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1월 4일 월요일

SF 단편소설 《프린트 한 죄》(Printcrime) ― Cory Doctorow 씀. 최세진 옮김.

▶ 읽기에 앞서: 저작권 문제

이 글은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CCL)를 따릅니다. ☞ 최세진(neoscrum)님 블로그에 있는 번역문에는 이 대목이 명확하지 않으나, 원저작자인 ☞ Cory DoctorowCCL을 적용하여 글을 공개하였으므로 번역문 또한 CCL이 자동으로 적용됩니다. 최세진(neoscrum)님은 블로그 전체에 ☞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불허·개작허용을 적용하셨는데, 이것은 ☞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저작자표시-비영리-변경금지 라이선스와 주요 내용이 거의 같습니다. 다만, 세부적인 법률 내용은 다를 수 있으므로 엄밀히 말하자면 이 글만큼은 정보공유라이선스가 아닌 CCL을 적용해야 옳습니다.

원문 출처: http://craphound.com/?p=573
번역문 출처: http://blog.jinbo.net/neoscrum/?pid=468


프린트 한 죄

by Cory Doctorow
최세진(neoscrum) 옮김

내가 여덟 살 때 경찰들은 아빠의 프린터를 박살냈다. 프린터가 뿜어내던 열기와 전자렌지에 식품 포장용 랩을 돌렸을 때 나는 것과 비슷한 그 냄새 그리고 아빠가 프린터에 신선한 찐득이를 채워 넣을 때 열중하던 모습, 프린터에서 갓 구워져 나온 물건의 감촉이 아직도 생생하다.

경찰들은 문으로 들어와 곤봉을 휘둘렀고, 그중 한 명은 확성기를 들고 영장을 낭독했다. 아빠의 고객이 밀고한 것이었다. 정보경찰은 밀고자에게 행동 강화제, 기억 보충제, 신진대사 촉진제 같은 고급 약으로 대가를 지불했다. 그런 것들은 현금보다 더 가치가 있지만, 누구든지 집에서 직접 프린트해서 만들 수 있는 것들이었다. 큰 덩치들이 부엌에 갑자기 들이닥쳐서, 휙휙 소리가 나도록 곤봉을 휘두르며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패고 온갖 것들을 부셔버리는 위험을 감수할 수만 있다면 말이다.

경찰들은 할머니가 예전에 살던 나라에서 오실 때 가져온 여행 가방을 박살냈다. 소형 냉장고와 공기 정화기도 창문 밖으로 던져 부셔버렸다. 내가 기르던 귀여운 새는, 경찰이 큰 군화발로 새장을 짓밟아서 엉킨 프린트 전선 뭉치로 만들어버렸을 때, 새장의 한쪽 구석에 몸을 숨겨서 겨우 목숨을 보존했다.

아빠, 그들은 아빠에게 무슨 짓을 했던가. 아빠가 체포되었을 때의 모습은 마치 럭비팀과 한 판 난투극을 벌인 것 같은 몰골이었다. 그들은 아빠를 문 밖으로 끌고 나가, 기자들에게 사진을 잘 찍을 수 있도록 보여준 후 차 안으로 던져 넣었다. 경찰 대변인은 아빠가 해적판 밀매 범죄 조직을 운영하면서 최소한 2천만 개 이상의 밀매품에 대한 책임이 있고, 극악한 범죄자로서 체포시에도 불응하며 저항했다고 발표했다.

나는 거실에 남겨진 내 전화기를 통해 이 모든 과정을 봤다. 나는 그 모습을 스크린에 띄워놓고 지켜보면서, 어떻게, 아니 도대체 어떻게 우리의 초라한 단층집과 지독히 형편없는 살림살이를 보면서도 그걸 범죄 조직의 우두머리가 사는 집이라고 착각할 수 있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그들은 프린트를 가져가 전리품이라도 되는 냥 전시해서 기자들에게 보여주었다. 프린트가 놓여있던 부엌의 그 조그마한 성소(聖所)는 끔찍하리만큼 허전해보였다. 나는 정신을 차리고, 납작하게 눌린 새장을 집어 들어 불쌍한 새를 구해준 후, 프린터가 있던 자리에 믹서를 올려놓았다. 믹서도 프린트로 만들었기 때문에, 한 달이 채 되기 전에 베어링과 구동 부품들을 새로 프린트해야만 하는 상태였다. 프린트가 있었을 때는 프린트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언제든지 분해하고 조립해서 만들어낼 수 있었다.

내가 18살이 되었을 때 아빠가 감옥에서 나왔다. 그동안 나는 아빠를 세 번 면회했다. 내 열 살 생일과 아빠의 쉰 살 생신날 그리고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 내가 아빠를 마지막 본 것은 2년 전이었는데, 그 때 아빠는 건강이 좋지 못한 상태였다. 아빠는 감옥 안에서의 싸움 때문에 다리를 절룩거렸고, 마치 틱 경련이라도 있는 것처럼 계속 고개를 돌려서 어깨 너머로 뒤를 쳐다봤다. 소형 택시가 우리를 예전에 살던 집의 현관에 내려주었을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할 줄 몰라 당황스러웠다. 그래서 집안으로 들어가 위층으로 올라가는 내내, 처참하게 망가지고 절룩거리며 해골처럼 삐쩍 마른 아빠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했다.

“래니.”
아빠가 나를 앉히며 말했다.
“난 네가 영리한 애라는 걸 잘 알아. 이 늙은 애비가 어디를 가야 프린트와 찐득이를 구할 수 있을지 너는 알고 있겠지?”

나는 손톱이 손바닥을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꽉 쥐고는 눈을 감고 말했다.
“아빠, 아빠는 감옥에 10년 동안 갇혀 있었어요. 장장 10년이라고요. 믹서나 약품, 노트북 컴퓨터, 이쁘게 생긴 모자 따위를 프린트 하느라 또 10년을 감옥에서 보낼 작정이세요?”

아빠가 씩 웃었다.
“래니, 난 바보가 아니야. 그동안 교훈을 얻었어. 모자나 노트북 컴퓨터 따위는 감옥에 갈 정도의 가치가 없어. 난 다시는 그런 쓸데없는 허접 쓰레기를 프린트하지 않을 거야. 절대로.”
아빠는 찻잔을 들고 와서, 위스키라도 되는 것처럼 홀짝 대더니 쭉 들이키고는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뱉었다. 아빠는 눈을 감고 의자에 기대어 앉았다.

“래니, 이리 와봐. 너한테 긴히 해줄 말이 있어. 내가 감옥에서 10년을 허비하며 결심한 걸 이야기 해줄게. 이리 와서 이 어리석은 애비의 이야기를 들어봐.”

아빠에게 화를 낸 것 때문에 가슴이 아팠다. 아빠는 제 정신이 아니었다. 적어도 그건 확실했다. 감옥에 있는 동안 도대체 무슨 일을 겪으셨던 걸까.
“뭔데요. 아빠?”
나는 아빠에게 가까이 기댔다.

“래니, 나는 이제 프린터를 프린트 할 거야. 더 많은 프린터를 만들어내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씩 나눠줄 거야. 그거라면 감옥에 갈만한 가치가 있어. 그거라면 어떤 일을 당해도 할 만한 가치가 있어.”

글 찾기

글 갈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