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4월 10일 금요일

미미와 로돌포의 봄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미미라 불러요, 하지만 본명은 루치아예요. […] 사람들이 나를 미미라 불러요, 왜 그러는지는 몰라요.”

푸치니 오페라 ’라 보엠’에 나오는 유명한 아리아 가사이지요. 흔히 ’내 이름은 미미’로 통하는 제목은 사실 잘못된 번역입니다. ’미미’는 본명이 아닐 뿐 아니라 자신을 일컫는 말로 내세울 만한 이름이 아니기 때문이에요.

미미라는 이름은 19세기 유럽에서 술집 여자가 흔히 사용하던 예명이며, 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미미라 불러요’라고 말함으로써 미미가 로돌포에게 에둘러 하는 말은 이렇게 됩니다. 나는 예전에 술집에서 일했던 여자이고, 지금은 보다시피 건강에 문제가 있어요. 그래도 당신은 나를 있는 그대로 좋아해 줄 건가요?

미미는 옥탑방에서 홀로 외롭게 살아가는 자신의 처지에 관해 서툴고 유치한 미사여구를 섞어 말하다가, 아무래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갑자기 진심을 담아 말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진실한 마음만큼 오케스트라가 뜨겁게 끓어오릅니다.

“그래도, 따듯한 계절이 오면 / 처음 닿는 햇빛은 제 것이에요. / 4월의 첫 키스도 제 것이에요.”

요즘 제 머릿속에 오페라 ’라 보엠’이 맴돌고 있습니다. ’보엠’은 ’보헤미안’에서 온 말로 자유분방하게 살아가는 예술가를 일컫는 말입니다. 시인, 화가, 음악가, 철학자 등이 ’라 보엠’의 주요 인물로 등장하지요.

그런데 요즘 보헤미안들의 생존이 그 어느 때보다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습니다. 전 세계 공연장들은 바이러스 한파로 꽁꽁 얼어붙었고, 미미가 그토록 바랐던 4월이 왔는데도 날씨는 아직도 춥네요.

뉴욕 메트로폴리탄 오페라, 워싱턴 내셔널 심포니 오케스트라,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 캐나다 캘거리 심포니 오케스트라 등은 고용계약서상 ‘불가항력’ 조항을 근거로 전례 없는 무기한 고용 중단(lay off)을 단행했습니다.

미국의 다수 예술단체는 급여를 삭감하면서 버티기에 들어갔고, 마사아키 스즈키, 벤자민 그로스베너, 에마뉘엘 비욤, 조수미, 올리 무스토넨 등이 소속된 영국의 공연기획사 하자드체이스는 파산 절차를 밟고 있습니다.

독일 문화부는 문화예술 분야 프리랜서 및 소기업 구제를 위해 500억 유로(약 67조 원) 예산을 확보했고, 프랑스는 긴급 예산으로 일단 2천 2백만 유로를 확보했습니다.

한국에서도 문화예술위원회 등에서 지원책을 마련하고 있지만, 프리랜서 예술인 및 공연 제작에 참여하는 비정규직을 위한 대책은 허술해 보입니다. 예술인을 위한 고용보험법 일부 개정 법률안은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고 하네요.

갑갑한 얘기는 그만하는 게 좋겠어요. 대신 ’라 보엠’을 좀 더 들어 볼까요.

로돌포: 유레카!
마르첼로: 뭘 찾았어?
로돌포: 이것은 창조의 어머니. 이데아가 불타게 하자꾸나.
마르첼로: 이 그림을 태우자고?
로돌포: 아니, 유화는 탈 때 냄새나. 그러나 내 희곡은 괜찮지. 불타는 열정이 우리를 데우리.
마르첼로: 그걸 읽고 있겠다고? 나는 추워 죽겠다고.
로돌포: 아니, 종이는 한 줌 재로 변하여 / 시(詩)는 하늘로 돌아가리라. / 이는 우리 문명에 큰 손실일지니 / 로마는 위험에 빠졌도다!
마르첼로: 고귀한 마음이로다!
로돌포: 여기 1막이요!
마르첼로: 이리로!
로돌포: 찢어라!
마르첼로: 불붙여라!
로돌포 & 마르첼로: 막 타네!
콜리네: 얼마 안 가잖아!
로돌포: 간결함이 위대함을 낳지.
마르첼로: 막간이 괴롭다. 어서! (1막 중)

그러나 봄이 오면 / 햇살이 함께 하리! / 백합과 장미가 피어나고 / 새들이 둥지에서 노래하리

꽃 피는 봄이 오면 / 햇살이 함께 하리! / 분수가 재잘거리고 / 저녁 바람이 불어오리.

향기가 퍼져 / 우리 고통을 어루만지리. (3막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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