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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8월 15일 일요일

음악 평론가의 소신에 관하여: Donald Rosenberg 사건

미국 클리블랜드 일간지 『The Plain Dealer』 소속 음악 평론가 Donald Rosenberg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벨저-뫼스트(Franz Welser-Möst)를 비판하는 글을 썼다가 좌천당했는데, Donald Rosenberg는 『The Plain Dealer』와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를 고소했다가 최근 패소했다.

이와 관련해 음악 평론가 Martin Bernheimer가 『파이낸셜 타임스』에 기고한 글을 두고 김원철이 트위터에서 떠든 내용을 퍼옴. (정리해서 쓰려니 귀찮…;;)

dahlhaus: 지휘자 벨저-뫼스트를 혹평했다가 잘린 평론가 Donald Rosenberg가 법정 패소한 사건에 대해 평론가 Martin Bernheimer가 파이낸셜 타임즈에 기고한 글 소개: http://bit.ly/aDMzUE (expand) #opuskr #fb

dahlhaus: "도널드 로젠버그는 패배했다. 클리블랜드도 패배했다. 넓게는 저널리즘이, 좁게는 위기에 빠진 음악 평론이 패배했다." http://bit.ly/aDMzUE (expand)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혹평이 있으면 편집자가 알아서 고쳐버린다는…-_-;; #opuskr #fb

lless31: @dahlhaus 보통 서울시향 리뷰 많이 쓰시죠? 사이에 http://bit.ly/a4L6uY (expand) 이런 글들은 다소 완곡한 어법으로 표기되어 있긴 하지만 명백히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로 보이는데, 대략 이런 글쓰시면 어떤 반응이 돌아오나요? #opuskr

dahlhaus: @lless31 http://bit.ly/a4L6uY (expand) 이 글은 눈치 안 보고 쓴 글이고요, 어디 기고할 글이라면 이렇게 쓰면 가위질 당합니다. -_- #opuskr

lless31: @dahlhaus #opuskr 이 정도도 가위질인가요? ㄷㄷㄷ

dahlhaus: @lless31 http://wagnerian.textcube.com/556 이런 글은 깔 곳은 웬만큼 까고도 조금밖에 안 잘렸지요. 전체적으로 호평이기도 하고요. 제 기억으로는 예비박 삑사리 대목만 잘렸지 싶습니다. #opuskr

lless31: @dahlhaus 그래도 여전히 짤리기는 하는군요.. #opuskr

dahlhaus: @lless31 모 선배 평론가가 말하기를, 가위질은 편집자가 본능적으로 하는 행동이므로 그냥 마음을 비우라고… ㅡ,.ㅡa #opuskr

dahlhaus: 평론가 Bernheimer의 FT 칼럼 가운데, LA 타임즈 평론가로 일할 때 경험: 주빈 메타를 깠더니 LA필 fundraiser가 화났다고. 그런데 마침 LA 타임즈 사장 어머니. -_-; http://bit.ly/aDMzUE (expand) #opuskr #fb

dahlhaus: 평론가 Bernheimer 떡밥 이어서: 그런데 LA 타임즈 사장이 오히려 전면 광고로 Bernheimer를 옹호. “He faces the music even when it hurts.” http://bit.ly/aDMzUE (expand) #opuskr #fb

dahlhaus: 평론가 Bernheimer 떡밥 이어서: LA 타임즈 편집자는, "당신이 베토벤을 보호하므로 우리는 Bernheimer 당신을 보호하겠습니다." http://bit.ly/aDMzUE (expand) …부, 부럽다아…ㅠ.ㅠ #opuskr #fb

한 가지 덧붙이자면, Donald Rosenberg가 얼마나 모진 말을 썼는지는 몰라도 미국에서는 웬만한 비판에는 관대하며, 이 점에서 우리나라와는 비교도 안 되는 우월한 환경임. (몇 년 전에 장영주가 미국이었는지 영국이었는지, 아무튼 모 평론가한테 당한 사건 기억하는 사람 더러 있을 듯.)

2009년 4월 20일 월요일

음악 평론, 평론가

먼저, 현실 인식부터 제대로 하자.

"사실 한국은 연주나 작곡에 비하면 평론은 뒤떨어져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연주나 작곡에 비해서 평론이 결코 매력적인,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평생 쏟아부을 만한 직업이 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수많은 음악이론 전공자들이 평론을 이어가지 않고, 강의쪽을 선택하는 것이 바로 그런 현실에 대한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평론은 배고픈 직업이기 이전에 한국에서는 그 가치를 발견하기 어려운, 허무한 직업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

문학분야에서는 작가론이 성숙한 것에 반해서, 양악평론에서는 연주자에 대한 변변한 작가론적인 글이 전무한 것만을 보아도 이러한 현상에 대해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그러한 작업은 음악가의 음악 자체와 그의 철학에 대한 깊은 이해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저술에 오랜 시간이 걸리는 어려운 일이지만, 그러한 작업을 통해 우리들은 연주자의 음악세계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다."

김동준., "구조적 모순 속에 선 평론가들." 문예연감 2002년호.

http://www.arko.or.kr/yearbook/2002/music/4-05.html

그러면, 훌륭한 평론은 어떤 평론인가? 김원철은 아래 글을 주춧돌로 삼는다.

Kerman, Joseph. "How We Got Into Analysis, and How to Get Out." Critical Inquiry VII (1980):311-33.

Kerman은 분석과 비평 개념 구분을 비판하면서 분석은 본디 과학이 아닌 이데올로기라 했다.
또 Kerman은 음악 분석은 비평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원철은 Kerman이 한 말을 뒤집기를 좋아한다.
분석이 비평적이어야 한다면, 비평은 분석적이어야 한다.

그리고 Kerman이 엉터리 비평을 겨냥해 퍼부은 말을 곱씹을 일이다.
"음악 비평은 미학적 물음에 구걸하기, 설익은 말잔치, 스냅샷 판단 따위를 밑천으로 삼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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