤 얘기 나온 김에 흥미로운 사실 하나.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8번 '비창' 2악장의 저 유명한 선율은, 사실 베토벤이 모차르트를 표절한 것인 듯합니다. 출판된 작품이 아닌 스케치를 베껴서 이걸 아는 사람이 많지 않을 뿐이지요. 피아니스트이자 음악학자인 로버트 레빈이 언젠가 서울대학교에서 강연하면서 그 악보를 보여주고 직접 연주까지 하는 것을 들었던 기억이 나네요. 다만, 모차르트가 남긴 것은 선율 조각일 뿐이고, 그 선율에 가슴 뭉클한 화음을 입혀 걸작으로 만든 사람이 베토벤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조금 민망한 얘기. 일설이 아닌 정설에 따르면, 모차르트는 음담패설에 일가견이 있었다고 합니다. 분변(…)과 관련한 농담을 즐겼다고도 하지요. 아내와 주고받은 편지에는 수위가 매우 높은 내용이 곧잘 나온다고도 하고요. 제 생각에, 오페라 《코지 판 투테》 또한 이런 맥락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이 작품은 시대를 앞서간… 음, 저도 체면이 있어서 차마 여기서는… 크흠.

5월 20일부터 23일까지 통영국제음악당에서는 '모차르트 위크' 공연이 열립니다. 잘츠부르크 페스티벌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잘츠부르크 모차르테움 오케스트라, 스타 피아니스트 마르틴 슈타트펠트, 하이든 실내악 콩쿠르 우승 등 유명한 국제 콩쿠르에서 잇달아 입상하면서 화제가 된 아벨 콰르텟 등이 모차르트 음악을 집중적으로 연주할 예정이니 기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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