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월 29일 토요일

[펌] 바그너와 그의 여인들

글쓴이한테 허락 받고 퍼왔습니다. 함부로 퍼가지 마세요.

출처: http://www.goclassic.co.kr/club/board/viewbody.html?go=&code=opera&page=1&group=1998&number=5976&keyfielda=subject&keyfieldb=comment&keya=%BF%A9%C0%CE%B5%E9&keyb=&andor=and

바그너와 그의 여인들
글쓴이 박원철 (wagner) 날짜 2005년 1월 27일 22시 48분 추천 3 조회 313



바그너 뉴스 그룹의 FAQ 중에서 바그너와 여인들 부분을 대충 번역해 본 것입니다. 원본은 http://home.c2i.net/monsalvat/wagnerfaq.htm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검은 글씨는 FAQ 내용을 번역한 것이고, 파란 글씨는 제 개인적인 코멘트입니다. FAQ 내용의 진실성/역사성은 거의 검증이 끝났다고 보셔도 됩니다.





- Girl No1. Leah David (1813-?)

바그너의 첫번째 사랑. 누나 Louisa의 친구이기도 했던 Leah는 유대인 과부의 외동딸이었다. 어린 바그너는 그녀의 사촌에게 무례하게 굴었다는 이유로 David 집안에서 환영받지 못했는데, 그 진짜 이유는 이 사촌과 Leah가 결혼하기로 되어 있었다는 것을 바그너가 알지 못한 채 행동했기 때문이었다.



이때 바그너의 나이가 18살이라고 합니다. 또 Leah 와 깨진 다음 해에 Pachta 백작의 딸 Jenny Raymann과도 연애를 한 듯 합니다. FAQ에는 빠져 있지만, 같은 사람이 담당하는 연대기에는 이 여자 이름이 나옵니다.





- Girl No 2. Wilhelmine (Minna) Wagner nee Planer (1809-1866)

바그너 전기 작가들은 민나를 대하는 바그너의 태도에 비판적인 경향이 있고, 이는 실제보다도 더 과장된 듯 하다. 젊은 바그너는 자신의 재능과 관심분야를 도저히 쫓아 올 수 없는, 그에게 맞지 않는 여자와 결혼하였다.

민나는 15살때 이미 꼬임에 넘어가, Natalie라는 딸이 있었으며 그 딸을 자기의 작은 동생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그녀가 더 이상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임은 나중에 알려졌으며, 바그너는 한때 입양을 고려하기도 했다. 1836년 결혼을 하고 난지 몇 주 안되었을 때, 민나는 다른 남자와 도망쳐 버린 적이 있다. 바그너는 돌아온 그녀를 받아 주었으며, 그때 이후 그녀는 리가, 런던, 파리와 드레스덴을 관통하는 역경과 고난의 시간동안 바그너와 같이 보냈다. 그녀가 바그너와 함께 스위스로 망명을 했을때, 그곳에서 두 사람의 결혼생활은 트리스탄과 이졸데라는 암초를 만났다. 바그너는 자기 이름값에 걸맞게 민나가 죽기 전까지 그녀를 경제적으로 후원해 주었다 (적어도 바그너의 후원자들은 그렇게 했다.) 바그너도 한때 잠깐 이혼을 고려해 본적이 있다.



민나는 리하르트 바그너보다 4살 위입니다. 왜 이런 연상의 여인들에 대한 동경이 그에게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두 사람은 만난지 2년후인 1836년, 바그너 나이 23세/ 민나 27세에 두 사람은 결혼하게 됩니다. 어찌 보면 민나만큼 불쌍한 여자도 없고, 다른 한편으로 그 여자니까 그나마 바그너와 그토록 오래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둘 사이에 자식이 없었다는 사실은 이번에 저도 새삼스럽게 깨달았습니다.





- Girl No 3. Jessie Laussot nee Taylor (1829-1905)

영국 태생. 음악을 좋아하는 보르도 와인상의 아내. 바그너와 Jessie는 1850년 보르도에서 만나 짧지만 열정적인 관계가 되었으며, 그녀 남편에 의해 그리스로 도망치려던 두 사람의 계획이 무산되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후에 그녀는 남편을 떠나 플로렌스로 옮겨가서 문필가 Karl Hillerbrand와 살다 결혼했다. Jessie는 리스트, 본 뵐로, 그리고 Karl Ritter의 어머니 Julie Ritter등과 친구였으며, 보르도에서의 사건이전에 Jessie와 Julie는 바그너를 위한 모금 계획을 세우기도 했다.



1850년이면 바그너가 드레스덴 봉기에 참여했다가 스위스로 ㅉㅗㅈ겨 나 있던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전날의 민중 혁명가가 그 다음날에는 남의 여자 꽁무니 쫓아 다니고 둘이 같이 아내/남편 버리고 도망갈 계획을 세운다는 것이 .....




- Girl No 4. Mathilde Wesendonck nee Luckemeyer (1828-1902)

시 인이자 문필가. 바그너와 마틸데는 10여년 동안 엄청난 양의 서신을 주고 받았다. 오토와 마틸데 베젠동크는 돈으로 바그너를 도왔으며 자신들의 쥬리히 집 오두막 Das Asyl 을 제공하기도 했다. 마틸데를 향한 바그너의 우정은 점점 사랑으로 변해갔고, 트리스탄과 이졸데의 가사와 곡을 쓸 때는 거의 뮤즈 여신과 시인의 관계처럼 되어 있었다. 결국 민나는 마틸데와 자기 남편의 긴밀한 관계를 참을 수 없었고, 위기 상황 이후, 바그너는 쥬리히를 떠나 상대적으로 조용한 가운데 자기의 악극을 계속 쓸 수 있게 되었다.



좋게 이야기하면 베젠동크 가곡집의 작사자이고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탄생시킨 주인공이지만 나쁘게 이야기하면 남편이 시퍼렇게 살아 있는데 자기 집에서 불륜을 저지른 여자라고 봅니다. 그 당시의 전반적인 사회 상황이 원래 그랬었나 하고 의심이 가게 만드는 사람입니다.




- Girl No 5. Friederike Meyer (?-?)

배우, 비엔나 오페라의 Frau Meyer-Dustmann의 자매. 1862년 바그너와 민나와 헤어진 후, Friederike와 잠깐 불륜에 빠진 듯 하다. 그 결과, 바그너는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비엔나 오페라에 올리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 Girl No 6. Mathilde Maier (1833-1910)

마틸데는 1862년 마인즈의 Schott 집에서 불행해 보이는 작곡가를 처음 만난, 착하고 젊은 여자였던 듯 하다. 바그너가 그녀와의 결혼을 생각해 본 것은 거의 확실하며, 아마도 결혼 신청을 했을 지도 모른다. 다른 여자들과는 달리, 이 여자는 바그너의 자서전에 등장한다.



Girl No 5. 와 Girl No 6.는 같은 시기에 일어난 일입니다. 아직 Girl No 2. 민나는 죽지 않았고 - 거의 죽을 듯이 아프기는 했지만 - 또 다른 한편으로는 Girl No 7. 코지마랑 한참 이야기가 무르익고 있었습니다. 이때 바그너 나이는 49살.





- Girl No 7. Cosima von Bulow nee Liszt (b. Como 24.12.1837, d. Bayreuth 1.4.1930)


코 지마는 헝가리 작곡가 리스트와 프랑스 Marie d'Agoult 백작부인사이에 태어난 사생아였다. 이런 부모들때문에 우습게도 그녀는 단호한 독일 국수주의자가 되었다.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인 한스 본 뷜로와 결혼하였으며, 본 뷜로 남작부인으로 바그너를 처음 만났다. 그때 그들은 쥬리히를 방문중이었으며 바그너는 민나, 코지마, 마틸데가 모여 있던 작은 모임에서 자기의 트리스탄과 이졸데 대본을 낭독하였다. 나중에 본인의 결혼 생활이 어려워지자, 코지마는 바그너와 연애를 시작했고 곧 뮌헨의 스캔들로 번졌다. 바그너는 루드비히 왕에게 자신과 코지마는 그냥 좋은 친구사이라고 말했지만, 이 관계는 첫번째 이졸데 역을 맡았던 Malvina Schnorr von Carolsfeld가 루드비히 왕에게 코지마야말로 바그너의 정부(情婦)라고 드러내놓음으로 시련을 겪었다. 이 모든 소동을 잠잠하게 받아 들인 유일한 사람 - 한스 본 뵐로 -은 끝까지 바그너의 충실한 친구이자 후원자로 남았다. 민나가 사망하고 이혼 절차가 끝난 후에야, 코지마와 바그너는 결혼할 수 있었다.
코지마는 바그너의 삶 마지막 순간까지 그의 곁을 지켰다. 집안일을 꾸리면서 동시에 그녀는 남편의 비서로 일했다. 그녀는 거의 매일 썼던 자기의 일기속에 바그너의 행동과 말들을 기록했다. 두 사람은 살아 있을 때나 죽어서나 갈라 놓을 수 없는 존재였다. 1883년 2월 13일 바그너는 코지마의 팔에 안겨 죽음을 맞았다. 그녀는 그의 몸을 24시간동안이나 붙들고 있었다. 장례식이후 코지마는 바이로이트 축제의 책임을 맡았고 1906년 일련의 뇌졸증이 오기 전까지 행정업무와 예술감독직을 수행하였다. 1930년 그녀가 죽은 후, 코지마는 반프리트 정원의 바그너 옆에 묻혔다.




어쩌면 바그너의 엽기적이기까지한 여성행각의 정점. 남의 아내, 그것도 자기를 가장 믿어 주고 후원해 주는 친구의 아내를, 서로 이혼이라는 절차도 걸치지 않고, 그냥 데리고 와서 애 낳고 살아 버린 사이.

이 모든 어이없는 혼란위에 나를 더욱 어리둥절하게 만드는 것은 한스 본 뵐로가 반프리트에 와서 바그너와 함께 한때는 자신의 아내가 해주는 밥을 같이 먹으면서 즐겁게 떠든다는 사실이었다. 이런 상황을 가능하게 한 것은 본 뵐로의 착한 심성이었을까? 바그너의 카리스마였을까? 아니면 코지마의 강한 사랑의 태도였을까? 아니면 이 모두의 합이었을까?

아무튼 코지마가 대단한 의지의 소유자였던 것은 분명한 듯 하다. 바그너가 죽은 후 약 반세기 동안 코지마는 바이로이트를 바그너교도만이 출입하는 메카로 지켜냈기 때문이다. 무대 장치며 지휘 스타일, 무엇 하나 바꾸지 않고 박제된 커다란 박물관처럼 말이다.





- Girl No 8. Judith Mendes Gautier (b. Kabylia, Algeria 24.8.1845, d. St-Enogat 26.12.1917)

프 랑스인 소설가. 1869년 트립센에서 바그너를 처음 만난 음악 평론가. Judith는 1876년의 축제 기간동안 바그너와 관계를 가졌으며, 어디까지 진전되었는지는 불분명하다. 그 당시 그녀는 남편 Catulle Mendes(1841-1909)와 별거중이었으며, 바이로이트에는 Louis Benedictus와 같이 동행하고 있었다. 바그너의 말년은 그녀와의 열정에 들떠 있었지만, 그녀는 상대적으로 냉담했다.
두 사람은 1870년대 후반 비밀 서신을 통해 연락했으며, Judith의 편지는 바그너의 이발사에게 보내졌다. 결국 코지마가 이 짓에 끝장을 냈으며 수많은 그녀의 편지들을 태워버렸다. 그녀는 바그너가 파지팔을 쓸 동안 반프리트 자기 작업실을 꾸미는데 쓸 비단, 명주, 장미꽃 물등을 살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또 대본을 불어로 번역하기도 했다.



1876년에서 1878년 사이에 두 사람간의 편지가 많이 왔다 갔다 했나 봅니다. 그러다가 바그너가 Judith의 편지를 몰래 태우는 것을 코지마가 적발해 내고 나서야 사태가 진정된 듯 합니다. 이때 바그너 나이 65세. 적어도 이 여자는 자신의 문화계 인맥을 통해 프랑스에 반지와 바이로이트 축제를 소개하는데 공헌을 한 듯 합니다.





- Girl No 9. Caroline (Carrie) Mary Isabelle Pringle (b. Linz 19.03.1859, d. Brighton 12.11.1930)


영국인 소프라노, 1882년의 꽃처녀(파지팔)중 한명. 바그너를 치명적인 심장마비로 몰아 넣은 코지마와 바그너의 말싸움이 일어난 진짜 이유는 (적어도 Curt von Westergagen에게는), 이 Carrie가 곧 베니스에 도착할 것이라는 전갈때문이었다고 한다. 이 일이 있기 이틀 전 바그너는 코지마에게 꿈에서 Schroder-Devrient (첫 Adriano, Senta, Venus역)을 보았다고 말하며, 내 모든 여자들이 내 눈 앞을 지나갔다고 했다. Carrie가 그의 여인중 한명있었는지는 아직도 연구의 대상이다.



만약 위의 이야기가 사실이라면, Carrie의 당시 나이는 23세, 바그너는 70세입니다. 제 입장은 글쎄요.....






구체적인 자료를 보기전에 제가 가졌던 착각은 아마도 바그너는 "눈에 보이는 모든 여자들에게 찝쩍대는 돈 후앙 같은 놈" 혹은 "어느 여자에게 손을 뻗치더라도 100% 넘어 오는 카리스마 만점의 사나이" 였습니다.

짧지만 위의 설명들을 보면 아마도 틀린 가정이 아니였겠나 싶습니다. 여자 이름을 9명이나 댄다는 것이 일상적인 일은 아닐지 모르지만 적어도 동물적이고 무분별한 바람기보다는, 자기를 인정해주고 자기와 예술적인 교감(?)이 있는 상대를 만났을 때 어쩔줄 몰라 하는 예술가들의 묘한 끼때문에 벌어진 일들이 아닌가 보여집니다. (개인적으로 이것들을 옹호하거나 잘한 일이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아무튼 대단합니다. 바그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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