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년 11월 23일(수) 저녁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지휘 : 크리스토프 캄페스트리니(Christoph Campestrini)
협연 : 폴 메이어(Paul Meyer)
베버, 클라리넷 협주곡 제1번 f단조, 작품 73
베버, 클라리넷 협주곡 제2번 Eb장조, 작품 74
브람스, 교향곡 제1번 c단조 작품 68
크리스토프 캄페스트리니는 서울시향의 부지휘자이면서 현재 라 스칼라에서 외도중인 아릴 레머라이트(Arild Remmereit)가 적극 추천한 인물이라고 한다. 레머라이트에 대한 개인적인 호감이 상당한 만큼 캄페스트리니에 대한 기대도 적지 않았는데 과연! 이날 연주회장을 찾은 사람들은 새삼 놀랐을 것이다. 티켓 값에 비하면 연주가 너무 훌륭하지 않은가! 이런 사람은 자주 불러와서 오케스트라 단원들과 친분을 쌓아둘 필요가 있겠다. 이름을 보면 이탈리아 사람인 것 같은데, 의외로 오스트리아 출신이란다. 다만, 커튼콜 때 보여준 과장된 표정과 몸짓은 확실히 뿌리가 이탈리아 사람 같았다.
캄페스트리니의 브람스 해석에서 가장 먼저 드러난 특징은 템포가 무척 빨랐다는 것이다. 그 점에서 언뜻 아르농쿠르를 연상하기도 했는데, 그러나 사실 그와는 많은 차이가 있었다. 아르농쿠르의 1996년 녹음(Teldec)은 기존 음반에서 놓치고 있는 부분을 잘 살려낸 점이 주목할 만하지만, 그 앙상한 (또는 '정격적인?') 소노리티는 브람스라기보다는 차라리 모차르트 같아서 상당한 거부감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캄페스트리니는 저음 현을 두텁게 깔아서 묵직한 느낌을 확실히 전달했으며, 목관이 지나치게 두드러지지도 않고 적당한 밸런스를 유지했다.
한편, 지휘자가 설정한 템포는 악보에 나타난 헤어핀(hairpin; <>)과 스포르찬도 따위의 세세한 지시를 충분히 살리기에는 지나치게 빨랐는데, 특히 1악장에서 더욱 그랬다. 그러나 정신없이 달리는 동안 프레이즈를 얼렁뚱땅 날려버리며 생동감을 잃어 버렸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았다. 빠른 템포 속에서도 아티큘레이션(articulation)을 최대한 살려냈으며, 아첼레란도와 수비토 피아노 등을 적절히 첨가하는 등의 시도도 매우 좋았다. 결국 빠른 템포는 참신한 해석을 돋보이게 하는 핵심적인 장치가 되었으며, 4악장 코다의 고양감은 특히 대단했다.
캄페스트리니의 해석은 오케스트라의 역량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자칫 역효과를 불러올 수도 있을 것인데, 서울시향 단원들의 연주는 매우 훌륭했으며 지휘자의 지시에 재빠르게 반응했다. 특히 플루트와 오보에 수석은 유난히 돋보였다. 다만, 클라리넷 주자 가운데 한 사람은 디미누엔도에서 갑자기 소리가 막혀 버리는 등 매끄럽지 않은 적이 더러 있었다. 전에도 그런 적이 있었는데, 외람된 추측으로는 리드의 상태에 일부 원인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최근 서울시향의 관악기 협주곡 시리즈는 특별히 주목할 만한 것이었으며, 각 악기의 특성을 새삼 깨닫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연주의 완성도 또한 매우 높았다. 이날 협연자인 폴 메이어는 정교한 아티큘레이션과 폭이 큰 다이내믹 레인지(dynamic range)가 인상적이었으며, 특히 극도로 여린 음을 아무렇지도 않게 만들어내는 데에는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날 연주회에서 또 한 가지 좋았던 것은 연주회장이 세종문화회관이 아니라 예술의 전당이었다는 것이다. 단원들이 세종문화회관의 음향에 너무 익숙한 탓에 역효과가 생기지는 않을까 걱정되기도 했지만, 결과는 썩 만족스러웠다. 세세한 아티큘레이션이 훨씬 또렷하게 전달되었으며, 객석으로 전달되는 음량도 더 컸다.
서울시향의 다음 연주회에서는 또 다른 부지휘자인 번디트 웅그랑시가 림스키-코르사코프의 <세헤라자데>를 연주한다. 내가 웅그랑시를 무대에서 본 것은 한 번뿐이지만 지휘자로서의 능력이 심상치 않아 보였다. 그리고 섣부른 판단으로는 그때 느꼈던 해석의 경향이 <세헤라자데>와도 잘 어울릴 것 같다. 12월 9일 금요일, 기대해도 좋지 않을까.
2005년 11월 24일 씀.
김원철. 2005. 이 글은 '정보공유라이선스: 영리·개작불허'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