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시대에 대중이 때때로 보이는 맹목적인 애국심은 몹시 위험해 보입니다.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바로 황우석 사건이지요. 그런데 그 뒤로는 대중의 세련되지 못한 행동을 너무나 손쉽게 '황빠'와 등치시켜버리는 또 다른 폭력을 드물지 않게 봅니다. 요즘은 지식인들의 '까' 논리를 대중이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또 다른 맹목성을 띄는 경우마저 눈에 뜨입니다.
이것은 지적인 게으름 탓이라고도 할 수 있겠지만, 어찌 보면 우리나라 지식인들이 집단적인 파시즘 공포증에 빠져 있기 때문은 아닌가 걱정됩니다. 이것은 어찌 생각하면 수구주의자들이 북한을 대하는 태도와 놀랄 만큼 닮아 보입니다. 물론 우리는 파시즘 때문에 오랫동안 억눌려 왔고 그 찌꺼기를 말끔히 없애는 일은 아직도 불가능한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불특정 다수를 '대중'이라는 이름으로 묶어놓고 그들이 조금이라도 파시즘에 부화뇌동하려는 기미를 보이면 곧바로 날 선 수사법으로 공격하는 것은 결코 정상이라 여겨지지 않습니다. 대중의 비논리와 무지몽매함을 조롱하는 사람은 자신이 정작 얼마나 이성적인지 되돌아볼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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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근대성’이란 것을 말할 때,그 특징으로 “의문을 갖고 논리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합리적 사고”를 든다. 이 측면에서 ‘근대의 요람’임을 자랑하는 서구나 미국의 대중적 역사 기억은 과연 근대적일까 ‘합리성’을 내세워 다른 지역의 문화를 평가절하하는 구미에서조차 비판적 분석이나 다른 역사적 사건과 비교할 수 없는 공공(公共)의 역사적 기억의 ‘성역’(聖域)이 있다. 다름이 아닌 홀로코스트(Holocaust), 즉 제2차 세계대전 때 유럽의 약 600만명의 유대인이 파쇼에 의해 대학살된 사건이다.
유럽인의 미주침략과 비교해보라
이는 세계사에서 전대미문의, 미증유의 사건이라는 전제, 인류가 저지른 어떤 가혹행위와도 견줄 수 없다는 테제, 히틀러가 자행한 범죄 가운데서 가장 흉악하다는 주장 등을 업고 아무런 비판 없이 ‘기존 사실’로 받아들인다. 어릴 때부터 교과서와 영화 등의 매체로부터 주입된 홀로코스트에 대한 거의 종교적인 외경(畏敬)도 한몫하지만, 홀로코스트에 대해 그 뜻을 약간이라도 상대화시키는 듯한 기미를 공석에서 보이면 곧장 ‘홀로코스트 부인주의자’(Holocaust-denier)의 딱지를 지닐 수도 있다. 딱지가 붙으면 더 이상 학술·대중 매체에서 발언권을 갖기가 힘들다. 마치 중세 유럽의 지식인들이 형이상학적 문제에 대한 예리한 발언으로 독신죄(瀆神罪; 기독교의 신을 모욕하는 죄목)에 걸려 사회로부터 ‘출척’(黜陟)당한 전근대적인 현실을 방불케 한다."
- 박노자, 비극의 상업화, 홀로코스트. 한겨레21, 2002년11월28일 제436호. <http://h21.hani.co.kr/section-021070000/2002/11/021070000200211280436037.htm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