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월 9일 일요일

시카고 심포니를 물 먹인 지휘자 야니크 네제-세갱

Yannick Nézet-Séguin

CopyLeft by Davidt8

야니크 네제-세갱(Yannick Nézet-Séguin)은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내정자입니다. 고작 1975년생인데 전 세계적인 지휘자 세대교체 바람과 오케스트라 경영난 등이 기회가 되어서 무려 필라델피아 음악감독 자리를 꿰차게 되었지요. 이 소식을 들은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이렇게 논평했습니다.

야니크 네제-세갱을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으로 뽑았다는 발표는 위험하고 섣부른 전략이다(high-risk, half-calculated strategy). 캐나다에서 온 이 사람이 가진 재능은 의심할 나위가 없다. […] 재능만으로는 모자라기 때문이다. LA 필에는 에사-페카 살로넨을 키운 어니스트 플라이슈만이 있었고 취리히에는 프란츠 벨저-뫼스트를 움직이는 알렉산더 페레이라가 있듯이, 야니크와 같은 시기 예술가는 경영을 맡은 동반자가 보듬고 이끌어 주어야 한다. 필라델피아에는 앨리슨 벌거모어가 있지만, 애틀랜타에서 이제 막 와서 재정, 예술, 통계, 전략 부문에서 한꺼번에 급한 불을 끄고 있다. […] 내년이 오케스트라에 고비가 될 것이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지휘자는 언제든 도망갈 수 있다.

http://www.artsjournal.com/slippeddisc/2010/06/the_philadelphia_story_-_have.html

네제-세갱은 시카고 심포니 오케스트라 데뷔 연주회를 열 예정이었습니다. 필라델피아 음악감독이 된다는 소식보다 훨씬 앞선 3년 전에 일정을 잡고 1년 전에 발표했지요. 그런데 네제-세갱은 연주회를 몇 주 앞두고서야 "개인적인 사유로" 취소 통보했습니다. 지난 10월에는 시카고 심포니 음악감독 리카르도 무티가 배탈이 나서 연주 일정을 모두 취소하고 이탈리아로 가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네제-세갱마저 연주회를 취소했으니, 평론가 노먼 레브레히트는 시카고 심포니에 무슨 문제가 있지 않나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오스카 와일드가 한 말처럼, 한 시즌에 지휘자 한 사람을 잃는다면 불행으로 여길 수 있다. 두 사람이 되면 어떤 경향이 있는 듯해 보인다. […] 업계는 시카고 심포니에 문제가 있다고 추측한다.

http://www.artsjournal.com/slippeddisc/2010/12/whats_wrong_with_chicago.html

네제-세갱은 필라델피아 음악감독도 되고 하면서 연주 일정을 감당 못했을 뿐이라 해명했습니다. 저는 기사를 대충 읽고 그런가 보다 했습니다만, 노먼 레브레히트는 네제-세갱 태도가 바르지 않다고 지적했네요.

① 사과하지 않았다.
② 시카고 심포니에 직접 연락하지 않았다.
③ 보상 약속이 없었다.
④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가 『뉴욕타임스』에 성명을 발표했을 뿐이다.

야닉이 시카고에: 너네랑 일할 시간 없다 (노먼 레브레히트)

평론가 제임스 외스트라이히(James R. Oestreich)가 『뉴욕타임스』에 쓴 연주회 리뷰

시카고 음악 평론가 앤드류 패트너가 블로그에 쓴 글

노먼 레브레히트는 앞으로 오랫동안 많은 악단이 네제-세갱을 부르기를 꺼릴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고소를 당할지도 모른다고도 했네요.

비슷한 일은 우리나라에서도 일어날 수 있습니다. 제가 연주회 리뷰 쓰느라 사정을 제법 아는 서울시향만 해도 ☞미코 프랑크와 마크 위글스워스가 '건강 문제'로 연주회 일정을 취소한 바 있지요. 제가 기억하는 것만 꼽아보면 이렇습니다.

2009년 10월 10일: 미코 프랑크 → 디에고 마테우스

2010년 4월 24일: 미코 프랑크 → 안드레아스 델프스

2010년 9월 16일: 미코 프랑크 → 로렌스 르네스

2010년 11월 18일 마크 위글스워스 → 다비트 아프캄

서울시향 관계자한테 물었습니다. 술 먹다가 한 얘기를 생각나는 대로 재구성했음을 밝힙니다.

김원철: 마크 위글스워스는 확신범이던데, 미코 프랑크는 진짜 아파서 취소했나 아니면 핑계인가?

관계자: 내가 보기에는 반반이다. 진짜 아프기는 한 모양이더라만… 이런 일이 있으면 직원들이 고생하기 때문에 다음에 또 부르기 어렵다.

김원철: 그런데 '대타' 지휘자들이 더 낫더라.

관계자: 고객과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한 우리 책임이 크므로 돈을 더 들여서라도 한두 등급 더 높은 사람을 데려와야 한다. 라두 루푸가 연주회 취소했을 때 바딤 레핀을 데려오지 않았나.

마크 위글스워스가 서울시향 연주회를 취소할 때 공식 사유는 건강 문제였다고 합니다. 그러나 알고 보니 인디애나폴리스 오케스트라를 지휘하려고 그랬던 모양이더군요. 한국까지 오려면 체력 부담이 있기는 하겠지만, 미국 오케스트라를 지휘할 기운쯤은 있었다면 끝까지 약속을 지켰어야 옳지 않을까요?

그런데 만날 연주회 취소해도 괜찮은 사람도 있더군요. 안나 네트렙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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