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12월 19일 금요일

올해 읽은 최고의 논픽션 - 티모시 가이트너 『스트레스 테스트』

티모시 가이트너의 『스트레스 테스트』는 세상을 구한 사람의 이야기이자, 실제로 벌어졌던 사건을 당사자의 시선에서 회고한 기록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알려진 것보다 훨씬 심각했고, 위기는 미국에서 시작되었으나 그 여파가 통제 불능으로 번졌다면, 전쟁을 포함한 전면적 혼란으로 이어졌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금융과 관련한 전문적인 내용이 나오기 때문에, 이 책은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이를테면 『한자와 나오키』보다 내용 이해에 요구되는 금융 지식의 수준이 더 높다. 그러나 이 책은 전문가만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며, 나만 해도 전문가가 아니라 일개 개미 투자자다. 내용을 이해할 수 있다면, 문명이 붕괴 직전까지 몰렸던 상황의 스펙터클을 이 책에서 경험할 수 있다.

책에 언급된 사람들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사람들, 그리고 책에 나오지는 않지만 읽다 보면 생각나는 사람들이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은 위기 상황에서 곤경에 빠진 서민들을 구제하는 일에 큰 역할을 했다. 티모시 가이트너는 서민을 직접 구제하는 일보다 그들이 사는 세상 자체가 멸망의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도록 했다. 워런은 올바른 일을 하면서 많은 존경과 찬사를 받았지만, 가이트너는 올바른 일을 하면서도, 그 대가로 비난과 오해를 견뎌야 했다.

그래서 워런의 책 『싸울 기회』를 읽기에 앞서 가이트너 책을 읽어야 당시 상황을 올바로 알 수 있게 된다. 당시에 가이트너를 이해하고 신뢰한 사람은 극소수였고, 그 가운데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있었기에 인류는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 그리고 위기 초반에 대통령이었던 조지 W. 부시가 의외로 여론에 휘둘리지 않고 중심을 유지했다고 한다.

레리 서머스는 탁월한 경제학자이자 가이트너의 멘토, 가이트너보다 더 똑똑한 사람이며, 오바마가 가이트너를 재무장관으로 영입하려 했을 때 가이트너가 제안을 거절하며 대안으로 거론한 사람 중 하나다. 그러나 위기에 대응하는 일을 서머스가 가이트너보다 더 잘했을 거란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의 지적 능력이 그런 역할을 어렵게 만들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성향의 인물은 세상 모두가 자신을 비난하는 상황을 묵묵히 견디며 올바른 일을 하려 들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만약 가이트너 대신 재무장관이 되었다면, 그는 더 많은 사람이 고통받는 대신 자신은 다치지 않게끔 ‘정치적으로 안전한 선택’을 했을 가능성이 크다.

서머스에 관한 내용 중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이렇다: “나는 “서머스는 백악관 내에서 멍청한 아이디어를 기각하는 담당으로 영구보직을 받아야 한다.”는 헨리 키신저의 유명한 발언을 인용했다(이 발언은 내가 몇 년 후 기자에게 말해준 이후 처음으로 널리 알려졌다). 서머스가 명석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알지만, 그의 지적인 칼에 직접 난도질당해 봐야, 그가 얼마나 명석한지를 파악할 수 있다.”

레이얼 브레이너드는 당시에 차관보로서 가이트너 휘하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듯하다. 그 이후에는 내가 기억하는 연준(FRB) 이사이자 연준의 핵심 브레인으로 활약했고, 팬데믹 위기 상황에서 신속하고 과감한 통화정책으로 금융 붕괴에 의한 문명의 붕괴를 다시 한 번 막아내게 된다. 이후 유력한 차기 연준 의장으로 거론되기도 했는데, 만약 그것이 실현되었다면 여성 최초 연준 의장이 탄생했을 것이다. 정권이 바뀌기 전의 일이다.

리처드 쿠는 가이트너 책에 나오지 않는 사람이지만, 당시 상황을 이론적으로 이해하는 데 그의 책 『밸런스시트 불황으로 본 세계 경제』가 도움이 된다. 나는 가이트너에 대한 그의 비판이 이론적으로는 옳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현장의 압박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는 학자의 입장에서나 가능한 비판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긴급한 상황에서 위기 대응을 위해 필요한 수단이 의회와 언론의 공격을 받아 실행이 좌절되는 답답한 일들이 가이트너의 책에는 여러 차례 나온다.

이 책을 읽다 보면 현실이 아닌 소설 속의 인물이 떠오르기도 한다. 『엔더의 게임』에 나오는 엔더 위긴이다. 동명의 영화에서는 엔더가 그냥 똘똘한 어린애로만 나오지만, 원작 소설에서 그는 끝도 없이 반복되는 위기를 이겨내는 과정에서 엄청난 피로감에 시달리게 된다. 현실의 위기를 헤쳐나갔던 가이트너의 모습이 그랬을 법하다.

내가 만약 가이트너였다면 저 상황에서 이렇게 했을 텐데 싶은 순간이 있다. 재무장관 임명 직후에 있었던 연설이다. 이것이 대실패로 끝나면서 가이트너의 고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여론의 뭇매를 피할 길은 어차피 없을 것이므로, 나라면 차라리 화끈한 쇼맨십과 더불어 내 쪽에서 먼저 그들을 도발할 것이다. 이렇게 말이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봉투 안에는 제 사직서가 있습니다. 이 연설이 끝나는대로 저는 사직서를 제출할 것입니다. 대통령께서는 언제든 원하시는 때에 이것을 수리하시면 됩니다. 그러나 그 전까지 저는 어떠한 비난과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제가 옳다고 믿는 일을 할 것입니다. 자세한 계획은 이 자리에서 밝히지 않겠습니다. 그것은 제가 월가의 탐욕스러운 금융인들 편에 서 있다는 오해를 부를 것이며, 금융인들은 제가 그들을 약탈할 혁명군 사령관이라 오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오해를 바로잡으려 노력하는 대신에 행동으로 말하고 결과로 증명하겠습니다.”

물론 내 상상일 뿐이다. 가이트너가 책에서 설명한 내용 중 일부를 인용하자면 이렇다.

“금융위기 대응에 관련하여 불편한 진실은, 옳다고 생각한 행동이 종종 잘못된 것이라는 점이다. 자연스러운 순리는 개입 전에 가능한 한 오래 기다렸다가 점진적으로 강화하고, 납세자들 손실을 줄이고, 지원에 엄격한 조건을 달며, 위기 원인 제공자를 징벌하며 위기의 근본적인 원인을 언급하는 것이다. 즉 “실패한 회사들을 망하게 내버려 둬라. 호황기에 돈을 댄 채권자들이 대가를 치르게 둬라.” 그러나 이러한 대응은 시스템의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처방일 뿐이다. 일반 국민은 구약성서에 나오는 정의, 즉 악한들에 대한 처벌을 원할 것이다. 도덕적 해이에 대해 전통적 근본주의자들은 “무책임한 행동은 보상받을 수 없다.”는 메시지를 보내고 싶어 한다. 만약 정책결정자들이 이러한 말에 귀를 기울이면 재앙을 불러들이게 된다. 주요회사들이 실패하게 놔두고, 도덕적 해이를 피하며, 정부의 개입을 최소화하여야 한다는 압력이 강할 것이다. 그러나 이 압력에 굴복한다면 궁극적으로 정부의 개입을 더 요구하고 더 많은 도덕적 해이를 만들어 내는 큰 규모의 위기를 가져오는 공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