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쓰는 내용은 악보를 보면서 연주를 복기하는 과정을 생략하고 엉성한 기억에 의존해서 쓰는 것이므로 헛소리가 섞였을 수 있음.
1바와 2바를 좌우로 갈라놓는 유럽식 현악기 배치를 말러 교향곡에 쓴 걸 보고 깜놀. 첼로와 더블베이스가 1바 뒤, 비올라가 2바 뒤. 하프가 맨 오른쪽. 이래서 앙상블 제대로 될까 싶었는데 생각보다 훌륭해서 놀람.
가장 멋졌던 곳은 “Mit Flügeln” 이후부터 끝까지. 어지간해서는 멋있지 않기 힘든 곳이고 이날 연주도 역시 멋졌음. “zu Gott” 세 번 반복할 때 합창이 주도하는 크레셴도가 특히 멋졌고, 멋짐의 끝판왕은 파이프오르간.
합창 처음 나올 때는 국내 합창단이 흔히 그러듯 메조피아노 정도로 시작한 게 아니라, 정말로 악보에 나온 피아니시모를 제대로 살림. 와, 하면 되잖아! 된다고!!
5악장 중간에 목관악기가 레치타티보스러운 음형을 연주할 때 바이올린 트레몰로가 기막히게 훌륭해서 귀 쫑긋. 그때부터 행진곡 나올 때까지가 이날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 레치타티보를 금관이 이어받고, 트롬본과 튜바가 진노의 날 음형을 연주하고, 감동적인 팡파르가 나오고, 에너지가 쌓여 폭발한 다음에 행진곡이 될 때까지가 이날 서울시향이 가장 빛났던 순간. 그 뒤로도 좋았지만, 솔직히 때때로 힘이 딸리는 듯한 느낌이 있었음.
2~4악장은 대체로 안정적인 앙상블이 좋았음. 이를테면 2악장에서 첼로 주선율 나오는 곳이나, 같은 주제를 바이올린이 연주하는 곳, 그 사이 피치카토 등이 훌륭.
콘트라바순 소리가 특히 3악장 마지막에 겁내 멋있었음. 악기가 참 때깔도 곱던데, 재작년엔가 새로 샀다는 헤켈 콘트라바순이었을 듯. 우리 오케스트라 공연할 때 좀 빌려줬으면 하는 소망이 있어요 서울시향 님드라.
솔리스트 언냐들 노래 참 찰했는데 무대 인사하러 나온 걸 보니 예쁘기까지.
1악장에서는 E♭장조 주제 두 번째로 나온 뒤부터 긴 호흡으로 만들어간 크레셴도가 특히 그럴싸했고, 코다에서도 마찬가지.
앙상블이 흔들린 곳이 다른 악장보다 1악장에서 상대적으로 많았던 것은 아쉬운 점. 최초로 폭발하는 투티는 에너지가 임계점을 넘어 터져 나오는 느낌이 아니라 어정쩡한 크레셴도 끝에 깜짝 놀래키듯 폭발한 점이 마음에 안 들었음. 악보를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호른이 좀 더 힘을 내줬으면 좋았을 듯.
가장 마음에 안 들었던 곳은 1악장 발전부 끝부분의 리듬 처리. 무시무시하게 날카롭고 사납고 절박한 리듬을 대충 부점 리듬처럼 뭉개면서 아첼레란도로 양념을 치고 속도감에 묻어 가버림.
오스모 반스카 님 단원들이랑 주먹 인사한 거 힙하셨음.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