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중반의 얘기. 중학교 입시 폐지(1968년) 이전의 얘기다. 그 때는 과외공부가 일상이었다. 국민(초등)학교 교사가 직접 과외를 했다. 어느 교사가 과외공부를 하다가, 그 집에서 난로를 잘못 다뤄서 불이 났단다. 당시 한국의 언론은 일제히 과외공부의 폐단에 대해서 지적을 했다.
그런데 인터뷰에 응한 어떤 한 사람만이 이렇게 말을 했다. “이건 과외공부의 문제가 아니라, ‘불조심’의 문제입니다.” 아동문학가 윤석중 선생(1911~ 2003)이다. 어린 시절, 내 어머니를 통해 들은 이 얘기를 평생 기억 속에 간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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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만에, 오늘 이 얘기가 불현듯 떠올랐다. 서울시향 박현정 대표의 기자회견을 텔레비전 뉴스로 보면서 그랬다. 내가 본 텔레비전 뉴스는, 박현정이란 사람(대표)에 의한 .. 정명훈이라 사람(예술감독)을 향한 공격이 "주"였다. ‘박현정 vs 정명훈’의 대결구도로, 언론은 또 하나의 뉴스거리를 쟁취한 것 같은 느낌 마저 들게 된다. 어떤 한 매체의 뉴스를 보니, 타이틀이 “박현정의 반격”이더라. 그리고 “정명훈의 재반격‘에 대한 궁금증을 남기면서, 뉴스를 맺고 있다.
그 시절 ‘과외공부’가 문제인 것처럼, 정명훈 체제의 ‘서울시향’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분명 정명훈과 관련해서 (음악 외적으로) 늘 ‘양가적’인 사실과 평가가 공존했었다. 앞으로 이것에 대해서도, 언론에서 잘 다뤄주길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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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번 문제의 발단은 분명코 박현정 대표의 ‘막말’(욕설, 폭언)이 핵심이다. (한국 사회구조 속에서) ‘갑’이 ‘을’을 비((非)인격적으로 대한 것이 핵심이다. 그것도 문화적이고 예술적인 일을 하는 조직 내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제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극한 상황에서, 조직 내의 약자들의 “호소문”이다. 그간 인간적인 모멸감을 견디다 못해 퇴사한 동료를 지켜보면서, 이제 더 이상은 참는 것이 미덕이 아니라고 생각한 남아있는 직원들의 비장한 결의가 거기에 있다.
나는 박현정이란 사람을 모른다. 하지만 기자회견과 녹음파일 등을 통해서 미루어 짐작할 때, 이 사람은 ‘리더’로서의 자질이 무척 의심되는 사람이다. 지금 사원들은 ‘불조심’을 얘기하고 하는데, 이 사람은 ‘불조심’ 얘기는 거의 하지 않으려 하고, ‘과외공부’를 얘기하고 있다. 이렇게 몰고 간다고 해도, 박현정이란 사람의 과오는 은폐되거나 약화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박현정은 미루어 짐작컨대, 계속적으로 사원들에게 공격(언어 폭력)을 행사한 사람이다. 그리고 참으로 반성도 할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수세에 몰린 상황에서 ‘정명훈’을 들먹이고 있는 사람이다. 과외공부 얘기를 하면, 불조심 얘기가 희석되리라 생각하는 ‘ 어리석고도 비열한’ 사람이다.
다소 거친 표현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한 예술단체의 대표(박현정)와 예술감독(정명훈), 두 사람의 대립이 이전투구(泥田鬪狗)로 비춰지는 게 안타깝지만, 그것이 해결책 중의 한 방법이라면 그럴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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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언론이여! 이것만큼은 아주 분명하게 해다오. 이건 한 조직 내에서 “대표”라는 사람이, “사원”에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인격모독(人格冒瀆)을 넘어서 인권유린(人權蹂躪)이라고 볼 수 있는 크나큰 “갑의 을에 대한 있을 수 없는 횡포”가 핵심 쟁점이다.
제발 불조심은 불조심으로 과외공부는 과외공부로, 그 핵심 쟁점을 정확히 짚어서 얘기해다오. “불조심”과 “과외공부”는 확실하게 사안이 다르다. 수차례 강조하건대, 이건 분명 한 예술단체의 대표가, 예술단체의 직원들에게 있을 수 없는 ‘폭력’을 행사한 것에 대하여, 비장하게 결의를 한 직원들의 “대표 퇴진을 요구하는 호소문”이다. 강자들의 맞대결로 몰고 가서, 약자들에게 또 한번 상처를 주지 말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