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10월 23일 금요일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드라마'가 있는 발성의 비밀

『한산신문』에 연재 중인 칼럼입니다.


통영국제음악당에서 발간하는 『Grand Wing』 매거진을 아시는 분이 많을 겁니다. 이번 호에는 테너 이안 보스트리지 인터뷰 기사가 실렸는데요, 그 뒷얘기를 조금 해볼까 합니다. 워낙 유명세가 있는 사람이라 성사시키는 일부터 간단하지 않았고, 처음에는 이메일 인터뷰를 하려고 했다가 결국 영국으로 전화를 걸게 되었지요.

그런데 이안 보스트리지의 영국식 영어가 참, 알아듣기 어렵더군요! BBC 뉴스를 들어보신 분은 아실 겁니다. 영국 영어는 미국식 영어와는 특히 모음이 크게 달라서 익숙지 않은 사람이 알아듣기 쉽지 않지요. BBC 뉴스 진행자는 그나마 느리게 또박또박 말하지만, 이안 보스트리지는 말이 또 어찌나 빠르던지요. 그런데 이 얘기를 페이스북으로 했더니 영국에서 유학하신 분이 하시는 말씀이, 영국에서 살다 보면 그 사람 발음(옥스브리지 악센트)이 그나마 가장 알아듣기 쉬운 걸 알게 될 거라네요!

제가 이안 보스트리지를 인터뷰하면서 가장 궁금했던 점은 노래로 '드라마'를 전달하는 탁월한 솜씨의 비결이 무엇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연극적 생동감'이라는 표현을 써서 비결을 물었더니 답이 썩 와 닿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당신 노래에는 '드라마'가 있다."라고 했더니, 그게 키워드였던 겁니다. 그 말을 곧바로 받아서 치고 나오듯 이렇게 말하더군요.

"드라마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요즘 성악가는 대부분 오페라를 주업으로 하는데, 가끔 리사이틀을 하면 뭔가 다른 걸 하게 되고, 그래서 '드라마틱'하지 않게 된다. 나는 가곡이 주업이라 그 속의 '드라마'에 언제나 끌리곤 한다." 그러니까 오페라와 달리 무대세트 등의 도움 없이 노래만으로 드라마를 표현해야 하는 가곡 특성 때문이라는 얘기이지요.

그러나 리트 전문 가수가 모두 이안 보스트리지처럼 노래에 '드라마'를 탁월하게 담아내지는 않습니다. '드라마'가 아닌 '노래'에 더 집중하는 다른 훌륭한 리트 가수도 많지요. 그래서 이번에는 연극적인 발성의 비밀을 물었습니다. 이안 보스트리지 목소리는 이른바 '벨칸토' 창법을 쓰는 오페라 전문 가수와는 좀 다르지요. 그러나 기본적인 원리는 같았습니다.

성악가들이 쓰는 특이한 발성법의 비밀을 전문용어로 마스케라(maschera)라고 합니다. 마치 머릿속에서 소리가 울리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된다고 해서 '두성'(頭聲)이라고도 하지요. 그러나 실제로 소리가 울리는 곳은 콧속이고, 이때 마치 가면을 쓴 듯한 느낌이 들기 때문에 '가면'을 뜻하는 이탈리아 말인 '마스케라'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그런데 이안 보스트리지처럼 울림이 담백한 소리로 노래하는 사람도 정도의 차이일 뿐 '마스케라'를 쓰기는 마찬가지라고 합니다. 인터뷰하면서 직접 확인해 봤더니 말장난을 보태서 이렇게 답하더군요. "마이크를 쓰지 않는 이상 공연장에 소리를 전달하려면 '울림통'이 있어야 한다. 그게 '얼굴'(웃음) 또는 '머리'라 할 수 있다."

이제 참말로 궁금했던 것을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다울랜드, 바흐, 슈베르트 등을 부를 때 발성의 원칙은 무엇인가? 대답이 조금 뜻밖이었습니다. "그건 가사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가사? 음악 양식(style)이 아니라?

"음악 양식일 수도 있겠지만, 어떤 노래가 그 당시 참모습이 어땠는지 아는 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결국 양식이란 건 상상을 보태서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작곡가마다 분명 다르지만, 다루는 방식이나 부르는 사람에 따라 공통점도 생긴다."

비밀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작곡가마다 다른 음악 양식에 선입견을 품지 말고 가사에 집중하기!

10월 30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이안 보스트리지가 기타리스트 쉐페이 양과 함께 공연합니다. 옛날 음유시인은 보통 류트 반주로 노래했지요. 이안 보스트리지는 슈베르트 노래도 당시에는 기타 반주로 불리곤 했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슈베르트가 작곡할 때 그것을 염두에 두었다고 말합니다. 현대의 류트라 할 수 있는 기타 반주로 다울랜드, 슈베르트, 브리튼 등의 노래를 들으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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