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16일 토요일

2016 통영국제음악제 & ISCM 세계현대음악제, 막전막후

『한산신문』에 연재중인 칼럼입니다.


▲ 2016 통영국제음악제 공식 공연 중 '아시아 작곡가 쇼케이스'

"그러니까 '나팔'이 달린 메가폰이어야 해요. 문제는 요즘 나오는 제품이 마이크와 스피커가 분리된 형태뿐이거든요. 구형 메가폰을 도대체 어디서 구해야 할지…"

2016 통영국제음악제 공식 공연 중 '아시아 작곡가 쇼케이스'를 담당한 동료가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웃쿠 아스로글루'라는 터키 작곡가가 '나팔' 달린 확성기를 연주에 사용하도록 악보에 지시해 놓았거든요.

닉 로스(Nick Roth)라는 아일랜드 작곡가는 '나무를 심어라'를 악보에 지시어로 써놓았습니다. 1미터에서 1.5미터 정도 크기의 묘목을 물에 잘 담갔다가 공연 중 지름 40cm 이상 되는 물이끼가 있는 화분에 심고, 공연 직후 묘목을 땅에 심으라고요. 마른 잎사귀와 나뭇잎이 달린 나뭇가지를 악기처럼 쓰도록 한 일은 이쯤 되면 그다지 놀랍지도 않아요.

저를 가장 힘들게 했던 사람은 프랑스 작곡가 프레데리크 베리에르였습니다. 2e2m앙상블 공연 때 연주된 《황궁의 왈츠, 1855년경…》이라는 작품이 문제였는데, 작곡가가 리허설 때마다 요구사항을 바꾼다더니 결국 이번 공연을 위해 악기 편성 등을 완전히 고쳤다네요. 개정판 한국초연이라고 발표되었지만 사실상 세계초연이었던 겁니다. 다른 공연 리허설에 쓰려고 시민문화회관에 뒀던 악기를 이 공연 직전에 부랴부랴 음악당으로 가져와야 했던 일도 있었지요.

그런가 하면 항공 수하물 사고가 올해에도 있었습니다. 카잘스 콰르텟 단원 가운데 바이올리니스트 아벨 토마스의 가방이 파리 샤를 드 골 공항에서 안 왔다고요. 3월 28일 공연 전까지 도착하기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해 보여서 연주에 필요한 구두와 의상을 빌려야 했는데, 서양 남자라 그런지 덩치가 감당이 안 될 만큼 크더군요. 다행히 플로리안 리임 대표님께서 구두와 옷을 빌려주셨습니다.

조금 딴 얘기지만, 카잘스 콰르텟 공연에 오셨던 분들은 바이올리니스트 아벨 토마스와 첼리스트 아르나우 토마스가 태블릿 컴퓨터를 악보로 쓰던 모습을 보셨을 겁니다. 악보를 넘길 때는 블루투스(Bluetooth) 페달을 썼지요. 악보 앱이 뭔가 싶어서 물어봤더니, 역시나 음악가들 사이에서 유명한 'forScore'더군요. 저도 참 좋아하는 앱입니다.

올해 통영국제음악제는 ISCM 세계현대음악제와 나란히 열렸던 만큼 챙겨야 할 일이 참 많았습니다. 그래서 공연이 열릴 동안 정작 저는 다른 일로 바쁠 때가 잦아서 아쉽네요. '졸아도 공연장 안에서 졸 테야'를 외치며 밤늦은 시간에 열렸던 홍콩 뉴 뮤직 앙상블 공연 마지막 곡을 들었던 일, 재즈 가수 스테이시 켄트 공연 때 구석 자리에 앉아서 정신 없이 졸았던 일, 제가 맡은 공연을 다 끝낸 뒤 피곤한 몸이지만 마음만은 편하게 폐막공연을 들었던 일 등이 그래도 기억에 남았습니다.

「2016 ISCM 세계현대음악제, 그리고 주목할 작품들」이라는 글에서 제가 소개했던 곡들을 정작 실연으로 들은 것이 시마쓰 다케히토 곡뿐이었던 일은 특별히 아쉽습니다. 무엇보다 리하르트 레인보스(Richard Rijnvos)의 'Fuoco e fumo'(불과 연기)를 콘서트홀 로비를 지나치다 얼핏 듣고는 얼마나 약이 오르던지요! 그런데 제가 주목할 작품으로 소개했던 신예준 작곡가가 ISCM 선정 젊은 작곡가 상(Young Composer Award)을 받게 되어 한편으로는 기쁩니다.

저는 현대음악 애호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열린 마음으로 현대음악을 들어보려는 편입니다. 음악제 직후인 지난 5일에는 서울시향의 현대음악 공연에 갔다 오기도 했지요. 그리고 이번 음악제를 계기로 현대음악이 조금 더 좋아진 듯해요. 앗, 아니, 아니, 그게 아니고! 현대음악을 듣는 것만요. 현대음악 공연 기획은 너무너무 힘들어요. 2e2m앙상블을 공항으로 떠나보낸 뒤에 저는 업무용 메신저에 이렇게 썼습니다. "프랑스 변덕쟁이들 다 떠났다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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