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프랑수아즈 사강이 쓴 소설과 제목이 같은, 그러나 내용은 별 관련 없는 TV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가 8월 31일부터 SBS에서 방영 중입니다. 클래식 음악을 소재로 했다는 모양이라 저는 방영 전부터 조금 기대했었는데요, 첫 방송을 보니 생각 이상으로 좋은 작품인 듯해서 소개해 봅니다.
첫인상만으로 판단하건대,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밀회’ 이후 최고의 음악 드라마라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좋은 음악 드라마를 본 욕심에 저는 이 글에서 아쉬웠던 점을 제법 늘어놓겠지만, 그동안 한국에서 제작된 음악 드라마 또는 음악 영화 상당수가 보여준 수준과 견주면 이번 작품은 매우 훌륭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음악을 소재로 하는 영상 작품은 음악이 극 중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때 더 훌륭해지는 법이지요.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첫 방송에서는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 리허설 및 공연 장면과 여자 주인공 채송아가 겪는 안타까운 사연이 서럽게 공명하는 대목이 인상 깊었고, 남자 주인공이 연습실에서 슈만 ’트로이메라이’를 연주할 때 채송아가 연습실에 들어오는 바람에 서로 놀라는 대목이 ’클리셰’스러우면서도 나쁘지 않았습니다.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장면의 분량을 조금 더 늘려서 음악의 힘을 더 살렸으면 하는 아쉬움이 들기도 했습니다. 방송에서는 1악장 앞부분과 ‘알라 마르시아’(alla Marcia; 행진곡풍으로) 대목, 그리고 4악장 끝부분이 나오더군요. 그것만으로도 좋았지만, 아무래도 ’노다메 칸타빌레’나 ’밀회’만큼 음악을 길게 효과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음악 드라마는 아니지만, 배두나 씨가 출연한 넷플릭스 드라마 ’센세이트’에서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공연 장면과 등장인물들의 사연을 교차하며 마치 뮤직비디오처럼 연출한 대목도 생각났습니다.
오케스트라 연주의 음질이 그다지 좋지 않았던 것도 아쉬운 점이었습니다. 오케스트라 소리를 제대로 잡아낼 수 있는 레코딩 엔지니어가 드라마 제작에 참여했더라면 좋았겠지만, 제작진이 거기까지 신경 쓰지는 못했나 봅니다. 독주 부분은 음질이 괜찮았습니다.
바이올린 전공생 채송아 역을 맡은 배우 박은빈과 피아니스트 박준영 역을 맡은 배우 김민재는 몇몇 장면에서 악기를 직접 연주하는 듯하기도 하더군요. 두 사람의 연주가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훌륭해서 흐뭇했고, 특히 박은빈 씨는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습하는 대목에서 놀랍게도 음 하나하나를 꽤 정확하게 짚었을 뿐 아니라 서투르게나마 비브라토까지 시도하더군요. 제가 비올라를 잠깐 배워 본 경험에 비추어 보면, 박은빈 씨가 연기 연습 못지않게 바이올린 연습을 매우 열심히 했다고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연주하는 품이 아무리 훌륭해도 어쩔 수 없는 아마추어 실력이 드러나는 연주를 드라마에서 그대로 내보냈던 것은 몰입을 방해하는 단점이었습니다. 전문 연주자가 배우의 연기 영상에 맞춰서 새로 녹음했더라면 좋았을 텐데요. 이를테면 채송아 역 박은빈 씨의 왼손 운지가 제법 훌륭했을지라도 활 놀림이 어설픈 것은 어쩔 수 없었고, 그때 바이올린에 이상이 생겼다는 설정을 헤아리더라도 ’아티큘레이션’이 명문대 음대 학생의 실력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박준영 역 김민재 씨가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을 연주하는 대목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런데 그보다 한 가지,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는 분이 이 드라마를 봤다면 누구나 느꼈을 법한 것이 있습니다. 설정상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인 공연장 무대가 오케스트라 연주자로 가득하고 객석은 관객으로 가득한 장면이 참 부럽더라는 것입니다. 제가 지난 3월 27일에 페이스북에 쓴 글이 생각나기도 하더군요. 그때 저는 이렇게 썼습니다:
바이러스가 창궐하지 않은 평행우주의 통영에서는 오늘 2020 통영국제음악제가 개막을 앞두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루돌프 부흐빈더가 리허설을 마치고 개막 리셉션에 참석했습니다. 통영국제음악당 주변에는 벚꽃이 가득 피었고, 하늘은 화창합니다.
#잃어버린_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