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9차 서양음악학회에 다녀와서
신기했던 대목. 작품 초연 때 관객이 말썽을 부리는 일은 20세기 초까지만 있었던 일인 줄 알았더니 이제 보니 아니었다.
<아칸토>를 락헨만의 가장 급진적이고 혁명적인 작품으로 평가하는 에두아르트 브루너의 회고에 의하면, 1976년의 초연 뿐 아니라 그 이후의 연주들에서도 <아칸토>는 늘 파란을 일으켰다고 한다. 연주회의 청중들은 물론이고, 무대 뒤에 올리기 전 오케스트라 단원들조차 격분해서 대항하는 바람에 지휘자가 어려움에 처하기도 했다고 한다. 바르샤바 연주에서도 대단한 소동이 일어났는데, 펜데레츠키가 벌떡 일어나 야유를 쏟아 붓기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1981년 프랑스 메츠(Metz)에서의 연주 이래로 이러한 반응이 변하여 청중들이 마치 차이콥스키 협주곡을 들은 때처럼 브라보를 외쳤으며, 며칠 후 파리 연주에서 락헨만은 대단한 환영을 받았다고 한다. 그런가하면 1980년대 중반 뮌헨연주에서는 연주가 끝나자 청중석에서 우선 야유가 나왔고, 그러다가 망설이는 듯한 브라보로, 이어서 점점 커다란 박수갈채로 변했다고 한다. 즉 락헨만은, 특히 이 <아칸토>는 거의 항상 음악가와 청중의 논쟁의 대상이 되어왔던 것이다. (5쪽)
그런데 <아칸토>가 펜데레츠키마저 야유를 퍼부어야 할 만큼 급진적인지 나는 좀 갸우뚱하다. 그냥 듣기 좋구만. ㅡ,.ㅡa
그는 또한 게오르크 뷔히너의 <보체크>의 대사인 "인간은 그 아래를 내려다보면 현기증을 일으키는 깊은 구렁과 같다"를 인용하면서, "예술은 그 구렁 아래로 시선을 계속 두고 그러한 경험을 통해 이해되어야 할지, 또는 그러한 경험을 배제하고 전통적 작품을 따뜻한 이불처럼 머리끝까지 뒤집어쓰고 있는 사회의 기대에 순응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자신의 작품, 특히 <아칸토>가 논쟁의 대상이 되는 것의 이유를 스스로 진단하면서 그는 이 곡이 단지 낯설거나 낯설게 된(verfremdet) 음향들을 포함할 뿐 아니라, 그런 낯선 음향들 가운데 극히 친숙한 사운드--이를 들으면서 세계가 제대로 돌아간다(in Ordnung)라고 생각하게 되는--가 들어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자신에게는 세계가 더 이상 'in Ordnung'이지 않다고 하는 락헨만은 "미적으로 매우 쾌적해하는(wohl fühlen) 나, 모래에 머리를 처박고 있는 나, 불확실성으로부터 도망치는 나를 위한 그런 음악의 이같은 생각 없는 사용 또한 생각없는 소비"에 대해 신랄하게 비판한다. (12쪽)
모차르트를 길게 인용하는 대목이 가장 중요한 대목이기는 한데, 나는 어째 조금은 엉뚱한 생각이 들더라. 그 앞서 뚜렷한 3화음이 반짝하고 나타났다 사라지는 식으로 모차르트 음악 파편이 나오는 대목은 마치 라디오 채널을 돌리는 듯하고, 마침내 모차르트 음악이 제법 길게 흘러나왔다가 사라지는 대목에서는 음악 속 화자 또는 주인공이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모차르트? 즐!"
이건 마치 제목이 가물가물하는 어떤 록 음악과도 닮은 데가 있다.
Chopin, Mozart, Beethoven.
(빠바바 밤~ 베토벤 교향곡 5번)
It makes me wanna scream.
Bach, Tchaikovsky, violins.
(모차르트... 디베르티멘토...였던가...-.-a)
Turn it off! That ain't my scene.
검색해 보니 Def Leppard의 "Let's get Rocked"란다. 맞다, 그거였지. 김원철이 중딩 때 듣던 음악이라. ㅡ,.ㅡa
물론 "락헨만이 모차르트의 음악 자체에 대해 반감을 갖고 평가절하하는 것은 결코 아니어서, 모차르트에 대한 양가적 입장을 보인다."라는 말은 맞을 거다. 그러나 락헨만이 모차르트 음반을 틀면서 전통을 키치로 다루는 현대 소비사회에 침을 뱉는 행위는 데프레파드가 저 노랫말에서 베토벤과 모차르트를 '꼰대나 듣는 음악'쯤으로 대상화시키는 태도와 어찌 보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