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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istening Comprehension
1. 영어청취의 난해함
듣기동에서 영어청취 학습을 하는 이들이 다양한 상황에서 청취
장애를 호소하는 경우가 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여전하다. 당연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영어청취 학습자들은 듣기동에서 CE Tool로 학습하면 모든
소리를 다 알아들을 것이라는 일종의 환상을 가지고 있다.
모국어라고 쉽게 여겨서 자신의 언어에서 보이는 여러 가지
오류를 당연시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한국어에는 강세가
없다느니, 모음의 장단이 없다느니 하는 것도 그 오류 중의
일부이다.
2003년에 국어연구원에서 국어청취이해도를 시험한 적이 있다.
물론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한국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평균 점수는 40% 이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것은
모국어 듣기 훈련이 되지 않은 사람은 스스로 창작해서 듣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아마도 심리적인 요인까지 겹치면
심각한 오해로 점철된 삶을 사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이런
경우는 주위에서 흔히 본다. 아무런 문제가 없는 사람들도 감성
과잉이 되는 경우 일상적으로 오해를 일삼는 것이다.
영어청취를 이야기하기 전에 모국어 청취를 잘하지 못하는
사람들 중에는 난청도 한 역할을 한다. 청력이 약한 이들은 안
들린다는 점을 의식하든 못 하든 부정적인 반응을 보인다. 잘 안
들리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속삭임이나 표정을 늘 의식하고
의도를 의심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들리는 것도 아니기 때문에
이러한 의심은 더욱 강한 공격적 반응으로 연결될 수도 있다.
심하면 홀로 다른 이를 의심하는 편집증으로 이어지면서 외부의
사람들이 모두 자신을 음해하고 공격한다는 식으로 증세가
심화된다. 난청이 신체적인 이유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언어
자체에 대한 훈련 부족으로 생기는 오해도 만만치 않다.
한국어 청취이해력 시험은 청취 이해는 기억력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듣고 전체적인 의미를 이해하는 것과 기억을
통해 시험에 답해야 하는 것은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일상적인 청취이해력이 이러한 분석력과 기억력을 동반한다는
것을 감안하면 그만큼 집중해서 타인의 말을 경청하는 훈련이
되어있지 않음을 드러낸다.
2. 영어청취의 환상
영어학습 초보자들의 가장 큰 환상은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은
'모든' 영어를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길에서 내 뒤에서 따라오면서 대화하는 외국인들의 영어 대화를
알아들었는지 묻기도 한다. 내 대답은 '글쎄'이다. 내가
알아들을 만한 거리나 목소리 크기 또는 내용이었다면 그리고
내가 그러한 질문을 예측하고 알아들으려고 노력한 자세에
따라서 그 결과는 다를 것이다.
이런 경우를 보자. 사람들이 많이 모여서 떠드는 장소에 갔는데
잠시 딴 생각을 하거나 다른 데 집중한 사이에 다른 사람들이
떠드는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인간이 물리적인 소리를 듣는 (hear) 것과 내용을
경청하는 (listen) 것 사이에는 커다란 차이가 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소리를 듣고 있되 의미를 듣지 못한 것이다.
그렇다면 모국어란 어떠한 자세나 상황에서도 어떠한 일을 하고
있어도 모든 게 들리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는 이렇게
모국어가 안 들리는 상황도 굉장히 많다는 것을 도외시한다.
모국어의 넘쳐나는 자연스러움에 빠져서 의미가 있는 청취이해는
사실 많은 의식적인 노력이라는 것을 모른다. 그 의미가
어려울수록 고도의 청취 이해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여러
세미나 등에서 딴 짓 하는 이들이 많은 점에서 쉽게 알 수 있다.
3. 다양한 청취의 오류
그렇다면 듣기동 기준의 영어청취 학습을 꽤 많이 한 후에도
영어청취 이해가 원활하게 안 되는 상황에 대한 검증을 해보자.
가장 많은 이들이 이야기하는 게 영화 이야기이다. 영화는
기본적으로 알아듣기 힘들다. 영화를 알아듣기 위해서는 내용,
용어, 상황에 대한 이해, 사람마다 다른 목소리와 억양에 대한
적응, 그리고 문화적 배경지식 등이 필요하다. 영미권 영화에
많은 법정영화에서 자주 나오는 용어에 대한 이해가 없으면
그리고 영미식 재판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영어청취는
영어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영어청취력이 뛰어난 이들은 느끼는 점이겠지만, 영어권
영화배우들 중에서도 많은 노력과 전문성으로 발성이 뛰어난
이들이 있다는 차이를 알아차릴 수 있다. 연극 배우는
속삭이더라도 객석의 청중이 알아듣게 하는 훈련을 하듯 발성은
매우 중요한 것이고, 특히 이 부분에서 관록이 쌓인 배우와
신출내기의 차이가 크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흔히 소리 구분에 대한 구분 의식이 크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이 왜 나처럼 이해하지 못 할까 답답해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게 현실이다. 어떻게 모든 인간의 인지
능력이 똑같겠는가? 바랠 걸 바래야지. 같이 해리포터를 보고
나와서도 부분은 이해하나 전체적인 스토리의 맥락은 이야기하지
못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등장인물의 성격과 각 역할과
관계를 꽤뚫는 사람도 있다. 이런 현상에는 특히 개인적인
관심이 큰 영향을 미친다.
4. 축구 유행 주장의 오류
2002년 월드컵 이후 여성들의 축구에 대한 관심이 커진 것으로
이야기되고 그렇게 믿어야 할 것이라고 기자들은 써갈겼지만,
드라마를 버려두고 축구를 다루는 스포츠뉴스를 보고 있을 20,
30대 여성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축구의 규칙을 알고 축구
보는 법을 배웠다고 주장했던 이들 중에서 지금도 축구 관람을
즐기고 있는 젊은 여성들이 얼마나 있을까 하는 의심을 떨칠
수가 없다. 이것은 스포츠뉴스 청취와 축구 중계방송 청취가
대부분의 여성들에게는 스와힐리어 청취만큼이나 매우 어려운
지각과 인지 능력을 동원해야 하는 과정임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축구에 대한 schema (조직체계)가 쌓여 있다고 해도 규칙을 아는
정도로는 깊은 축구를 이해할 수 없으며, 또 오래 축구팬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영국에서 할머니들까지
축구장에 가는 일상은 한 나라가 매주 지속적으로 축구라는
경험에 대한 사회적 집단적 반복학습이 이뤄지지 않고서는 많은
여성들을 축구장으로 끌어내거나 스포츠뉴스의 축구 소식을 참고
보게 할 수 없음을 말해주는 것이다.
TV 채널 다툼은 한 가족에 속하는 인간들도 특정 프로그램에
대해서 가지거나 축적한 schema가 각각 다르다는 점도 알려준다.
흔히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또 놀랍게도 다 알아들어야 할
말밖에 안 나오는 프로그램을 보면서도 (즉, 전문용어가
없는데도) 따분해서 거의 안 들리는 프로그램도 있다. 눈은 쉽게
보고 있는데 귀가 안 움직이는 것이다. 이것을 보면 시각보다
청각이 어려움이 많으며 잘 알아듣지 못하면 인간을 쉽게
따분하게 만든다는 것이다.
5. 다양한 콘텐트 청취
노래도 마찬가지이다. 영어를 학습하는 이들은 흔히 영어를
잘하는 사람은 노래를 다 알아들을 것이라고 상상한다. 그런
일은 없다. 한국어 노래도 발음과 소리 빠르기에 따라서
알아듣기 힘들다. 한국어로 랩을 하는 것은 물론이고 비교적
느리게 부르는 노래도 알아듣기 힘든 경우는 많다. 이것은 분명
노래 가사라는 언어 형식이 특이하기 때문이다. 일상적 대화
속에서 예측할 수 있는 표현이라기보다는 독특한 내용의
연속이기 때문이다. 노래 속의 영어 가사를 알아듣는 게
당연하다면 클래식 음악의 아리아 가사는 쉽게 알아듣는가?
톡쇼를 보자. 어떤 영어학습자는 Oprah를 시청하기에 편하다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시사 톡쇼가 편하다고 한다. 마치 여성지를
보는 사람과 시사지를 보는 사람의 차이일 수 있다. 아무나
경제뉴스를 시청할 수 있는 게 아니듯이 내용을 이해할 수 있는
준비가 필요한 것이다. 특히 말재간이 많은 야간의 톡쇼는 사회
문화적인 배경에 대한 사전 이해가 없으면 들리는 소리만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오산이다.
만화영화는 어떤가? 어린이용 만화영화는 성우들의 목소리
변조가 심해서 그 자체가 하나의 걸림돌이 된다. 만화 고유의
영어권 문화 배경 지식을 이해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이 모든 경우에서 사회문화적인 배경 이해라는 요인을 빼면 음의
다양성과 속도, 억양의 차이가 큰 요인이다. 특히 속도는
대표적인 차이라고 할 수 있다. 영어권에서 유학생들이 영어를
곧잘 하는 것처럼 보여도 NS들의 속도로 가면 대화 자체를
포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이는 EFL 학습자들이 정제된 음과
속도의 영어로 익히는 게 현실을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이다.
6. 청취의 기술적 장애
듣기동에서 빠른 뉴스영어로 청취학습을 하는 것은 먼저 이러한
속도 적응성을 높인다. FELS는 속도와는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context가 주는 의미에 억양을 결합시키는 학습이므로 속도를
극복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기술적인 문제도 있다. 청취학습을 지도한 경험을 살려보면 같은
음이어도 음질에 따라 그 이해의 편차가 크다는 것이다. 같은
음도 더 깨끗하고 높게 들리도록 주파수를 조정하면 듣는 사람의
청취 이해도가 높아졌다. 이렇게 TV나 라디오 등의 음질도
조절해야 한다. 기술적으로 전자음이 알아듣기 힘든 음인데도
어떠한 영어든 알아들어야 한다는 기준에 시달리는 이들도 있다.
NS에 대한 환상에 살기 때문이다.
어떤 방송의 영어이든 그 자체로 알아들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한국어를 모국어로 사용하는 사람들도
전체적으로 의미만 알아들을 뿐이다. 모국어라는 당연함이 주는
자족감 때문에 다 알아듣는 것으로 서로 넘어가지만, 실제로
무엇을 알아들었는지 조사해보면 못 알아듣는 부분이 많다.
대표적인 게 방송용 자막이다. 유사음으로 처리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 소리를 입력한 게 결국 마이크라는 전자
입력장치이기 때문에 자연음은 아니다. 녹음 상태나 상황이
목소리의 품질과 결합하여 모국어 청취 이해의 난이도를 높인다.
이러한 요인들 이전에 학습량을 내세우는 영어청취 학습자들은
학습자료의 의미를 완전하게 점검하고 넘어갔다는 전제를 깔고
다른 요소를 짚어야 한다. 뉴스의 의미도 모르고 대강 넘어간
상태에서 다른 청취 방해 요인을 거론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7. 문맥 집중은 음성 근사치 편차 극복
FELS (Function-Embedded Listening Skills)는 콘텍스트 의식을
영어청취 학습자의 뇌에 깔아준다. 놀라운 점은 억양과
콘텍스트를 통해 소리와 의미를 연결하는 노력이 가해지는
동안에 영국영어나 미국영어 등의 억양이나 발음의 편차 등을
극복하고 표준 근사치로 해석하는 능력이 생긴다는 것이다. 이는
매우 중요한 사실로서, 일반 영어학습자들이 시달리는 속도나
발음, 억양, 음질 등의 요인이 FELS를 통해서 약화되는 결과를
낳는다. 인간의 감각은 다른 한 쪽에 몰두하는 동안 반대 요인은
가볍게 통과하고 극복하는 원리가 적용된 것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영어만 알아듣던 이들이 영국영어도 무리없이 알아듣게
되는 효과를 낳는다.
8. 내용의 이해
또다른 요인도 있다. 시트콤이나 드라마를 본다고 하자. 슬랭도
나오고 구어적 표현이 많이 나온다. 이런 표현을 모르면 청취
이해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의학용어를 모르는 사람이
정형외과 세미나에 가서 앉아 있어 보았자 피곤하기만 하다.
라디오에서 들리는 뉴스나 TV의 뉴스 등은 전문적이라기보다는
대중적인 콘텐트이다. 중등교육을 받은 사람이라면 다 이해할 수
있는 뉴스를 생산하고 내보낸다는 것이다. 물론 가끔 모르는
단어도 있다. 그렇지만 한국어 내에서도 모르는 경제용어를
이해하지 않아도 주변의 의미만 듣고 넘어가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런 청취는 엄밀한 의미로는 완전한 청취가 아니다. 그렇지만
모국어 사용자들은 대개 이렇게 생활한다. 콜금리, 이전수지
같은 말이 정확하게 무엇인지 설명할 순 없어도 그냥 귀에
들려오는 소리일 뿐이다. 이런 어휘는 분명 수동적 어휘
(passive vocabulary)에 속한다. 정확하게 무슨 뜻인지는 모르기
때문에 대화에서 잘못 사용했다간 추궁을 당할 수 있으므로
불안한 이들은 사용하지 않을 것이다. 그저 듣기만 하는 용어인
것이다.
1. Phonics는 무엇인가?
음소 결합이나 음절 발음 훈련은 미국 어린이들이 많이 하는
Phonics를 생각나게 한다. 미국에서 많이 쓰는 Making Words
시리즈의 내용을 참고하시라.
Making Words
Making More Words
Making Big Words
Making More Big Words
미국 어린이들은 grade school에서 이렇게 'letter and
sound'의 관계를 배운다. 그런데 이러한 훈련이 가능한 것은
이미 그들이 의미를 많이 알고 있다는 배경이 있다. 태어나
자신이 속한 언어권에서 사용하는 언어의 의미에 벌써 익숙해진
상태이다. Phonics는 의미에만 바탕을 둔 소리를 철자와 정확한
발음으로 다시 연결시키는 훈련이다. 일종의 교육을 통한 언어의
표준화이다. 그대로 두면 각자의 언어가 변형이 생겨서 사회의
혼돈이 증가한다.
독립이 /동닙/으로 소리가 나는 음운론적 이해가 필요한 것은
의미의 문제를 해결하는 게 아니다. 미국 아이들은 말을 먼저
배우니 '동닙'으로만 알다가 철자를 통해 '독립', '확립', '수립',
'자립' 같은 철자 그룹과 연결시키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그게
Phonics의 실체이다.
2. 지각과 인지
한국에서 Phonics를 사용한다면 그 결과는 결국 의미 부여라는
과정을 어떻게 보장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의미 부여는 언어적
context를 통한 자연스러운 게 있고, 또 인위적인 학습과정을
통해 만들어지는 게 있다. 즉 water를 보면서 바로 'water'라고
말하는 식으로 생활 속의 시각과 청각으로 아는 의미가 있다.
다른 한 가지는 물리적으로 보거나 듣고 만지는 water는 없이
추상적인 개념 설명으로만 '아는' 게 있다. 물론 후자는 더
고차원적이다. 이 사실은 지각 (perception)이 인지
(cognition)보다 L1의 습득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을
알려준다.
대부분의 한국인 EFL 학습자들은 머리로 생각하는 것은 많은데
그것을 감각을 사용해서 직접 말하고 듣는 지각능력
(perceptual abilities)을 강화하는 훈련은 턱없이 부족하다.
인지가 청취나 발화를 자동적으로 보장하지는 않는다. 의미를
지향하는 과정에서도 지각을 먼저 강조해야 한다. 사용 언어의
범위가 커지면서 많은 언어 데이터에 대한 사고, 분석, 분류를
해야 하므로 점차 인지를 강조하게 된다.
3. 의미를 분리하는 오류
발성법은 의미를 포함하지 않는다면 스키너의 행동주의
(behaviorism) 이론에 가깝다. 언어 습득을 물리적인 과정에만
집중하고 정신적 개념은 사용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필링
훈련'이니 하는 것은 가령 Stimulus-Response Theory의 정적
강화 (positive reinforcement)를 인위적으로 시도하는 것이다.
S-R 이론의 강화는 자극마다 뒤따라가는 강화를 말하기 때문에
이론의 본류와는 거리가 먼 것이다. 소리와 의미를 완전히
분리했기 때문이다.
언어는 의미이다. 소리 훈련을 하는 자체가 중요하지 않은 게
아니지만 의미가 없는 소리는 아무 소용이 없다. 언어에서 모든
소리는 의미에 종속이다. 발음이나 억양이나 모든 음운론적
현상은 의미를 구현하려고 존재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한국인들은 소리를 통해 영어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는 그러한
일상의 context도 없다.
소리야 익숙해지면 언젠가 들릴 것이다. 그렇지만 의미가 없는
소리는 언어학적으로 무의미하다. 워릭의 대학원 지도교수에게
한글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스페인어처럼 일주일이면 한글을
읽을 수 있다고 말하니까 바로 "But you don't know the
meaning!"이라고 가볍게 말하던 게 생각이 난다. 스페인어가
복잡한 발음원리가 없다고 쉽게 배울 수 있나? 소리로만
들린다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눈으로 본 게 소리로만 들리게 된
것뿐이다. 소리만 들리면 되고 의미는 따로 배워야 한다는
주장이라면 정말 황당하다. 왜 그런 쓸데없는 짓을 하나? 개가
짖는 것도 아니고...
4. 지각 과다의 위험성
말을 못하는 아이들이 만화영화를 보고 즐거워한다면 지각이
사용되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적어도 물리적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낸다. 말을 못하는 아이들이 만화영화의 언어를 이해하지는
않으나 언어가 주는 재미있는 소리의 감각에 반응해 웃는 것이며
시각적 장면에 연결시켜 웃는 것이다. 이렇게 소리는 매우
복합적인 현상을 통해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고 이게 흔히
L1에서 쓰이는 행동주의 이론이다.
언어의 수준이나 범위가 넓어지면 인지가 들어서게 된다. 언어의
복잡성 때문이다. 예를 들어, 이 글을 읽는 이들도 '지각'이나
'인지'라는 추상적인 용어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면 지각을
많이 사용하는 언어 학습이 더 낫다.
그러나 성인이 되어서 이런 지각 훈련에만 몰두한다면 독해력과
작문력에 필요한 인지 능력에 문제가 생길 것이다. 언어 개념의
추상화에 필수적인 encoding이라는 인지 능력이 저하된다.
비디오의 역효과가 그것이다. 지각 능력은 강화하지만 분석하고
심층적으로 사고하는 전전두엽은 퇴화한다. 인간의 두뇌는
사용하는 쪽으로 몰리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비디오 게임 등에
심하게 몰두하는 이들을 보면 뇌의 전전두엽의 기능이 퇴화해서
자제력이 부족하고 공격성을 드러낸다. 생각을 하지 않고 지각을
통해 바로 행동하기 때문이다.
5. 의미는 억양을 통제한다
발성법은 음운론의 관점에서 발음 자체에 대한 훈련으로는 일부
통하는 이야기이다. 그러나 다음의 예를 들면 또 말이 안 된다.
미국영어를 잘 알아듣는다고 하는 한국인들도 영국영어를
발음과 속도 정도에 따라 못 알아듣는 이들이 많다. 그런데 요즘
대부분의 교육받은 미국인들은 다양한 영국영어의 억양을 잘
이해한다. 의미가 존재하지 않아도 영어에 대한 음운론적
익숙함만 있다면 영어가 들려야 한다는 주장의 오류이다. 물론
대부분의 한국인들에게는 영어의 의미는 익숙한데 음운 현상에
대한 부적응이 문제를 낳고 있다. 음운과 의미를 분리하면 더 큰
모순을 가져온다.
성악가는 소리로 감성만 표현하면 되지만 언어는 의미를
표현해야 한다. 지각과 인지가 연령에 따라 다르지만 지각이
우선인 연령이 있고, 둘 다 동시에 필요한 연령이 있으며, 성인
연령으로 가면서 인지의 역할이 두드러진다. 지각 훈련만
과도하게 한 이들을 종종 만나는데 발음에 치우친 나머지
상대방이 자신의 말의 논리를 거의 간파하지 못함을 모른다.
영어의 의미는 신경쓰지 않고 발음에만 열심인 경우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발음 훈련을 열심히 했는데도 어색하다는 것이다.
의미와 억양의 조화가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말로
표현하는 논리는 더욱 힘든 문제이다.
6. 의미는 자동이 아니다
발성이나 음 조합 훈련을 해서 소리 자체로 들린다고 하자.
의미는 이해하는가? 그러면 미국 아이들처럼 의미를 알고
Phonics를 하는 것도 아니고 의미는 어떻게 연결시킬 것인지
궁금하다. 의미는 그냥 자동 요소로 계산한 것일까? 그 중요한
의미를 말이다. 흔히 누가 마구 떠들어도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못 알아듣겠네 그런다. 그게 언어이다. 의미 전달 체계가 없는
소리는 언어 기능을 상실한다.
그래서 영미인들도 정교한 토론 훈련을 하고 그러는 것이다.
한국인들도 마찬가지이다. 대중 앞에 나서서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말하는 훈련이 필요하다. 물론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소리는 다들 잘 낸다. 하지만 의미 전달 구조나 논리가 약하다.
소리에 정교한 의미나 논리 구조가 존재하지 않으면 '소음'으로
여겨지니 곧 고개를 돌리거나 딴짓을 하는 사람들을 만난다.
이것은 훗날의 현상이지만 예정된 것이기도 하다. 언어의 의미를
구현하는 발음습득이라는 과정을 상실하면 분명 나타날
현상이다. EFL 환경은 언어 과보호가 작용하는 공간이라는
특성도 간과하면 안 된다. 현실은 크게 다르다. 과보호가
사라지면 자신의 '영어'를 못 알아듣는다고 원망하는 소리가
나온다. 과보호가 사라진 자연스러운 언어환경에서 의미없는
소리를 울부짖는다는 것은 턱없는 행위이다.
7. 소리와 의미의 유기적 결합
의미를 제외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발성법을 하든 음 조합
훈련을 하든 의미를 항상 실어야 한다. 의미와 소리를 조화하면
그게 바로 듣기동의 FELS 학습법이다. EFL 환경에서는 의미를
주는 context가 기본적으로 존재하지 않는 만큼 소리에 의미가
없다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게 없다. 물론 과거에는 텍스트를 통한
의미만 있고 소리가 없었다. 한국에선 소리와 의미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서 대중에게 쉽게 보이는 마술을 팔아먹는 풍조가
강하다. 소리와 의미의 분리는 영어학 아니 언어학에서도
궤변이다.
8. 불완전한 말글로 이론에 기대는 이들
대학원 등에서 생성문법 등을 공부하는 이들을 보면 영어교육에
섣불리 적용하다 실패하는 이들이 부지기수이다. 영어도
능숙하지 않은 이들이 생성문법을 파고 있다. 착각도 큰
착각인데 그것은 언어학이다. 언어의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며
보편적으로 아는 언어가 영어라 영어를 분석수단으로 한
것뿐이다. 그런데 멍청한 자들이 이것을 영어학에 거꾸로
대입하고 있다. 그래서 영어를 못하면서도 GB니 LFG니 따지고
다니는 이들이 늘어나는 이상한 현상도 보인다.
제대로 알아야 한다. Otto Jespersen 같은 이는 덴마크
사람이면서도 영문법의 권위자였고 언어에도 능통한
사람이었다는 점을. 요즘 기본적으로 영어를 비롯한 제 언어를
말과 글로 사용하지 못하는 이들이 이론을 뒤집어쓰고 있는데
한심한 현상이다. 특히 영어사 연구자들의 맹성을 촉구한다.
어원학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유럽어 중에서 불어, 독일어
등 중요한 언어 몇 가지는 말과 글로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책을 읽어보면 다른 사람 연구성과를 그저 옮겨놓는 식인데.
자신이 여러 언어를 모르니 자신의 생각으로 쓸 게 뭐가 있겠고
언어를 통해 뭘 느끼겠나.
휴대폰 칩 설계 기법에 대한 복잡한 전자공학 이론을 일반인이
이해할 수는 없어도 그 이론의 적용은 휴대폰을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그렇지만 고도의 전자공학 이론을 이용해
휴대폰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이 정작 휴대폰을 사용할 줄
모른다면 대단한 코메디일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영어학계에는
그런 이들이 많다. 더 큰 문제는 그런 '전문가들'이 그 복잡한
전자공학 이론을 휴대폰 사용법도 모르는 유치원생들에게
가르치려고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복잡한 전자공학 이론이
실제로는 우주항공산업에 해당하는 이론이라면 더욱 가관이다.
그래서 필자는 언어 자체를 습득하지 못한 이들의 이론 몰두
현상을 일종의 '방어막'으로 파악한다.
HK
CE에서 영어청취에 대한 깊은 전문성을 통해 잘한 것 중 하나가
영어청취 학습 과정 자체를 학습자에게 '당연한' 것으로 느끼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의 영어 상황에 맞게 일주일에 3분
분량의 파일 하나로 영국영어를 듣게 만들고 영국영어 청취
능력을 유지하도록 만든 것은 개인적으로도 훈장을 받아야 할
일로 여긴다.
사람은 가끔 당연하게 되어 버린 상황 속에서 당연하지 않았던
시절을 생각해 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나 자신도 영어를
사용하지 못하던 시절이 있었을 것인데, 현재의 모습과 느낌이
압도적이라 과거의 그러했을 시절의 모습과 느낌을 뒤덮는다.
그러나 영국영어를 듣게 된 사람들은 그리 멀지 않은 시절의
비교담이나 영국영어를 듣지 못했던 시절의 기억을 되살려 보라.
내가 이런 이야기를 반드시 해 주고 싶은 이유가 있다. 영국의
대학원에 영어교사 자격으로 유학하면서도 몇 년이 지나도
영국영어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얻지 못하고 돌아가는
이도 많다. 지금도 영국에서 돌아와 단편적인 청취 외에
정밀하고 의미 흐름을 관통하는 영어청취를 못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강의를 못 알아듣는 이들이 적지 않으며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서도 여전히 못 알아듣는 이들도 적지 않다.
그 감동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저 무심하게 흘려 보내지 말고.
언어는 자연스럽게 감동을 잊어 버리며 익히는 게 이상적으로는
최선일지 모르나, 이렇게 종종 그 전후 차이의 감동을 되살리는
것도 학습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렇게 안 들리던 미국영어,
영국영어를 들을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은 결코 단 한 차례의 구타
안수기도도 아니며, 한 알의 신약도 아니었다. 직관력과 분석과
이해가 노력을 구조화하고 과학화하는 결과를 낳은 것이며,
여러분은 여러분 자신의 노력을 영어라는 언어의 구조적인 틀에
합리적으로 일치시키는 방법을 만난 것이다.
안 들리던 시절을 기억하는 게 그저 싫더라도 가끔씩은 그
차이를 기억하라. 그 시절로 돌아가라. 자신의 뇌가 어떻게
프로그램되었는지 되짚어 보란 말이다. 내가 영국영어를
이야기하는 것은 미국영어는 어느 정도 듣는 사람이 태반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국영어는, 같은 영어인 미국영어는
알아들으면서도, 못 알아듣는 요상하고도 특이한 현상을
보였기에 하는 말이다.
특히 문법과 어휘, 독해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다는 한국의
듣기영어 실패자들에게는 FELS와 CE Tool이 그 자체로
복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소리로
새로이 구성하는 학습 메커니즘이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 안 들리던 시절도 기억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가끔은 자신의 영어가 아프던 시절을 떠올리는 게
학습의 자극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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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트콤이나 드라마는 내용의 흐름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이해할
수 있다. 영어는 한국어보다도 문맥에 의존하는 흐름이 많다.
어떤 사람들은 보던 드라마를 놓치면 인터넷으로 접속하여 빠진
내용을 읽는다고 한다. 이는 물론 놓친 드라마의 흐름에 대한
이해를 유지하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다. 이러한 노력도 없이
앉은 자리에서 모든 영어를 이해하기를 바라는 것도 결국은
환상이다. 소리는 들릴지라도 이해는 부족할 것이다. 보고나서
내용이 생각나지 않으면 이해가 부족한 것이다. 나도 그런
영화가 있었다. 코드가 맞는 영화는 줄거리부터 등장인물, 맥락
등이 다 생각나는데, 어떤 영화는 분명히 보았는데도 거의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림 외에는. 의미의 실종은 청취부재의
당연한 결과이다. 그러한 청취부재는 관심없는 내용과 주제,
영역이라는 전제의 결과이다.
어휘 부족도 청취에 영향을 끼친다. 경제, 군사, 시사, 과학,
클래식 음악 등 미디어 콘텐트의 종류에 따라 대중의 평균적인
어휘를 아는 게 중요하다. 평균적인 어휘라는 것은 정해진 것도
아니므로 모르는 게 나오면 제작자가 자신의 평균보다 높이
잡았다고 여기면 된다. 시트콤을 좋아한다면 시트콤에서 많이
쓰이는 표현이나 슬랭 등을 정리한 어휘책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다.
영화평론가가 이라크 전에서 사용된 미군의 무기 현황에 대해서
말할 수는 없다. 광우병에 대한 톡쇼에서 음악교사가 할 수 있는
깊이 있는 말도 별로 없을 것이다. 모국어라는 환상 하나에,
또는 영어라는 환상 하나에 영어학습자들은 모든 말을 듣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은 착각을 계속하고 있다. 앞으로도 바뀔 수는
없다. 인간의 언어생활이 그러한 모습을 띠면서 착각과 추정을
반복하기 때문이다. 이는 자존심이나 허영과도 연결된
현상이기도 하다.
9. 청취가 고도화되는 과정
영어가 콘텐트의 종류에 따라 들렸다 안 들렸다 하는 현상은
여러 사람들에게 나타난다. 다양한 사람들이 생산하는 영어의
음질을 지각으로 자신의 조직체계 (schema)에 근사치로
동일시하는 과정이 정착되면서 나타난다. 어떤 이들은 자신의
schema가 가진 음에 지각입력의 근사치를 적용하고 조정하는
과정에서 낮은 주파수의 음에 혼동을 많이 느낀다. 이 단계가
지나면 음질이 나쁘거나, 낮은 음이 많거나, 주변의 소음이
많아도 음의 근사치보다는 의미적 상황으로 억양을 해석하는
능력이 강화되면서 청취이해력이 고도화된다.
청취는 이제 말로 이어져야 한다. 듣기만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므로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발음을 일치시키는
노력은 지각적으로 음을 해석하는 능력을 키운다. 청취이해력은
기본적으로 말을 하게 되면서 더욱 정교하게 의미와 문맥 위주로
나아가게 된다. 많은 사람들은 말을 하게 되면서 잘못 알고 있는
발음이라든가 억양, 의미 등의 정보가 노출된다. 일방적으로
듣고만 있는 사람이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 검증할 방법이
없다. 솔직히 청취가 어느 정도 들린다는 것인지 검증할 통계도
없다. 발음과 억양을 통해서 한 사람의 청취력이 어느
정도인지도 가늠할 수 있다. 영어를 말하지 못하면서도 들린다고
하는 것은 그 진실성을 의심해볼 충분한 이유가 있다.
뉴스 등을 통한 고급 영어청취는 속도와 발음, 억양을 극복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의미는 소리의 존재 이유이다. 영어는 문맥이고
그 문맥은 억양을 낳는다. 그리고 그 억양이 다시 그 문맥의
의미를 표시한다. FELS는 그러한 개념과 의식을 자연스럽게
확보하려는 구조적인 노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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