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7월 14일 목요일

콩쿠르의 세계

월간 『SPO』 7월호에 실린 글이며, 출간본에서는 문답 형식으로 윤문이 되었고 일부 내용이 삭제되었습니다. 이곳에 올리는 판본은 편집이 되지 않은 원문입니다. 제목은 편집자께서 지어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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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콩쿠르를 판단하는 기준은 사람마다 다를 수 있다. 역대 입상자 가운데 거장이 얼마나 많은가, 음악계 안팎의 이목이 얼마나 집중되는 콩쿠르인가, 콩쿠르 입상이 향후 커리어에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가 등이 중요한 기준이 되겠지만, 이 글에서 제시하는 기준은 '콩쿠르 기획자들에게 얼마나 내세울 만한 콩쿠르인가'이다.

국제음악콩쿠르 세계연맹(World Federation of International Music Competitions)이라는 단체가 있다. 콩쿠르 기획자들의 모임인 까닭에 음악가 및 애호가에게 그리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가입 조건이 까다로워서 이곳에 가입된 콩쿠르는 그 수준을 보증받았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국내에서는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서울국제음악콩쿠르, 제주국제관악콩쿠르가 이곳에 가입되어 있다.

글쓴이는 콩쿠르 기획자가 아니지만, 콩쿠르가 핵심 사업 중 하나인 곳에서 일하다 보니 국제음악콩쿠르 세계연맹 연례총회 및 기념공연에 관여한 일이 있다. 주요 콩쿠르 한국인 입상자를 소개하는 기념공연 시리즈를 개최했고, 한국인 입상자들로 일회성 오케스트라를 만들기도 했다. 센다이 콩쿠르에서 입상했던 신아라 서울시향 부악장이 이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았었다.

이때 특급 콩쿠르와 1급 콩쿠르 목록을 작성하고 한국인 입상자가 있는지를 일일이 조사했었는데, 아래에 소개하는 콩쿠르는 주로 그 자료를 바탕으로 한다.

쇼팽 콩쿠르 (Concours International de Piano "Frédérick Chopin")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5년마다 열리는 피아노 콩쿠르이며,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콩쿠르로 거의 이견 없이 손꼽힌다. 쇼팽 콩쿠르 때마다 폴란드 전체가 들썩일 만큼 국가적으로 중요한 관광자원이기도 하다. 입상자 중에 마우리치오 폴리니, 마르타 아르헤리치, 크리스티안 지메르만 등이 있고, 2015년 조성진이 우승하면서 네이버 실시간 검색어 1위, 유명 온라인 음반 매장 판매 순위에서 대중음악 스타 '아이유'의 새 음반을 제치고 조성진의 음반이 1위를 기록하는 등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2005년 임동혁 · 임동민 형제가 공동 3위에 입상했다.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Concours Musical International Reine Elisabeth)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리는 콩쿠르로 피아노, 바이올린, 성악 부문이 번갈아가며 열리고, 2017년부터 첼로 부문이 추가된다. 2012년을 끝으로 작곡 부문이 없어졌다. 바이올린과 피아노 부문이 특히 유명하며, 입상자 중에 바이올리니스트 다비드 오이스트라흐, 레오니드 코간, 바딤 레핀, 피아니스트 에밀 길렐스,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레온 플라이셔 등이 있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 소프라노 황수미 · 홍혜란, 작곡가 전민재 · 조은화가 1위에 입상했고, 바이올리니스트 배익환 · 강동석 · 이미경 · 신지아(신현수) · 김수연 · 윤소영, 피아니스트 백혜선 · 박종화 · 임효선 · 김태형 · 김다솔 · 한치호, 소프라노 박혜상 등이 입상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 (International Tchaikovsky Competition)

모스크바에서 4년마다 열리는 콩쿠르로 쇼팽 콩쿠르 ·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와 함께 '세계 3대 콩쿠르'로 꼽힌다. 피아노, 바이올린, 첼로, 남녀 성악 부문이 함께 열리며, 특히 피아노와 바이올린 부문이 유명하다. 유명 입상자로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 블라디미르 아시케나지, 그리고리 소콜로프, 미하일 플레트뇨프, 다닐 트리포노프, 바이올리니스트 기돈 크레머, 빅토리아 뮬로바 등이 있고, 한국인 입상자로는 정명훈, 백혜선, 손열음, 조성진, 바이올리니스트 이지혜, 소프라노 서선영, 베이스 박종민, 바리톤 김동섭, 유한성 등이 있다. 조성진이 입상했던 2011년 당시 조직위원장이었던 발레리 게르기예프가 조성진을 위해 참가 제한 연령을 기존 18세에서 16세로 낮추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조성진은 2010년 쇼팽 콩쿠르에 연령 미달로 참가하지 못했었다.

제네바 콩쿠르 (Concours international d'exécution musicale de Genève)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리는 콩쿠르이며, 매우 다양한 부문으로 개최되는 점이 특이하다. 피아니스트 마르타 아르헤리치,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 클라리네티스트 마르틴 프뢰스트, 지휘자 앨런 길버트, 비올리스트 타베아 침머만, 한국인으로는 첼리스트 정명화, 피아니스트 문지영, 작곡가 조광호가 1위에 입상했다. 플루티스트 김유빈, 테너 윤종국, 메조소프라노 김정미, 피아니스트 이효주 · 김다솔 등이 상위 입상했다.

ARD 콩쿠르 (Internationaler Musikwettbewerb der ARD)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콩쿠르이며, 제네바 콩쿠르처럼 다양한 부문으로 열린다. 유명 입상자로 지휘자 크리스토프 에셴바흐, 소프라노 제시 노먼, 바리톤 토마스 크바스토프, 바이올리니스트 크리스티안 테츨라프, 비올리스트 유리 바시메트, 오보이스트 하인츠 홀리거, 첼리스트 나탈리아 구트만, 에벤 스트링 콰르텟 등이 있고, 서울시향 트럼페티스트 알렉상드르 바티 또한 여기서 입상했다. 한국인 입상자는 일일이 적기 곤란할 만큼 많은데, 노부스 콰르텟, 박혜윤 · 김봄소리(바이올린), 이유라 · 박경민(비올라), 한지호(피아노), 테너 김재형, 바리톤 김동섭 · 양준모 등이 대표적이다.

롱티보 콩쿠르 (Concours Long-Thibaud-Crespin)

프랑스 파리에서 바이올린, 피아노, 성악 부문으로 열린다. 유명 입상자로 피아니스트 상송 프랑수아, 파울 바두라스코다, 바이올리니스트 이브리 기틀리스, 블라디미르 스피바코프 등이 있고, 2015 쇼팽 콩쿠르 결선에서 조성진에게 10점 만점에 1점을 매겨 논란이 되었던 피아니스트 필리프 앙트르몽 또한 여기서 입상했다. 한국인 중에서는 피아니스트 임동혁, 바이올리니스트 신지아(신현수)가 1위에 입상했고, 그밖에 피아니스트 안종도 · 박주영 · 원재연, 바이올리니스트 박지윤 · 민경지 등이 입상했다. 2001년부터 성악 부문이 추가되었고, 이 해에 베이스바리톤 심기환이 1위 입상했다.

닐센 콩쿠르 (Carl Nielsen International Competitions)

덴마크 오덴세에서 열리며, 목관 중심이라 비교적 인지도가 떨어지지만 엄연히 특급 콩쿠르로 분류된다. 클라리넷, 플루트, 오르간, 바이올린 부문이 있고, 지난 2014년 경연 중 2위 입상한 플루티스트 유키에 오타의 얼굴에 나비가 앉아서 화제가 되었던 그 콩쿠르이기도 하다. 플루티스트 박예람이 이 해에 3위 입상했으며 한여진이 13살 나이로 특별상을 받았다. 바이올리니스트 권혁주 · 이지윤이 1위 입상했고, 클라리네티스트 조인혁, 바이올리니스트 박소현, 홍의연, 오르가니스트 김진 등이 입상했다.

리즈 콩쿠르 (Leeds International Piano Competition)

영국 리즈에서 3년마다 열리는 피아노 콩쿠르이다. 유명 입상자로 라두 루푸, 머레이 페라이어, 언드라시 시프, 라르스 포크트 등이 있고, 2006년 김선욱이 우승하면서 스타 연주자로 발돋움했다.

다른 유명 콩쿠르는 지면 관계상 이름과 지역 정도만 나열하겠다. 반 클라이번 콩쿠르(미국 포트워스), 부조니 피아노 콩쿠르(이탈리아 볼차노), 인디애나폴리스 바이올린 콩쿠르, 요아힘 바이올린 콩쿠르(독일 하노버), 시옹 바이올린 콩쿠르(스위스 시옹), 파가니니 콩쿠르(이탈리아 제노바), 몬트리올 콩쿠르, 프라하의 봄 콩쿠르, 로스트로포비치 콩쿠르(프랑스 파리),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콩쿠르(헬싱키), 루빈슈타인 콩쿠르(텔아비브), 비에니아프스키 콩쿠르(폴란드 포즈난), 루토스왑스키 첼로 콩쿠르(바르샤바), 리스트 콩쿠르(네널란드 위트레흐트), 카살스 콩쿠르(독일 크론베르크), 브장송 지휘 콩쿠르(프랑스 브장송), 센다이 콩쿠르, 하마마쓰 콩쿠르, 시즈오카 오페라 콩쿠르, 오사카 실내악 콩쿠르.

콩쿠르, 경쟁보다 성장을 위한 계기

유럽, 특히 독일어권의 스타 연주자 가운데 별다른 콩쿠르 입상 경력이 없는 사람이 제법 있다. 이를테면 피아니스트 마르틴 슈타트펠트가 그렇고, 피아니스트 윤홍천 또한 콩쿠르가 아닌 오디션으로 뮌헨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오디션으로 성공할 수 있는 길이 특히 오페라 극장을 중심으로 활짝 열려 있고, 다른 유럽 국가에도 콩쿠르가 아닌 등용문이 얼마든지 있다. 콩쿠르를 포함한 '시험과 경쟁'이 성공을 위한 거의 유일한 길인 한국인으로서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지만, 이것이 가능해지려면 한국이 유럽 수준의 고신용사회가 되어야 할 터이니 아직은 아득한 얘기다.

2015 윤이상국제음악콩쿠르 결과 발표를 앞두고 심사위원장 라이문트 트렝클러 선생은 콩쿠르를 '경쟁'이 아닌 '성장'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요지로 명연설을 남겼다. 이것이 우리에게 가장 현실적인 조언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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