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6월 22일 월요일

연주회 실황 중계/녹화 방송 유감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어떤 클래식 음악 사이트에서 연주회 평이 호평과 악평으로 뚜렷하게 갈린 일이 있었다. 호평을 한 사람들은 연주회장에 직접 가서 들은 사람이었고 악평을 한 사람들은 TV 방송을 본 사람이었다. 호평을 한 사람이 모두 '막귀'였을까? 내가 알기로 그 가운데 지휘를 전공한 사람도 있으니 그렇게 믿기는 어렵다. 연주회장이 저 악명 높은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이어서 실연을 들어도 호평이 나오기 어려우니 아무래도 방송에 문제가 있었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그러나 방송을 본 사람은 끝끝내 지휘자와 악단 탓이라고 우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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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는 것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

그 뒤로 나는 무엇이 문제인지를 제법 오랫동안 따져 생각해 보았다. 나는 음향 엔지니어링 전문가가 아니라 깊이 파고들지는 못했으나 적어도 맥은 제대로 짚었다고 생각한다.

2008년 11월 6일 ☞예술의 전당 콘서트홀에서 있었던 ☞서울시향 연주회. 첫 곡은 모차르트 ☞<구도자의 엄숙한 저녁기도 K. 339>였다. 이 곡은 비올라를 쓰지 않는 등 악기 편성이 특이한데, 이날 서울시향은 제2 바이올린을 무대 오른쪽으로 보내고 첼로를 가운데로 모았다.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을 떨어뜨려 놓으면 어지간한 합주력으로는 소리가 망가지기 일쑤인데, 서울시향이 훌륭하기도 했거니와 이날 소편성으로 연주해서 그런지 생각보다 앙상블이 매우 훌륭했다. 지휘자는 ☞정명훈이었다.

그러나 나는 집에 와서 라디오 중계방송 녹음을 다시 들어보고 깜짝 놀라고 말았다. 악기 소리가 엉망진창으로 뒤섞이고 밸런스는 산으로 도망가버린 탓에 참고 들어주기 괴로웠기 때문이다. 그다음에 연주했던 ☞말러 교향곡 4번에서는 그럭저럭 들어줄 만했으니 내가 보기에 원인은 하나다. 음향 엔지니어가 작품과 악기 배치에 따라 알맞게 믹싱(mixing)을 하지 않고 '기본 설정' 그대로 내버려두었기 때문이다.

☞말러 교향곡 4번 또한 그럭저럭 참고 들어줄 만했을 뿐 소리를 잘 잡았다고 하기 어려웠다. 모든 악기 소리가 나무랄 데 없이 고르게 나지도 않았고, '언제나 그렇듯이' 클라리넷 소리가 혼자서 튄다거나 하는 일이 잦았다. 악기 소리가 고르지 않을 때 지휘자는 연주자에게 소리를 크게 또는 작게 내라고 말해주면 된다. 마이크와 믹서 따위로 소리를 잡아내는 음향 엔지니어는 믹서로 소리 크기를 바꿔주면 된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어떤 소리가 고른 소리인지 알려면 어느 대목에서 어느 악기가 얼마만 한 크기로 어떻게 연주하는지 엔지니어가 훤히 꿰고 있어야 한다. 멀티채널 녹음을 하면 나중에 편집이라도 할 수 있으나 중계방송이라면 소리가 나기에 앞서 믹싱을 해줘야 하니 더더욱 그렇다. 그러나 엔지니어가 곡을 잘 모른다면?

밸런스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방법이 있다. 마이크 두 개만으로 스테레오 사운드를 잡는 이른바 '원 포인트 마이킹'을 하면 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마이크 위치와 연주회장 음향 사정에 따라 소리가 달라지는 등 여러 가지 걸리는 것들이 있어서 보통은 마이크를 여러 대 놓고 믹싱을 하게 된다. 마이크를 악기 가까이 두면 또렷한 소리를 잡을 수 있으나 다른 악기와 어우러지게 하기 어렵고 생동감이 줄어든다. 거꾸로 마이크를 멀리 두면 자연스러운 소리를 잡을 수 있으나 연주회장 음향에 따라 소리가 멍청해질 수 있고 위상 간섭이 일어나 소리를 갉아먹기도 한다. 그래서 엔지니어들은 보통 가까운 곳과 먼 곳에 모두 마이크를 놓고 믹서로 알맞게 섞는다고 한다.


결국 믹서 다루는 솜씨에 따라 소리가 크게 달라지는데, 우리나라 연주회 실황 중계/녹화 방송을 들어보면 마치 악기 가까이에만 마이크가 있는 듯이 들린다. 그래서 현악기가 아기자기하게 주고받는 대목에서는 썩 듣기 좋은 소리가 나기도 하지만 총주 때에는 밸런스가 꼬이고 생동감이 없어지곤 한다. 마이크 가까이 있는 연주자가 작은 실수라도 하면 그것이 크게 과장되기도 한다. 나란히 비교해 보지는 못했으나 내가 받은 느낌으로는 KBS 1FM 중계방송보다 MBC TV 녹화방송이 조금 더한 듯하다.

컴프레서(compressor)를 함부로 쓰는 일도 큰 문제다. 컴프레서란 쉽게 말해 다이내믹 레인지를 줄여서 작은 소리도 크게 들리게 하는 장치 또는 알고리듬이다. 음반 녹음을 할 때면 가정용 오디오에 알맞게 다이내믹 레인지를 줄이곤 하는데, 라디오는 전송 대역폭이 좁아서 다이내믹 레인지를 더 줄일 때가 잦다. 그런데 연주회 실황 방송에서는 해도 너무한다 싶을 만큼 다이내믹 레인지가 좁아서 문제이며, 대편성 관현악곡을 연주할 때에는 이것이 치명적이다. 컴프레서는 작품에 따라, 그리고 연주회장 음향에 따라 알맞게 써야 하며, 얼마만큼이 알맞은지 정답은 없다. 그러나 글쓴이가 보기에 우리나라 연주회 실황 방송에서는 '기본 설정'에서 벗어나는 일이 없는 듯하다.

2009년 3월 5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있었던 서울시향 연주회에서는 정명훈 지휘로 스트라빈스키 《봄의 제전》을 연주했다. 글쓴이는 ☞서울시향 월간지 <SPO>에 보낸 연주회 리뷰에서 이렇게 썼다.

"타악기는 너무 앞으로 나서지 않고 다른 악기 소리에 감칠맛을 더할 때가 잦았고, 이를테면 살로넨 녹음에서 큰북이 매우 큰 소리를 내는 1부 5곡 '적대관계에 있는 부족들의 의식' 마디 439에서도 악보에서 지시한 '메조포르테'를 넘어서지 않았다. 그러나 꼭 필요한 곳에서는 연주회장이 무너질 듯한 소리를 터트리기도 했다. 1부 마지막 네 마디에서는 큰북이 무시무시한 크레셴도를 들려주었고, 2부 3곡 '선택된 처녀에게 영광을'에 들어서기 바로 앞서 나오는 4분음 11연타 때에는 큰북과 팀파니가 현 소리를 누르고 마구 두드려댔다. 2부 끝 곡 '희생의 춤'에서는 타악기끼리 어질어질한 폴리리듬을 주고받았다."

그러나 KBS 1FM 라디오 중계방송이나 MBC TV 녹화방송에서는 무시무시한 타악기 소리가 관악기에 묻혀버리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자꾸만 일어났다. 타악기 소리가 아니더라도 음악에 '펀치력'이 없어서 밋밋하고 지루하게 느껴졌다. 밸런스도 곧잘 어긋나서 음악에 담긴 뉘앙스가 자꾸만 어그러졌다.

우리나라 방송국 음향 엔지니어는 왜 이토록 무능한가? 이 말은 참 어리석다. 질문을 이렇게 바꿔보자. 우리나라 오케스트라는 왜 유럽이나 일본 오케스트라보다 연주를 못하는가? 솜씨 있는 연주자들이 국내 오케스트라에서 푸대접받으며 일하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마 음향 엔지니어도 다르지 않으리라. 오케스트라 전문 음향 엔지니어가 있는지도 의심스럽거니와 연봉이 얼마나 될지는 뻔하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될까? 나보다는 음향 엔지니어들한테 직접 물어보라. 다만, 서울시향처럼 돈 많은 오케스트라는 당장 편법을 쓸 수 있다. 솜씨 좋은 음향 엔지니어를 외국에서라도 서울시향 전속으로 모셔오면 된다. 공연 기획을 마이클 파인에게 맡길 만큼 눈 높은 곳이니 음향 엔지니어 또한 그리 못할 까닭이 없다.

나중에 붙임.

다른 곳에 링크를 걸었더니 방송국은 연주회장으로부터 2채널 신호를 그냥 받아올 뿐이라는 댓글이 달렸다. 따라서,

(1) 방송국 탓이 아니라 연주회장 탓이다.

(2) 내가 KBS 1FM 라디오와 MBC TV가 다르다고 느낀 일은 착각이라는 얘기가 된다. (글 쓰면서 그럴 가능성을 어렴풋이 생각해서 도망갈 구멍을 만들어 놓기는 했는데..;; 어쩌면 단순 볼륨 차이를 그렇게 느꼈을지도..;;)

(3) 또 생중계가 아닌 녹화를 하더라도 '원본'이 2채널이므로 마스터링을 해 봐야 크게 달라지지 않는 이른바 '원판 불변의 법칙'이 적용된다.

그리고 댓글 가운데 믹싱이 아니라도 변수가 매우 많다는 말씀도 있었으나 자세한 설명은 없더라. 전문가 눈으로 깊이 파고들면 당연히 변수가 많을 게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오케스트라 전문 음향 엔지니어를 키워야 한다는 논지는 그대로다. 키워야 할 주체가 방송국이 아니라 연주회장으로 바뀌었을 뿐.

또 붙임. 댓글은 이곳에 달아주심 안 될까여?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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