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 읽고 씀:
http://blog.goclassic.co.kr/agnes429/1223893333
이씨 조선, 일본 천황, 그리고 천손 사상
저는 '이조'라고 하시기에 'transposition'인줄 알았습니다. -_-; 댓글이 자꾸만 달려서 읽어보니 '이씨 조선' 얘기였네요.
저는 '이씨 조선'이라는 말이 조선 왕가가 천손(天孫)이 아니라는 뜻으로 쓴 말이라고 알고 있는데 그 얘기를 하신 분이 아무도 없네요. 모자라는 지식으로나마 한 마디 씁니다.
천손은 중국 황제를 가리키는 '천자(天子)'와는 전혀 다릅니다. 천자는 하늘이 선택한 사람이라는 뜻이지만 천손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서 내려온 초월적인 존재입니다. 단군왕검은 환인의 자손이라잖아요? 따라서 중국에서 '이당'이라느니 하는 말을 쓴 일은 우리와는 맥락이 맞지 않습니다.
우리나라를 비롯한 이른바 '북방 유목 민족'은 모두 천손(天孫) 신화를 믿어왔습니다. 단군신화만 해도 전형적인 천손 신화이지요. 지금 남한 지역에는 원래 난생(卵生) 신화가 있었는데 북방 유목 민족이 지배세력으로 등장하면서 천손 신화가 난생 신화를 압도했습니다. 이를테면 박혁거세는 천마(天馬)의 알에서 태어났는데, 알에서 났지만 결과적으로 천손이지요. 주몽은 단군왕검과 함께 천손의 아이콘 같은 사람으로 한국뿐 아니라 천손 사상이 나타나는 지역에 두루 닮은꼴 신화가 전해 내려온다고 합니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지배자는 정상적인 인간의 출생 과정을 거치지 않고 '천손'임을 알려주는 특이한 출생 과정을 거칩니다. 천손이라야 지배자로서 정통성을 얻을 수 있었다는 얘기입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테면 <일본서기>에도 지상세계는 천손이 다스려야 한다느니 하는 말이 나온다고 합니다. 일본에는 천손강림(天孫降臨)이라는 말도 있다지요? 무엇보다 지네들 왕을 '천황'이라 부르면서 신으로 받들어 모시잖아요? '황'보다 '천'이 훨씬 중요한 말입니다.
그런데 조선 왕조는 천손 신화를 만들어내지 못했지요. 못했는지 안 했는지 모르겠지만, 이것은 천손 사상을 굳게 믿는 사람에게는 치명적인 정통성 결여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일본 사람에게는 더더욱 정통성 없는 쿠데타 정권으로밖에 안 보였겠지요. 저는 '이씨 조선'이라는 말이 그런 맥락에서 나왔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스스로 '이조'라는 말을 썼더라도 그런 맥락은 아닌지 살펴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