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음쳄버오케스트라 제33회 정기연주회 〈화음 프로젝트 Op. 86, ‘Back to the future’〉
2009년 11월 24일 (화)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레스피기 ― 고풍적 무곡과 아리아, 모음곡 3번
김성기 ― 화음 프로젝트 Op. 86, ‘Back to the future’
드보르자크 ― 현악오케스트라를 위한 세레나데
※ 이 글은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공연예술창작기금지원사업으로 기획한 국민평가단 평가 자료를 겸하는 글이며, 평가서 항목에 맞추어 썼음을 밝힙니다.
▶ 공연작품의 예술적 수월성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없는 악단이라 장점과 함께 단점 또한 그대로 드러내었다. 음색과 리듬 따위가 서로 잘 어울려서 연주가 매끈하게 잘 돌아간다는 느낌이 들었으나, 템포와 다이내믹 등에 섬세한 변화가 필요할 때에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곤 해서 연주가 전체적으로 밋밋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악기 밸런스가 때때로 고음에 치우쳐서 저음이 모자란다 싶기도 했다. 김성기 창작곡 《Back to the future》는 친숙한 느낌이 드는 선율이 조각조각 나뉘어 전통적인 ☞기능화성을 쓰지 않았는데도 어딘가 한국적이다 싶었으며, 대중성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나름대로 새로움을 담아내려는 시도가 인상 깊었다.
▶ 공연계획 실행의 충실성
음악과 미술을 결합한다는 아이디어는 좋았으나 프로젝터에서 나는 듯한 소음이 음악 감상에 방해되었다. 악단 규모가 작은 탓도 있었겠으나 이날 사용된 프로젝터가 음악용으로 쓸 만한 저소음 장비가 아니었던 듯하다.
▶ 공연성과 및 해당분야 발전에의 기여도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CJ그룹이라는 든든한 단체가 후원하고 있어서 정부 지원이 그다지 절실하지 않아 보인다. 이날 보여준 앙상블은 제법 훌륭했으나 정부가 일부러 나서서 지원해야 할 만큼 대단하지는 않았다.
▶ 총평
국내 악단이 보이는 고질적인 문제로 개인 기량은 좋으나 합주를 잘 못한다는 대목이 꼽히곤 한다. 콩쿠르 위주 교육제도나 연주회장 무대음향 등이 원인이라고들 하는데, 직접적인 원인을 따지면 결국 다른 사람 연주를 잘 듣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내악 활성화가 그 대안이라 할 수 있겠으나 10명 이내 악단과 대편성 오케스트라를 이어주는 중간 단계로 중형 앙상블이 할 수 있는 역할 또한 작지 않다. 그런데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지휘자가 없는 악단이라 단원이 저마다 다른 사람 연주에 더 많이 귀 기울여야 하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마련된다는 장점이 따른다. 다만, 지휘자 대신 악장에게만 의존하게 된다면 그 장점도 빛바랠 위험이 있으니 실제로 얼마나 효과가 있는지는 악단 밖에서 알기 어렵다.
지휘자가 없다는 사실은 장점인 동시에 단점이 되기도 한다. 이날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섬세한 템포 변화가 필요한 곳을 얼렁뚱땅 넘어가곤 했으며, 이를테면 레스피기 《고풍적 춤곡과 아리아 ― 모음곡 3번》 2악장 마디 90―98에서 '조금씩 느리게 ― 본디 빠르기로'(poco rit. ― a tempo)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고, 마디 85를 비롯해 드물지 않게 나오는 ☞모두쉼표(Generalpause)는 거의 생략했다. 드보르자크 《현악 세레나데》 3악장에 여러 차례 나오는 ☞스포르찬도를 비롯해서 곳곳에 나오는 셈여림 기호도 제대로 살리지 못해서 전체적으로 연주가 매끈하기는 하나 맨송맨송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휘자 없이 연주하는 일은 버리기 어려운 장점이다. 그러나 가끔이라도 객원 지휘자를 써서 모자란 곳을 보완해보는 경험도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휘자가 없는 것과 큰 관련은 없겠으나 매우 여린 소리를 잘 내지 못했던 대목도 아쉬웠다. 《현악 세레나데》 3악장에 드물지 않게 나오는 ppp와 pp는 p와 견주어 그다지 다를 바 없게 들렸고, 《고풍적 춤곡과 아리아 ― 모음곡 3번》 2악장 마디 39에서는 '매우 가볍게'(leggiero)라는 나타냄말도 있어서 음반을 들어보면 pp 대목에서는 아예 파트 수석 네 명만 연주하여 합주협주곡 같은 느낌을 살리기도 하는데, 이날 화음쳄버오케스트라는 이곳에서 셈여림 대비를 그다지 뚜렷하게 살리지 못했다.
이날 악단 편성은 내 기억이 맞는다면 '4-4-4-2-1'이었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를 합쳐서 '베이스 성부'를 맡도록 한 모양인데, 서양음악이 4성부(SATB)를 바탕으로 하므로 이것은 나름대로 타당하다. 그러나 베토벤 이전 작품이라면 몰라도 이날 연주된 곡은 모두 19세기 이후 작품이라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따로 움직일 때가 잦아서 이따금 저음이 모자란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게다가 제1 바이올린과 견주어 제2 바이올린과 비올라가 때때로 너무 뒤로 빠지는 듯해서 밸런스가 고음에 치우친다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
이를테면 레스피기 《고풍적 춤곡과 아리아 ― 모음곡 3번》 2악장 마디 84에는 '느리고 장중하게'(Lento con grande espressione)라는 나타냄말이 있으며 제1 바이올린은 G 현으로 연주하도록 하고 있지만, 이날 연주는 저음이 모자라서 그다지 묵직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4악장 마디 24에서는 저음을 중심으로 하는 내림활 소노리티(sonority)가 살아나지 않았고, 마디 33에서는 제1 바이올린 선율을 잇는 첼로 소리가 작아서 주선율이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연주자가 한 사람뿐이었던 콘트라베이스는 제법 훌륭했으며, 더욱이 드보르자크 《현악 세레나데》 5악장에서 빠르게 달릴 때에도 굼뜬 소리를 내지 않고 리듬을 또렷하게 잘 살렸다. 누군가 싶어서 나중에 악단 홈페이지에 가보니 미치노리 분야(Michinori Bunya)란다.
김성기 창작곡 《Back to the future》는 연주에 앞서 이른바 '중심음정 기법'이라는 말로 짧게 소개되었다. 이 말은 얼핏 들으면 윤이상이 썼던 '중심음 기법'(Hauptton-Technik)과 비슷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음'과 ☞'음정'이 다른 만큼 두 기법은 맥락이 다르다. 윤이상은 펜 글씨와 붓글씨 비유처럼 음정이 아닌 음 하나가 살아 움직이게끔 하고, 그 음이 모여서 음향복합체를 이루도록 했다. 그러나 그 음악을 귀로 들으면 어딘가 조금은 한국적이다 싶으면서도 그보다는 낯선 느낌이 더 크게 마련이며, 그 기법은 아방가르드 음악과 이어져 있어 현대음악에 익숙지 않은 사람이 따라가기 쉽지 않다.
김성기는 아방가르드와 거리를 두고 서양음악 전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려면 한국적인 요소는 결국 음정에서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 듯하다. 《Back to the future》는 조성이 있는 곡이어서 귀로 듣고 주선율을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전통적인 ☞기능화성을 따르지 않을 때가 잦아서 낡아빠진 음악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으며, 어딘가 익숙한 선율이 음정 단위로 조각조각 나뉘어 있어서 새로운 느낌이 들었다. 비올라 독주에 이어진 합주에서 '옹헤야 어절씨구' 선율이 너무 뚜렷하게 드러나서 살짝 유치하다는 생각도 했으나, 곧바로 새로운 음형이 나타나서 이런 정도는 대중성을 잃지 않으려는 노력으로 헤아릴 만하다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